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래를 걷어 개고 있다. 짝이 없는 양말이 4개나 된다. 나머지 양말을 찾아 다시 세탁기로, 건조기로 향한다. 없다! 대략 난감이라는 게 이럴 때 딱 어울린다. 범인은 연령별로 있다. 남자다. 최소한 3명이다. 순간, 욱 하고 뭔가 올라온다. 우리 집엔 남자가 넷이고 나만 여자다. 

내가 몇 번을 말했는데 또 양말을 뒤집어서 아무렇게나 던져 놓았던 거야? 세탁기에 넣던가, 세탁 바구니에 넣으라니까! 마음대로 벗어서 아무렇게나 놓으니까 짝 잃은 양말들이 늘어나는 거다. 운이 좋으면 하루 이틀 사이에 찾지만 그렇지 않으면 영영 헤어질 수도 있다. 어디 양말뿐인가? 막내 아들은 눈사람을 만들러 나가기 직전 장갑을 한 짝만 낀 채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그러게 잘 챙겨 놓지, 또 아무렇게나 벗어 던진 거야?”

불난 집에 부채질도 확실히 하면서 물건을 잘 챙겨야 한다는 교훈도 심어주는 일석이조의 말을 내뱉었다. 귀에 들어올 리가 없는 말이다. 

화장실 변기는 늘 내 마음에 안 든다. 흔적을 남기고 나오는 남자들 때문이다. 이걸 어떻게 한담? 으으으윽! 복수를 하고 말겠어!

복수! 머릿속을 스쳐 지나는 통쾌한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학교폭력을 당한 주인공이 성인이 되어 친구들에게 하는 처절한 복수. 드라마는 학교 폭력에 대해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계기를 만들며 숱한 화제를 낳았다. 

폭력의 피해자였던 사람들의 말 못했던 고백도 이어졌다. 참고 견뎌왔던 시간동안의 아픔이나 고통을 비로소 내려놓을 수 있는 듯 보였다. 마음에 상처를 받은 사람의 복수는 복수 그 이상이었다. 드라마니까 가능했던 이야기였고 결과였다. 보는 내내 가슴이 먹먹했다. 

복수가 먹먹한 건만 있는 건 아니다. 독일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던 손흥민의 인터뷰는 통쾌한 복수였다. 독일과의 월드컵 경기 승리 후 ‘축구로 이겨서 복수’하게 되었다는 축구스타의 말에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실력으로 복수한다는 거, 참 멋지다. 아, 그리고 오래전 그날이 떠오른다. 

열심히 썼다고 자부했고, 노력했다고 믿었던 작가 입문 시절. 매번 고배를 마셨던 신춘문예와 공모전으로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언니! 내가 아는 아주 유명한 분인데. 한 번 봐봐. 언니가 언제 등단하는지 알려 줄 거야”

동생이 아는 유명한 분은 사주를 공부한 분이라고 했다. 얼떨결에 영문도 모른 채 동생을 만나러 간 자리에 나와 있던 젊은 분(?)에게 난 그날 내 꿈을 날릴 뻔 했다. 

“등….단이요? 작가라…. 흠…. 안되겠는데요”

등단이나 작가라는 단어에 대해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는 듯한 어색함이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유명하다는 그의 말에 난 적잖이 실망을 했다. 지금 생각해도 한숨이 나온다. 그 분 때문일까? 나 때문일까? 십여 년도 훨씬 지난 지금은 나 때문이라는 걸 깨달았다. 난 복수를 했으니까. 나의 꿈에 대해 망설임 없이 안 된다고 했던 말이 떠올라 실망을 떠나 화가 났던 게 사실이다. 

이걸 어떻게 한담? 으으으윽! 복수를 하고 말겠어! 나의 처절한(?) 복수 덕분에 지금 글을 쓰고 있다. 아! 양말, 변기. 나의 복수가 또 힘을 내려 한다. 머리를 굴려 본다. 이번 복수는 두뇌싸움이다. 아니 인내싸움이 될 수도 있다. 

당분간 세탁을 하지 않아 냄새나는 양말을 집안 곳곳에 모셔둔다. 당분간 화장실 청소를 하지 않아 냄새나는 곳에서 볼일을 보도록 배려한다. 

상상만 해도 기분이 좋다. 흐흐흐흐, 쌤통이다! 역시 복수는 해야 맛이다. 어라? 그런데 나는 오늘도 양말을 찾아 이 방 저 방 구석구석을 살피고 다닌다. 화장실 변기에 물을 뿌려가며 박박 문지르고 있다. 이런! 복수를 할 타이밍을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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