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살의 성균관 유생이라면 초보 정객이다. 이런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무슨 죄를 얼마나 지었기에 시베리아 추위에 살을 에는 최북단 경원으로 쫓겨났을까? 

“성상께서는 깊은 궁궐에서 지내기 때문에 그가 이토록 권세를 마음대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계십니까? 아니면 그가 마음대로 권세를 휘두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를 어질다고 여겨서 맡겨 의심을 하지 않고 계시는 것입니까? 만약 어질다고 여겨서 의심을 하지 않으신다면, 신이 비록 어리석으나 분변을 해 드리겠습니다. [聖明深居九重 不知其專擅之至此乎 抑雖知專擅 而以其爲賢 委任不疑乎 如以爲賢而不疑 則臣雖愚黯 可以辨之矣]”


세상을 뒤집어 놓은 병진소

(도1) 《고산유고》의 ‘병진소’ 부분.
(도1) 《고산유고》의 ‘병진소’ 부분.

《고산유고(孤山遺稿)》에 실린 글이다. 여기서 성상은 임금이다. 임금에게 올린 글이다. 임금에게 올린 글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어려운 내용과 어투다. 1616년 12월 21일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은 청년 윤선도의 ‘병진소(丙辰疏)’(도1)의 한 대목이다. 윤선도는 강골 그 자체다. ‘그’는 바로 이이첨(李爾瞻, 1560~1623)이다. 이이첨이 광해군을 등에 업고 국정 농단을 하고 있다는 얘기다. 개혁가와 간신 사이를 오가는 평가를 받는 권신이 있지만, 역사는 이이첨을 단순한 정계의 실력자 권신(權臣)을 넘어 분명한 간신(奸臣)으로 기록해주고 있다. 《다시 쓰는 간신열전》라는 책이 있다. ‘간신을 감별하지 못하면 기업도 나라도 망한다’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이 책에서는 우리 역사에서 19명의 간신들에 대해 쓰고 있다. 여기에 이이첨은 <오직 나만이 ‘왕의 남자’다>이란 제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당시 이이첨의 행태를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자료가 윤선도의 병진소다. 병진소의 또 다른 대목이다.

“신하된 자가 참으로 나라의 권세를 오로지 쥐게 되면 자기의 복심(腹心)을 요직에 포진시켜 상과 벌을 자기에게서 나오게 합니다. 설령 어진 자가 이렇게 해도 안 될 일인데, 만약 어질지 못한 자가 이와 같이 한다면 나라가 또한 위태하지 않겠습니까. 지금 훌륭하신 상께서 위에 계시어 임금과 신하가 각기 자신의 직분을 다하고 있으니 이러한 자가 없어야 마땅하겠습니다만, 신이 삼가 예조 판서 이이첨(李爾瞻)의 하는 짓을 보니 불행히도 이에 가까우므로 신은 삼가 괴이하게 생각합니다.”

윤선도는 국정 농단의 핵심으로 이이첨을 콕 집어 이야기하고 있다. 계축옥사와 인목대비 폐비 사건의 한복판에 이이첨이 있었다. 그는 많은 사람들을 유배지로 내몰아 자기 세력으로 물갈이를 했다. 당시 나는 새도 떨어뜨리던 이이첨의 전횡을 윤선도는 만천하에 알렸다. 윤선도는 기개(氣槪)가 있던 청년이었다. 

“이상! 빛나는 귀중한 이상, 그것은 청춘의 누리는 바 특권이다. 그들은 순진한지라 감동하기 쉽고, 그들은 점염(點染)이 적은지라 죄악에 병들지 아니하였고, 그들은 앞이 긴지라 착목(着目)하는 곳이 원대하고, 그들은 피가 더운지라 실현에 대한 자신과 용기가 있다.”

유명한 명문 수필, 민태원의 <청춘 예찬>에 나오는 글이다. 그렇다. 청춘이라면 더러움에 오염되지 않고, 더러워 가는 것을 보면 한 번이라도 부딪혀 보는 용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 당시 현실은 그랬을까?


이이첨의 전횡 고발

“관학 유생(館學儒生)에 이르러서도 그의 파당이 아닌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관학의 소장(疏章)이 또한 겉으로는 곧고 격렬하지만 속은 실제로 아첨하며 빌붙는 내용이 아닌 것이 없습니다. 이와 같기 때문에 자기 편이 아닌 자는 비록 사람들의 중망을 받고 있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하고, 자기와 뜻이 같은 자는 사람들이 비루하게 여기는 자라도 반드시 등용합니다. 모든 일을 이렇게 하고 있는데, 비록 하나하나 거론하기는 어렵습니다만, 미루어 보면 다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그가 권세를 멋대로 부리고 있는 것이 또한 극도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당시 윤선도와 함께 동고동락하던 정치 초년생 성균관 유생들도 이이첨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했다. 뒤에서는 이이첨을 비난하지만 앞에서는 굽신거리기 바빴다. 아첨과 뇌물, 그리고 온갖 부정행위는 간신의 핵심 세트다. 이이첨은 핵심 세트로 권력을 쥐었다. 권력을 얻어 쥔 이이첨은 이 핵심 세트를 되받고자 했다. 

윤선도가 상소를 올린 지 보름 후, 광해군 9년째 들어가는 1617년 1월 4일, 광해군을 향한 또 하나의 상소가 파장을 일으켰다. 귀천군ㆍ금산군ㆍ금계군 등 19인이 이이첨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다. 광해군 종친(宗親)들이 올린 것이다. 역시 장문의 상소다. 

“예조 판서 이이첨은 간사하고 악독하며 괴팍하고 교활하여, 사당(私黨)을 널리 심고 충신들을 모두 내쫓았으며 국권을 농락하여 위세가 날로 성해지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붙좇는 자는 아무리 완악하고 염치 없으며 언행이 패려한 자라도 반드시 이끌어 주어 승진시키고, 자기에게 반대하는 자는 아무리 학문이 높고 행실이 뛰어나서 세상 사람들이 떠받드는 자라도 반드시 배척해서 물리쳤습니다. 기염이 하늘까지 치솟아 길가는 사람들이 눈짓들만 하고 있으며, 충성스럽고 어진 사람들이 입을 다문 채 고개를 움추리고 있고 간사하고 사특한 자들이 팔을 휘두르며 몰려들고 있습니다.”

이 종친들의 상소는 당시 윤선도의 병진소를 뒤받쳐 주었다. 윤선도의 상소가 깊은 충정에서 나온 사실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이이첨의 횡포가 두려워 한 마디 못하고 숨죽이고 있는 걸 넘어 오히려 빌붙기 바쁜 당시 정국의 세태가 고스란히 읽힌다. 병진소에 담긴 윤선도의 그 표현은 강경일변도다. 사생결단을 각오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상소다. 현실을 인식하는 태도가 너무도 처절하여 그 기개는 하늘을 찔렀다. 그의 상소는 조야에 큰 충격과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 이이첨에 대한 저항의 불을 지핀 이가 노정객도 아니고 중진 정객도 아닌 젊은 혈기의 윤선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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