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석문봉을 마주 보고 백제의미소길을 알리는 표지석 우측으로 상가리 마을을 낀 서원산자락을 오르다 보면 정갈하게 정비 된 묘역이 눈에 들어 온다.바로 고려 공민왕 때 충신 유숙의 묘이다. 유숙의 본관은 서산(瑞山), 호는 사암(思菴). 관에서 관리치 않음에도 깔끔함은 아마도 서산 유씨 문중의 관심일 것이다.묘역에 들어 남쪽을 보면 그의 기상처럼 우뚝한 원효봉이 올려다 보이고 후덕한 서원산 능선이 뒤를 감싸고 있다. 남연군 묘에 못지 않은 음택(陰宅)이다. 세월의 풍상을 말해주는 거북좌대의 웅장함은 근동 어디에서도 찾기 힘든 석물
초등학교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보덕사(報德寺)를 찾았다. 꽤 골이 깊은 서원산 중턱인데도 진입로는 깔끔한 포장길이다. 초파일을 며칠 앞둔 시절이라 사찰은 분주하다.초·중등시절 소풍을 와 선생님을 밀어 넣고 손뼉을 치던 그 연못엔 수련 몇 송이 잠에서 깨어 나를 반기고 있다. 가야사를 불태우고 그 죄스러움을 조금이라도 갚을 마음에 고종이 등극하자 대원군은 보덕사라 이름하여 이 절을 짓는다. 6·26전쟁 때 불에 탄 것을 1951년 중창하고 1962년에 증축을 거쳐 오늘에 이른다.극락전 앞의 석등은 가야사터에 있던 고려시대 유물로 충남문
가야산줄기 서원산이 봉산과 면천방향으로 뻗은 구릉에 예산화전리석조사면불상(禮山花田里石造四面佛像)이 있다.1983년 화전리 미륵당이라고 불려진 야산에서 발견된 것으로 사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상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사면불상이다. 사면불상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 서, 남, 북 방위에 사방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이 있다. 남쪽면에는 여래좌상(如來坐像)의 주존불이 동, 서, 북 3면에는 여래입상이 약 1m 내외의 크기로 각각 조성돼 있다. 머리는 모두 파괴되
덕산면 소재지에서 가야산 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옥계저수지 상류에 옥병계를 표시하는 입석이 있다.18세기 기호학파의 학맥을 이은 강문팔학사의 1인인 병계 윤봉구(공조판서, 1683-1768). 선생이 낙향해 주자의 무이구곡(武夷九曲)을 본 따 이름한 가야구곡(伽倻九曲) 중 제 2곡이다.조선시대 많은 시인 묵객들이 즐겨 찾던 명소로 수직의 병풍모양으로 ‘병풍바위’라 불렀다. 바위 아래로 티 없이 맑은 물이 흘러 ‘옥계(玉溪)’라 설정했으며, 이 마을 지명도 그 연유이다. 신라말 학자 고운 최치원의 ‘세이암’. 암각체가 ‘고운(孤雲)’이
비가 온 뒤의 신선함이 등촉의 밝음에 더한 청정한 가얏골이다.상가리미륵불은 남연군묘에서 동북쪽으로 150m 떨어진 곳에 있는 골짜기에 북향해 서 있는 불상이다. 가야사를 바라 보고 있었으나 대원군이 가야사를 없애고 남연군묘를 쓰자 반대편으로 등을 돌렸다는 설도 있고, 북쪽 계곡으로부터 쳐들어 오는 병마를 물리치기 위해 북향하고 있다는 설도 전해진다.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의 중앙에 화불(化佛)이 장식된 것으로 봐 관세음보살임을 알 수 있다. 이마에는 백호(白毫)가 있고 눈은 반 쯤 뜨고 있다. 코는 보수한 흔적
가야산에 가면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가 있다.덕숭산 뒷편으로 길게 연이은 내포의 진산(鎭山) 가야산 자락에 2대에 걸쳐 임금이 난다는 남연군묘가 있다. 남연군(이구)은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아비다.풍수에 문외한인 이가 봐도 그 묘앞에 서면 가야봉, 석문봉, 옥양봉, 원효봉, 서원산에 둘러 싸인 풍광이 가히 장관이다. 정치적 야심을 숨기고 파락호(破落戶)의 생활을 하던 대원군은 당대의 지관 정만인에게 묘지를 물색케 해 2대에 걸쳐 왕이 난다는 그 자리에 자기 아비의 묘를 이장케 한다. 전해 오는 일화에는 명당터에 가야사의 금탑이
향교는 조선 초기부터 공립 교육기관이면서 선현을 제사하는 곳으로 지방의 군현마다 설치됐다.덕산향교는 덕산읍 남서쪽, 가야산 아랫부분에 창건한 뒤 한 번도 자리를 옮긴 적이 없어 고풍스런 모습이 보이는데, 특히 내삼문으로 오르는 계단이 그 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겪으면서 불에 타 없어졌다가 인조 때 중건했고, 이후 여러 차례 보수를 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이 없이 앞에는 유생들이 공부하던 공간인 명륜당, 뒤에는 대성전을 두고 있다. 명륜당 동쪽에 붙어 있는 중문을 통해 향교로 들어서면 명륜당 뒤에 정원이 있고 동쪽에 동재, 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