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83년 7월~ 미상 (본적 신양면) - 2021년 건국훈장 애족장김현규 선생은 친일을 일삼던 마을 이장을 겁박하다 일제에 쫓기자, 예산지역 민창식 의병부대에 투신했던 신양면 출신 독립운동가다.1907년 고종이 강제로 퇴위당하고 대한제국의 군대까지 해산되자, 전국적으로 의병운동이 확산됐다. 의병들은 일본군에 본격적으로 저항하거나 일진회원을 비롯한 친일주구배(親日走狗輩)를 처단하는 활동을 통해 국권을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이러한 의병투쟁이 전개되던 1908년 음력 9월에 김현규는 부하 60명을 이끌고 민창식 의진에 합류했다. 같
- 1855년 11월 3일~1907년 9월 26일-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 (본적 대술면)이남규는 충남 예산사람으로 1855년 11월 3일 출생했다.그는 1861년 허전(許傳)의 문하에 들어가서 일찍이 유학으로 이름을 떨쳤다. 1875년 사마시에 합격해 승문관권지부정자를 거쳐 형조참의·영흥부사·안동관찰사 등을 역임하다가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향리로 내려갔다. 1905년 을사조약이 늑결되자 ‘청군신상하배성일전소(請君臣上下背城一戰疏)’를 올린 뒤 깨끗이 처신할 것을 결심하고 두문불출했다. 1906년 4월 민종식이 의진을 일으켜 홍주에
- 1855년 2월 1일~1940년 4월 3일(본적 삽교읍)-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박인호는 1855년 2월 1일 충남 덕산군 장촌면, 현 예산군 삽교읍 하포리에서 출생했다. 박인호는 1914년 천도교주가 돼 3·1독립운동의 중앙지도체 49인 중 한 사람으로 활동했다. 1896년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나 ‘제폭구민 척양척왜(除暴救民 斥洋斥倭)’의 기치를 들고, 7000여명의 동학군을 이끌고 압제와 싸우며 충청도 예산·신례원·홍주 등지에서 많은 공로를 세웠으나 외세의 개입으로 좌절됐다. 그후 1908년 1월 18일 천도교 대도주가 돼
- 1863년 3월 10일 ~ 1935년 7월 3일 - 2021년 건국훈장 애국장(본적 예산읍)남규진은 면암 최익현의 제자로 최익현으로부터 대중을 격려해 하루 속히 군사를 일으키라는 조언을 듣고 의병에 투신하고자 했다. 이로써 남규진은 을사늑약 이후 민종식, 이용규, 유준근(柳濬根), 이식(李植) 등과 함께 항일을 위한 의병을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추진했다. 이를 위해 민종식이 가산을 판 돈 2000원을 군자금으로 활용해 군수품을 마련하고 함께 거병한 남규진 등과 1906년 3월 홍주성에 진입해 총기와 탄약을 약탈하려고 계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