완연한 봄, 산에 산벚꽃과 연둣빛 이파리가 수채화처럼 물들어 가는 4월은 정원도 하루가 다르게 빠르게 변화한다. 며칠 여행이라도 다녀오면 마법사가 다녀간 듯 달라져 있는 모습에 놀란다. 그 속도만큼 큰 설렘으로 1년에 한 번 만나는 꽃들과 차례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이다. 아침 햇살에 비치는 맑은 꽃잎과 기름칠한 듯 반짝이는 장미의 새잎을 바라보면 마냥 흐뭇하다. 4월 초의 정원에서 수선화를 뺄 수 없다. 나는 수선화를 여러 종류 심는다. 일찍 피는 품종과 늦게 피는 품종을 섞어서 심으면 감상 시간을 늘릴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수
학교에서 나눠 준 안내문이나 숙제가 있는지 살펴보려고 막내아들의 책가방을 열었다. 분홍 편지봉투가 그대로 들어있다. ‘이게 아직도 있네?’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열 살 인생에서 그토록 진지한 모습을 본적이 없었기에 아직 전해주지 못한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아이에게 물어보려다 모르는 척 하기로 했다. 사생활 보호차원에서.“숙제 다 했어?”숙제를 다 해 놓고 놀아야 한다는 잔소리를 하려는데 오랜만에 듣는, 익숙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화면을 꽉 채운 펭귄 뽀로로와 친구들이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놀고
우리는 법이 있지만 법을 위반하고조직된 체계가 있지만질서가 없습니다 그 결과 자유와 권한을 오남용하고 전체 사회의 공정과 공익이 훼손되고 있습니다최근 국내 방송심의제도가 논란입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방송 내용을 규제하는 것은 자칫 잘못하면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습니다. 언론의 첫 번째 자유가 사업이 아니듯, 규제 기관의 첫 번째 자유는 권력 남용이 아닙니다. 그런데 방심위가 몇몇 방송을 표적심의, 정치심의 그리고 과잉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논란은 방심위에 부여된 자유와 권한의 오남용에서 기인
“이이첨의 네 아들이 모두 미리 시험 문제를 알아내거나 차작(借作)을 하여 과거에 오른 일에 대해서, 온 나라의 사람들이 모두 말을 하고 있습니다. 대개 그 네 아들이 혹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재주와 명망이 없는데도 잇따라 장원을 차지하기도 하였고 혹은 전혀 문장을 짓는 실력이 없는데도 과거에 너무 쉽게 오르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이첨의 도당들이 이미 과거를 자신들의 소유물로 삼았다면, 이이첨의 아들들에 대한 일은 많은 말로 논변할 것도 없기 때문에 신은 다시 운운하지 않겠습니다.”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이번 의료파업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맞다 틀리다 또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집단의 힘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우리 국민의 밥상을 책임지는 농부로서 왜 농부들은 언제나 국민의 밥상을 지킨다는 자부심보다는, 20여년째 농가소득의 변화가 없는것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하는 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2022년 통계청 자료를 보면 대한민국 농어업의 비중은 전체 국민의 4.2%, 약 210만명이다. 절대로 적지 않은 숫자임에 틀림이 없지만, 정작 농업인 출신 국회의원이나 농업인을 대변하는 하나된 목소리를 내는 채
‘고덕면 구만리’라 하면 사람들은 쌀이 많이 나는 ‘구만들’과 예전의 ‘구만포’를 생각한다. 충청 서해안에서 생산한 쌀을 제물포(인천)를 통해 서울로 구만 석이나 올려보낸 데서 생겨난 지명이 ‘구만리’라고 설명하는 것이다. 고덕에서 구만리 사람을 만났다. 마을 유래를 물으니 그는 ‘구만리’와 ‘쌀 구만 석’과는 관계가 없다 한다. 사람들이 ‘구말리’라고 발음하는 것도 틀린 것이라 했다. 그에 따르면 ‘구만리’는 ‘구만이’에서 나온 것이란다. 그러면서 그는 ‘구만리지(九萬里誌)’를 꺼내 보였다. 거기에는 마을명의 유래가 둘 실려 있었
크림빵은 맛있다. 사실, 빵은 다 맛있다. 하루 종일 빵만 먹으라고 해도 아주 맛있게 잘 먹을 자신이 있다. 여행을 가면 지역의 맛있기로 소문난 빵집을 꼭 방문한다. 그런데 요즘 내 눈에 확 들어온 빵이 있다. 엄청나게 큰 크림빵!어릴적부터 먹었던 친숙한 크림빵. 내 나이보다 더 오래된(?) 크림빵은 오랜 친구 같아서 정겹기까지 하다. “엄마! 진짜진짜 엄청나게 큰 빵이 새로 나왔는데, 엄마가 보면 진짜 좋아할 것 같아!”우리집 귀염둥이 막내아들이 눈을 반짝이며 말한다. 마치 엄마가 보면 진짜 맛있게 먹을 것 같다는 말로 들린다.
