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말잇기는 재밌다. 에너지 넘치는 아들 셋을 키우다보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겼다. 끝말잇기는 참 재밌다고 세뇌(?)를 시킨 것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같이 운동장을 뛰어다니며 공을 차거나, 하루 종일 팽이를 돌리거나, 딱지를 접어주는 것보다 훨씬 쉽다. 

앉아서도 누워서도 할 수 있고, 집에서든 차에서든 장소도 상관없다. 둘이든 셋이든 넷이든 인원도 상관없다. 정말 최고의 놀이다. 

시작은 언제나 깔끔하고 활기차다. 오늘도 초등학교 3학년과 재밌는 놀이를 한다. 

“기차!” 

“차표” 

너무 많이 해서 이젠 외울 지경이다. 차표-표범-범인-인간-간장-장미-미술. 

이제부터가 고비다. 

“술래!”

래? 나는 고민하는 표정을 짓는다. ‘래’ 걸린 사람은 난감한 표정을 짓고 술래! 를 외친 사람은 해죽해죽 웃으며 기다린다. 그때 참견하는 사람이 나타난다. 주로 남편이다. 

“래미콘! 이런 거 하면 되잖아.”

“그거 ‘레’ 아니야?”

초등학생이 이의를 제기한다. 의견을 모아 일단 외래어는 둘 다 사용하는 걸로 인정한다. 

래미콘-콘칩. 다시 참견쟁이가 나타난다. 

이번엔 ‘콘칩’과 ‘콘칲’을 놓고 열띤 토론을 한다. 그러고는 인터넷 검색을 한다. 그러다 어떤 과자가 더 맛있는지 품평을 한다. 초등학생이 갑자기 과자가 먹고 싶다며 부스럭거리며 과자봉지를 뜯는다. 치토스나 썬칩은 우리 아들의 끝말잇기 친구다. 과자를 먹으니 마음에 여유가 생겼나보다. 

“무승부로 하고 다시 할까?” 

“그래!”

나도 동의한다. 다시 시작하는 건 늘 새롭고 기대가 된다. 머릿속으로 무슨 낱말로 끝을 낼지 굴려본다. 뭐든 오래하면 재미가 덜하고 힘드니까 그러기 전에 끝내야 한다. 물을 벌컥 마시던 참견쟁이가 갑자기 놀이에 끼고 싶은가보다. 

“냉수!” 

또다시 시작된다. 

“수영!” 

아들이 팔을 휘저으며 대답한다. 

“영혼!” 

영혼까지 끌어 모아 끝내고 싶은 내가 대답한다. 

“혼인!” 

남편의 외침에 갑자기 분위기기가 70년대 교실이 된다. 

“혼인? 혼…… 많은데. 혼밥도 있고 혼코노도 있고.”

초등학생이 혼인이 마음에 안 드는지 자꾸 다른 단어를 갖다 댄다. 혼밥은 알겠는데 혼코노는 뭐지? ‘혼자 코인 노래방’이란다. 

“그런 이상한 단어 만들지 말고오~ 다시! ‘인’자로 시작하는 말은? 인기!”

난 기차-차표-표범을 되뇌며 다시 한바퀴 돌아도 재밌게 놀아주겠노라 마음을 다잡는다. 그런데 초등학생이 샐쭉거리며 웃는다. 자신있다는 표정이다. 

“기름!”

름? 름? 앗, 걸려들었다. 내가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가로 젓는다. 이쯤해서 끝내고 이제 쉬고 싶다는 염원을 보태본다. 

“오늘도 아들이 이겼네!”

하지만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이 엄마의 당황스런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 너그러운 표정을 짓는다.

“엄마 ‘름’은 아무리 생각해도 없지? 그렇다면! 기름 말고, 기차!”

이해나 공감을 경험한다는 건 삶에 큰 용기를 준다. 쉬고 싶은 마음이 쏙 들어간다. 다시 활기차게 시작해야 한다. 차표-표범-범인-인간-간장-장미-미술.

뉴스가 흘러나온다. 의대정원반대를 하는 전공의들의 파업에 이어 의대교수들도 집단사직서를 낸다고 한다. 동동거리며 병원을 찾는 환자들이 화면에 나온다.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나보다. 

“그렇다면!”이라고 말해 줄 상대방이 없나보다. 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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