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정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음이 경건해진다. 마른 나무 가지에서 올라오는 새순과 낙엽을 살며시 들추면 보이는 다년생 화초들의 새싹에서 ‘자연의 위대함’을 진정으로 깨닫는 순간이 바로 봄이다. 

반복되는 모든 일은 지겨움을 느끼게 하지만, 계절의 반복 그중에서도 봄이 오는 것은 늘 새롭고 경이롭고 감사하다. 무채색 정원에 고운 물감으로 채색하듯 꽃이 하나하나 피어나면 마치 태어나서 처음 보는 것처럼 감동한다. 사실 정원의 봄은 그렇게 쉽게 오지는 않는다. 늘 마음이 먼저 와서 기다리기 때문에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올해 역시 야속하게도 몇 차례 차가운 비가 내렸고 영하의 추위가 있었다. 여린 새싹들이 견뎌낼까 하는 우려가 앞선다. 하지만 걱정하는 것은 사람일 뿐이고, 꽃들은 그것을 다 이겨낸다. 

 

3월 3일에 핀 크로커스.
3월 3일에 핀 크로커스.

우리 집 정원에서는 눈 속에서도 핀다는 복수초가 제일 먼저 폈다. 그 다음은 키가 불과 10cm도 되지 않는 크로커스가 피고 히야신스와 미니아이리스가 뒤를 이어 피어났다. 작고 귀엽지만 위대한 꽃들이다. 흙더미를 머리에 이고 나와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꽃들은 키가 작다. 

키 큰 화초들이 자라기 전에 서둘러 꽃을 피워 자기의 존재를 알려야 하기에 마음이 급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본다. 영춘화와 산수유나무가 노란 꽃을 터트리니 정원에 조명등을 켠 듯 환해진다. 

혹시라도 소식이 늦어지는 화초가 있으면 머릿속에 있는 정원 지도를 기억하여 손가락으로 살살 파보면 영락없이 “나 여기 있어요”하고 얼굴을 내민다. 그럼 그렇지. 언제나 정확한 땅 속 시계에 맞춰 잘 왔구나.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모른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마침 날아와 지저귀는 새소리도 이제는 노랫소리로 들리고 매사에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3월 이후부터는 정원 일이 더욱 많아지고 바빠진다. 심고 가꾸는 일이 대부분 쪼그리고 앉아서 하는 일인지라 손가락과 무릎이 아프다. 그러나 그것이 대수일까. 몸의 고단함과 달리 어두운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이고 기쁨이 충만해지니 이런 일도 흔치 않으리라. 

정원을 가꾸기 전에는 부지런하고 충실한 삶을 살아본 적이 있었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즐겨보는 드라마의 다음 회차를 기다려 본 적이 있는가. 정원을 가꾸는 일은 언제까지 끝나지 않으며 매우 마음에 드는 주인공이 나오는, 재미있는 드라마와 같다고 생각한다. 그 드라마의 기획자는 자연이기 때문에 결과는 언제나 경이로우며, 연출자는 나 자신이기에 만족감은 참으로 크다. 

올봄에도 회초리만한 묘목 한 그루를 심으며, 이 나무가 멋진 거목이 될 때까지도 끝나지 않는 아름다운 나의 드라마를 써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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