여기 하늘 아래/ 나는 서 있습니다./ 세계의 중심에 선 나/ 오른손은 떠오르는 해와 만나고/ 왼손은 저무는 해를 가리킵니다./ 내 코는 북극성을 향하고/ 내 등은 남쪽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 서, 남, 북/ 내가 어디에 서있든/ 나는 편안합니다. 아침 1교시, 과목시를 외고 학교 옥상에 올라 눈부시도록 밝은 태양과 마주했다. 아이들의 첫마디는 예상대로였다. “여긴 왜 올라온 거예요?” 주변을 바라보며 잠시 기다리니 “저기는 어디예요? 치유의 숲이다! 우리가 학교에 오는 길이 보여”하며 아이들도 함께 주변을 살핀다. 이 때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이 곳 오가에서 신암을 향하는 오신로에서 보이는 풍경 속, 넓게 펼쳐진 얕은 들녁과 멀리 덕산을 둘러싼 가야산은 장관을 이루고 있었습니다.그러나 지금은 한창 건설 중인 서부내륙고속도로가 그 앞을 거대한 장벽처럼 막아버려 더 이상 이 방향에서는 그 멋진 정경을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장벽이란 ‘넘어’의 소중한 모습을 빼앗아가 버립니다.이제 곧 있을 22대 국회의원선거. 이번 선거에서도 여성들에게 정치 입문의 높은 남초정치의 장벽을 실감할 수 있는 현실을 마주합니다. 지난 22일 후보자 등록을 마감하며 699
앞서 윤선도가 최북단 유배지 함경도 경원에서 노래한 5수의 연시조 를 보았다. 시조 한 수를 감상해 보자.궂은 비 갰단 말인가 흐리던 구름 걷혔단 말인가/ 앞내의 깊은 소(沼)가 다 맑아졌다는 것이냐/ 진실로 맑기만 맑아지면 갓끈 씻어 오리라이 시조 역시 경원에서 노래한 다. 비 온 뒤 노래라는 뜻이다. 단 한 수의 노래지만 의미심장하다. 여기에서 ‘궂은 비’와 ‘흐리던 구름’은 임금의 총명을 가리는 간신을 가리킨다. 흐린 구름이 궂은 비로 내려서 이루어진 ‘깊은 소(沼)’가 맑을 리가 없다. ‘
귀농을 결심하고 공부하며 계획하고 있을 예비 청년농부에게 조금 먼저 시작한 나의 귀농과정을 들려주고 싶다.귀농을 준비하며 많은 책과 귀농교육과 현장교육, SNS, 카페 등 여러 경로로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를 하곤 한다. 나 역시 귀농 전 많은 준비를 하고 이곳 예산에 자리를 잡았지만, 타지에 연고도 없이 내려와 귀농을 준비한다는 건 무척 힘든 일이였다.당시 토지를 매입하고 하우스 지을 준비를 하던 중 한 달 가량 비가 내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비가 멈출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잡초는 허리까지 자라고 있었고, 정말 어디
예산지역에는 옛날의 ‘역’과 관련된 지명이 셋이 있다. 첫째는 ‘오가면’에 있는 ‘역말’이고, 둘째는 ‘삽교읍’에 있는 ‘역말’이며, 세 번째는 ‘광시면’에 있는 ‘역말’이다.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있었던 ‘역(驛)’은 지금의 ‘역(驛)’과 이름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의미다. 지금 ‘역’의 역할은 ‘교통수단’이지만,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 말까지 시행된 ‘역’ 제도는 ‘통신수단’의 역할을 주로 담당했다. 고려 시대부터 중앙 정부는 지방을 원활하게 통치하기 위해 ‘역’ 제도를 시행하였다. 이에 따라 현감이나 군수가 파견되는 지역에
3월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마른 나무 가지에서 올라오는 새순과 낙엽을 살며시 들추면 보이는 다년생 화초들의 새싹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이 바로 봄이다. 반복되는 모든 일은 지겨움을 느끼게 하지만, 계절의 반복 그중에서도 봄이 오는 것은 늘 새롭고 경이롭고 감사하다. 무채색 정원에 고운 물감으로 채색하듯 꽃이 하나하나 피어나면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감동한다. 사실 정원의 봄은 그렇게 쉽게 오지는 않는다. 늘 마음이 먼저 와서 기다리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올해 역시 야속
끝말잇기는 재밌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 셋을 키우다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끝말잇기는 참 재밌다고 세뇌(?)를 시킨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공을 차거나, 하루 종일 팽이를 돌리거나, 딱지를 접어주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집에서든 차에서든 장소도 상관없다.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인원도 상관없다. 정말 최고의 놀이다. 시작은 언제나 깔끔하고 활기차다. 오늘도 초등학교 3학년과 재밌는 놀이를 한다. “기차!” “차표” 너무 많이 해서 이젠 외울 지경이다. 차표-표범-범인-인간
