굵은 빗방울이 내리는 궂은 날씨 때문에 발길은 줄었지만 ‘사람 사는 냄새’는 여전하다.“닷새마다 어우러져 장을 펼치네. 구경한번 와보세요. 보기엔 그냥 시골장터지만. 있어야 할 건 다 있구요. 없을 건 없답니다. 구경한번 와보세요. 오시면 모두모두 이웃사촌. 고운 정 미운 정 주고 받는…”노래가사처럼 언제나 정감이 넘쳐나는 공간, 추석대목을 앞두고 열린 8월 30일 예산장이다.오가 내량리에서 직접 농사지은 햇사과 홍로와 배를 수확해 장을 편 정무자(79)씨는 부산이 고향이다. “사과는 빨갛고 이쁜 거 고르면 된다” 충청도장터에서 들
잠시 숨을 돌리고 하늘을 본다. ‘역대급’으로 무더웠다는 여름이 물러가고 들판에는 오곡백과가 무르익으면서 햇과일의 향긋한 냄새가 감돌기 시작했다. 보송보송한 가을이 슬며시 기지개를 켜자 어느덧 추석 명절이 5일 앞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옛 말처럼, 추석은 우리에게 풍성하고 넉넉한 시간으로 다가온다. 공기처럼, 없어선 안 될 이들우리가 명절을 맞아 하던 일을 잠시 멈추고,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과 만나 회포를 푸는 사이, 누군가는 쉬고 싶어도 쉴 수 없다. 추석을 잘 보낼 수 있는 건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뜨끈한 국물이 목을 타고 넘어 뱃속을 데운다. 오랜 시간 푹 끓여 담백하면서도 진한 육수에 소머릿고기를 아낌없이 넣어 상에 올린다. 숟가락질 한 번에 몇 점이 올라올 만큼 푸짐하다. 시장에 나무나 찬거리를 팔기 위해 새벽부터 이른 길을 나섰던 이들이 허기진 속을 달랬던 맛이다. 포장 아래서 뜨거운 입김을 뿜어내며 후루룩 들이켰을 터. 막걸리와 함께 얼굴 모르는 사람들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하고, 좋은 값으로 송아지를 팔아 상기된 어느 가장의 자랑을 듣기도 했을 것이다. ‘예산장터국밥’에 스며든 풍경들이다.1926년 개
새벽녘 잡아올린 붕어에 고춧가루 양념을 얹어 1시간여동안 푹 쪄낸 예당붕어찜. 잔가시마저 부드럽게 씹히는 두툼한 생선살은 담백하면서도 감칠맛이 돈다. 시래기와 함께 흰 쌀밥에 척 얹어 먹으면 별다른 반찬을 곁들이지 않고도 금방 한 공기를 비운다.물고기 손질부터 상에 나가기까지 손이 많이 가는 데다, 조리시간이 길어 어디서나 흔하게 맛볼 수 있는 음식은 아니다. 붕어찜은 지난 1964년 예당저수지가 완공된 뒤 어죽을 파는 식당에서 매운탕 등과 함께 메뉴에 올리며 널리 알려졌다. 잉어와 붕어, 뱀장어, 동자개(빠가사리) 등 여러 어종이
산과 들에서 난 봄나물로 차려낸 식탁에서 계절의 내음이 물씬 풍긴다. 천년고찰을 찾은 이들의 오감을 즐겁게 하는 ‘수덕사 산채정식’이다. 다양한 나물이 가진 고유의 향과 식감은 없던 입맛도 살아나게 한다. 큰 대접에 밥을 넣고 고추장 한 숟갈, 참기름 한 방울 넣어 비벼도 좋다. 된장찌개를 한 술 떠먹으면 세상 그 무엇도 부러울 게 없는 맛이다. 돌솥에 한 밥을 퍼낸 뒤 뜨거운 물을 부은 숭늉까지, 더할 나위 없는 건강밥상이다. 산나물은 채식을 하는 사찰에서 주로 사용하는 식재료다.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절을 방문한 불자들에게 나물을
부드러운 식감에 한 번, 입 안을 가득 채우는 풍미에 또 한 번 놀라는 광시한우. 선홍빛 고기를 불판 위에 올리면 맛있는 냄새가 가득 퍼진다. 씹을수록 배어나오는 고소한 육즙은 젓가락질을 멈출 수 없게 한다. 깨소금을 살짝 찍어먹는 것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취향에 따라 얇게 썰어 간장양념을 뿌린 양파나 기름장을 곁들이면 다양한 맛을 즐길 수 있다. 대부분의 정육점이 직영식당을 운영하고 있어 신선한 생간과 천엽, 육사시미 등 생고기를 함께 상에 올리기도 한다.광시면소재지로 진입하면 600여미터 구간에 정육점과 한우식당 30여개가 줄지어
예산국수를 ‘후루룩’ 소리와 함께 빨아올리면 탄력있는 식감이 일품이다. 적당히 간이 된 면발은 육수와 어우러져 깊은 맛을 더한다. 일반 국수가락보다 쫄깃해 잘 붇지 않아 젓가락을 내려놓는 순간까지 변함없이 즐길 수 있다. 차진 면을 찬물에 헹궈 고추장 양념장을 넣어 비벼도 맛깔스럽다. ‘예산국수를 한 번 먹어본 사람은 다른 국수를 못 먹는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예산사람이라면 예산상설시장과 역전 근처에서 흰 국수면발을 대나무줄기에 나란히 걸어둔 모습이 낯설지 않다. 손으로 직접 뽑아 햇살과 바람에 말리는 과정이다. 예산읍내 국수가
풍미 가득한 육즙, 부드러운 식감, 달달하고 짭짤한 그 맛에 감탄을 쏟아놓게 되는 음식. 귀한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을 때, 조금은 특별한 날에 찾는 음식. 바로 소갈비다.먹거리가 풍부하고 맛집이 많아 웬만한 음식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예산사람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은 양념소갈비는 무려 80년 역사를 자랑한다. 오랜 전통과 깊은 맛으로 주민들은 물론 다른 지역 사람에게도 사랑받고 있다. ‘소복옥’ 목로서 먹던 맛 80년 지난 지금까지지금도 비싼 가격인 소고기,
