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세차게 부는 날이면 바다처럼 넓은 예당저수지엔 파도가 인다. 고향집과 너른 옥토가 잠든 자리다.60여년 전 완공된 저수지를 사이에 두고 대흥지역은 면소재지 3개 마을과 9개 마을로 갈라졌지만, 사람들은 물 위를 오가며 삶을 이어나갔다.이들의 발이 돼준 건 행정선 ‘충남 504호’. 1970년부터 88서울올림픽이 열린 1988년까지 운전원으로 일한 임하규(79, 동서리) 어르신은 5톤짜리 배로 매일같이 물살을 헤치며 온갖 사연을 실어날랐다.하루 4번 운행했지만 막배를 놓쳐 발을 동동거리는 이가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했고, 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당저수지를 몇 번이고 돌아봤지만, 만나지 못했다.그 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봉산이허구 종길이가 맹글었지. 현종길이는 세상을 뜨구, 봉산이도 지금은 몸이 성하진 않지? 그러구 배 맹그넌 이가…”박규진(89, 대흥 송지대야리 도덕골) 어르신이 힘겹게 떠올린 이름이다.“지금 목선 그런 거 맹글 게 뭐 있어. 다 프라스틱으로 배꼈지. 지금 프라스틱배 좋아. 아주 좋아, 개볍구 ”박 어르신은 평생을 예당저수지에서 고기잡이 일을 해 왔지만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어업권도 딸 부부에게 넘겨주고 일을 그만
대흥면 탄방리, 방앗간 앞 길모퉁에 나락을 가득 실은 트럭 옆으로 너댓의 사내들이 모여있다. 오후 4시를 넘긴 시간, 콤바인을 실은 트럭이 서둘러 다리를 건너온다. 이제 곧 겨울이니 해는 짧고 할 일은 밀렸을게다.다리 너머는 신양면 무봉리. 신양천이 흘러 예당저수지와 만난다. 냇가를 따라 좁은 농로에 들어서자 붕어비늘처럼 반짝이는 예당저수지의 저녁풍경이 돌아가라고 손사래를 한다. 아니나 다를까 또다른 트럭이 콤바인을 업은채 좁은 길에 마주섰다.수변을 따라 무봉리를 빠져나와 황계리에서 큰길로 올라타면 광시면 월송리, 장전리를 지나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