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가 끝나니 폭염이다. 어딘들 안 그럴까 마는, 오일장 역시 지난한 계절이 시작된 것이다.에어컨은 커녕, 선풍기 하나 없는 오일장의 여름나기 비법은 ‘한결같이 치열한 삶의 에너지’다. 그 때문에 이글거리는 태양아래서도 양산을 받쳐 쓰고, 손수건으로 땀을 훔치며 오일장으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있다.강기호(56), 김종례(61) 부부는 3개월 전부터 역전오일장 옆에서 돼지국밥집을 운영하고 있다.차일 위에 검은 그늘막을 덧씌워 햇볕을 차단한데다 사방이 트여있으니, 바람만 불어주면 한낮 더위도 견딜만 하다. 덕분에 시장
날이 점점 더 뜨거워지고 있다. 손님들이 약속이나 한듯, 한낮을 피해 이른 아침이나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하는 늦은 오후에야 얼굴을 내민다.그렇다고 자리를 비울 수 없는 상인들은 하루종일 불볕더위를 견뎌야 한다. 하물며 끓는 기름솥 앞에 서서 핫바를 만드는 홍광덕, 윤현미 부부건만 에너지가 넘친다.“어머니, 뭐드려요?”, “언니는 뭐?”, “아버님 시원한 물이랑 같이 드셔요”, “소스 발라드려? 어떤거? 케찹? 머스타드? 두가지다?”이게 다 오일장에서 여름을 열다섯 번이나 난 내공 덕이다.하얀 모시한복에 중절모를 쓴 할아버지
지난 5일 월요일. 언제부턴가 오일장도 주말이 닿아야 좋고, 주초에는 ‘별 재미를 못본다’고 한다.“일요일날 가족들이랑 나가서 돈 많이 썼으니, 주초에는 아껴볼라고 그러는거 아니겄어?” 이유를 궁금해하는 기자에게 상인들은 힘도 안들이고 정답을 툭 던진다. “장이 맨날 월요일에만 있간? 토요일날 닿기두 허구. 그러믄 외지사람들 많이 오니께 월요일장 축난거 덮고 그러지” 수십년 시장살이가 주는 여유다. “농사져서는 품값도 못건진다”면서도 봄이 되면 또 씨앗을 뿌리는 농민들처럼 “대형마트 땜에 전통시장 다 망한다”면서도 장을 떠나지 못하
전통 오일장에서 빠지면 안되는 장사가 있다. 예산장 옛 쇠전거리로 들어가면 장이 서는 곳, 바로 가축전이다. 대가축을 거래했던 쇠전은 오래 전에 장터를 떠나 우시장으로 독립했지만 아직 그 자리엔 작은 가축들을 거래하는 장터가 맥을 이어오고 있다.지난 25일도 장꾼 4명이 어김없이 차일을 치고 가축들을 내려놨다. 크고 작은 철망안에 염소, 개, 고양이, 토끼
오일장에는 제철 과일이나 채소, 생선 같은 것 말고도 계절품목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모종시장이다. 1년 중 봄 한철(3월 중순~6월 말)에만 형성되는 모종시장. 덕분에 이즈음에는 장바닥에 싱그런 연초록 빛이 깔린다. 10일 예산장, 어김없이 모종상들이 장터 곳곳에 포진해 있다. 김순한, 김정자(오가 오촌리) 부부가 오일장 안, 예산상회 맞은편에서 직접 씨
5일 예산장, 가뭄 끝에 오는 단비지만 오일장 상인들에게는 결코 반갑지 않다. 장꾼들이 크게 줄어 시장이 썰렁하고 매출도 반토막 나기 때문이다. 회색빛 낮은 하늘에 비까지 내려 칙칙한 장마당을 빛내주는 건 빨간 딸기, 노란 참외와 바나나, 주황빛의 오렌지와 천혜향 같은 과일들이다. 알록달록한 색깔에 눈이 환해지고, 그 맛을 생각하니 침이 고인다. 예산장 입
읍내장의 명물 국화빵집, 예산시장 입구(조흥정육점) 오른쪽으로 나란히 펼쳐진 먹거리장터 세 번째에 자리잡고 있다. 김진수(61), 김기분(61)부부가 장날이면 어김없이 등장한다. 어묵과 계란빵, 번데기, 옥수수도 있지만, 정중앙은 언제나 국화빵 차지다. 한틀에 19개씩, 세 개의 틀에서는 부드럽고 고소하고 달콤한 국화빵이 쉴틈없이 구워져 나온다. 묽은 반죽
오일장에 봄꽃이 피었다. 10일 오후, 영상 10도를 넘어서며 봄기운이 완연한 예산읍내 오일장. 지난 장보다 훨씬 활기가 느껴진다. 이런 봄날엔 딱히 살 생각 없이도 그냥 지날 수 없는 곳이 있으니 바로 꽃나무전이다. 꽃나무 아저씨 이채규씨의 자리는 읍내 오일장터 채소전 한가운데다. 말그대로 ‘꽃샘추위’가 물러갔으니 어림짐작 100여종은 더 돼보이는 꽃들을
“우리 신랑 오늘두 칡 캐러 산에 갔는디, 가져오랄 수도 없구…. 역전장으로 오세유. 내 갖고 나갈게”다 팔린 물건을 찾는 손님들에게 다음 장을 기약한다. 간판은 없지만, 약속된 날 약속된 장소에서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오일장 상인들은 분명 떠돌이상이 아니다. 예산읍내 오일장 예산상회 맞은편에 넓게 자리를 펴고 250여가지 각종 약초, 약
수은주가 영하 10도 가까이 떨어진 날씨에 대보름 대목장마저 얼어붙었다. 오일장이 예전만 못해도 명절 대목에는 사람이 붐비건만, 찬바람 쌩쌩부는 장마당은 기대 이하다. 날씨가 이렇든 저렇든 꼼짝없이 나와야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바로 오일장 사람들이다. “이거 봐봐. 삶은 나물이 이렇게 얼어서 한덩어리가 돼버렸어”나물 종류가 이렇게 많았던가. 자주색 고무함
땅으로 허리가 가까워진 한 할머니가 뒤춤에 들고 온 비닐봉다리에서 헌 운동화 한 짝을 꺼내놓는다.“이것 좀 꿰메 줘”구두 뒤축을 칼로 다듬고 있던, 나이가 지긋한 수선공은 힐끗 쳐다보고 말이 없다. 그럼 된 것이다. 더 이상의 말은 성가실 뿐. 삽교·덕산·고덕 등 시골 오일장을 간판삼아 50년 가까운 세월을 쓰다듬고 달래며 수선일을 해 온 고정덕(77)씨.
“글쎄, 한 40부터 나 혼자 나왔지. 그전이는 어머니가 다니셨구. 옛날에는 차가 읎었잖어. 지금은 형제고개 저렇게 해놨으니께 그렇지 더 높었어. 그 고개를 걸어서 내가 여다두 드리구, 어머니 안나오시믄 내가 나오기두 하다가, 4남매 학교 들어가구 보니께 농사져서 그거 어뜨케 다 가르쳐. 그래 어머니 그만 나오시라구 하구 내가 혼자 하기 시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