서른 살의 성균관 유생이라면 초보 정객이다. 이런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시베리아 추위에 살을 에는 최북단 경원으로 쫓겨났을까? “성상께서는 깊은 궁궐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가 이토록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가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 맡겨 의심을 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까? 만약 어질다고 여겨서 의심을 하지 않으신다면,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분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聖明深居九重 不知其專擅之至此乎 抑雖知專擅
농업은 이제 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경영이라는 관점에서 운영을 해 나가고 있습니다. 농부 두 손만으로 하기에는 수익성이 맞지 않기에, 면적을 늘리고 다른 사람의 손을 빌리기도 합니다. 간혹 농사일을 도우러 오는 손들 중에 내국인이 보이면 신기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본래 우리나라 사람의 자리를 외국인들이 와서 일하게 되었고, 이제는 외국인들이 차지하는 비율이 너무 높아져 있으며, 불법인 경우가 많아 통제도 어려운 실정입니다.그나마 일손이라도 있으면 다행입니다. 농촌의 일손 부족이 심각한 수준입니다. 일을 지시할 때에도 농업주가 노동자들
‘삽교’ 지명에 관한 현대의 자료는 ‘삽교읍지’와 ‘위키백과’ 정도다. 먼저 2006년에 발간된 ‘삽교읍지’에는 ‘삽(揷)’을 ‘붉은 색상’을 뜻하는 백제말이라고 하면서, ‘삽교천’이 홍수에 범람하며 물빛이 붉은 황톳빛을 띤 것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삽교천의 옛말로 ‘삽내, 사읍천(沙邑川), 삽천(揷川), 신천(薪川)’ 등이 있는데, 이 냇가에 다리가 놓임으로써 ‘삽다리’가 되었다고 한다. ‘위키백과’에는 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지명 ‘駟盧(사로), 斯羅(사라), 沙羅(사라), 徐羅(서라)’ 등에서 ‘사’와 ‘서’가 ‘새롭다(新)’
선거철입니다. 다가오는 국회의원선거로 선거운동과 선거보도가 한창입니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와 동원입니다. 대중 매체는 관심을 집중시키고, 사람을 모으는 일을 돕습니다. 정당과 후보자들은 선거 공약을 알리고, 그간 잃어버린 정치적 신뢰를 회복하고자 노력합니다. 대중 매체는 이들에게 가장 호의적인 시각으로 자신을 소개할 기회를 제공합니다. 물론 선거가 끝나면 이들의 신뢰는 다시 하락하는 게 일반적입니다.선거기간 유권자들은 대부분 대중 매체를 통해 선거 정보를 접합니다. 우리가 정치에 대해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의 모든 것
옛 향천유치원의 한 교실, 피아노 선율이 울려 퍼진다. 피아노 선율의 박자에 맞춰 발 끝이 톡톡 바닥을 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는 호흡의 흐름과 그 흐름에 맞춰 부드럽게 몸을 움직이는 사람들. 무용인가? 춤인가? 에어로빅?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함께한 모두에게 빛이 나는 것 같았다. 지금은 사과꽃발도르프학교의 새학사로 되살려진 옛 향천유치원의 2024년 1월 6일 토요일 오전의 풍경이다. 사과꽃발도르프학교의 겨울방학 중 오이리트미 선생님을 모셔 진행한 오이리트미 워크숍이었다. 유치원의 폐원 이후 공간에서 아주 오랜
빨래를 걷어 개고 있다. 짝이 없는 양말이 4개나 된다. 나머지 양말을 찾아 다시 세탁기로, 건조기로 향한다. 없다! 대략 난감이라는 게 이럴 때 딱 어울린다. 범인은 연령별로 있다. 남자다. 최소한 3명이다. 순간, 욱 하고 뭔가 올라온다. 우리 집엔 남자가 넷이고 나만 여자다.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또 양말을 뒤집어서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거야? 세탁기에 넣던가, 세탁 바구니에 넣으라니까! 마음대로 벗어서 아무렇게나 놓으니까 짝 잃은 양말들이 늘어나는 거다. 운이 좋으면 하루 이틀 사이에 찾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영 헤어질 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