예당어죽. 비싸고 화려한 음식은 아니지만, 한번 맛을 들이고 나면 칼칼하고도 고소하며 뜨끈하게 속을 채우는 그 맛에 계속 찾게 된다. 예산사람이라면 우리고장을 방문한 손님에게 ‘예산에 오면 이것은 꼭 먹어봐야 한다’며 어죽집을 데려간 적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비릴 것 같다’며 반신반의하는 상대가 한입 맛보더니 자세를 바로잡고 땀을 흘리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워내면, 왠지 모를 흐뭇함과 자긍심으로 뿌듯해진다.우리들의 어죽 사랑은 언제부터 시작됐을까.청년들의 천렵 그리고 딴산옥
오동통한 돼지곱창을 잘 손질해 노릇노릇 구워 먹으면 쫄깃쫄깃 고소한 맛이 일품인 삽다리곱창. 씹을수록 고소함과 담백함을 자랑하는 곱창구이를 즐긴 후 얼큰하고 진한 곱창전골을 빼놓을 수 있으랴. 한껏 땀 빼며 비워낸 그릇을 만족한 얼굴로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스스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삽교사람뿐만 아니라 예산군민과 전국민을 매료시킨 삽다리곱창, 언제부터 즐겨먹기 시작한 것일까?돼지고기가 흔하지 않던 시절, 사람들은 곱창 등 부산물을 구하면 대부분 삶아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마치 요즘 순대를 주문하면 함께 나오
2020년 6월 10일,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20년 세계 경제전망과 각국의 성장전망치를 발표했다. OECD는 2020년 경제전망이 매우 ‘불확실’하다면서도 2020년 가을에 코로나19 재확산이 없는 경우와 있는 경우로 나눠, 두 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코로나19 재확산이 없는 경우 2020년 세계경제는 -6% 성장(!)하고, OECD 회원국의 평균 실업률은 5.4%에서 9.2%로 상승하는 반면, 재확산이 이루어지는 경우 세계경제 성장률은 -7.6%, 2021년에는 2.8% 성장(!)이 전망되었고 OECD 회원국들의 실
주인을 잃은 채 참사의 현장에 덩그러니 놓여있던 운동화 한 짝! 그 운동화를 모티브로 한 평화공원이 시민의 힘으로 세워졌다. 18년 전 미군 궤도차량에 처참히 희생된 여중생 신효순, 심미선 양(15세)을 영원히 기억하고 불평등한 한미관계를 청산하자고 다짐하는 평화공원이 건립된 것이다.비극의 2002년 6월 13일, 사건은 미2사단 궤도차량(56톤)이 맞은편에서 오던 미군 브래들리 장갑차와 무모하게 교차운행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미군은 차폭이 도로폭보다 넓은 차량의 교차운행을 금지하는 한국의 도로교통법(14조 3항)과 미군 훈련
“고교 무상화 해 달랬더니 (학생들을) 일본 학교에 보내라고 합니다.”일본 후쿠오카 조선학교(후쿠오카현 북규슈시) 박광혁 교무부장이 학교를 방문한 대전청년회 방문단에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30여년째 조선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일본 정부의 차별이 근래 극심하다고 전했다.대표적인 예로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일을 꼽았다. 일본 학교의 경우 일본 중앙정부 조성금과 지방정부 조성금을 모두 받는다.조선학교의 경우 중앙정부 조성금은 단 한 푼도 없다. 지방정부 조성금도 그 액수가 매우 적다.여기에 더해 조선학교 졸업자
일본 후쿠오카조선학교 정문 앞에서 그를 만났다. 변호사 기요다 미키씨다. 그는 지난 2014년부터 후쿠오카조선학교 고교무상화를 위한 재판을 맡아 돕고 있다.후쿠오카조선학교 회의실로 자리를 옮겼다. 곧바로 2시간여 동안 대전청년회 방문단(대표 김원진)과 간담회가 이어졌다. 대전지역에서 통일운동을 벌이는 대전청년회 회원 6명은 자매결연을 위해 지난달 27일 후쿠오카 조선학교로 달려갔다. 이곳에는 유치부 외에 초급부 50명, 중급부 45명, 고급부 41명 등 136명이 다니고 있다.조선학교(우리학교)는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 조선인 자녀들
우리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 다가왔다.온 가족이 모여 정성스레 준비한 수확의 풍성함을 차례상에 올려 고마운 마음을 나눈다.그렇다면 제수용품을 어떻게 골라야 할까? 우리지역은 ‘사과의 고장’이기 때문에 과일은 크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 능금농협에 따르면 지금 나오는 사과는 중생종인 홍로와 아리수다. 생육조건이 양호해 색택과 크기, 당도, 모양 등 품질이 지난해보다 전반적으로 우수하고, 생산량은 8% 늘어난 9828톤으로 예상된다.보기 좋은 게 먹기도 좋지만, 올해는 군내 과수농가를 위해 기준을 조금 낮춰도 좋을 것 같다. 태풍 피해
한입 베어 물면 ‘바삭’.고소하고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명절 음식, 한과.추석을 앞두고 가을바람 따라 고소한 냄새 퍼지는 곳이 있다.예산읍 예산리 ‘예산한과’다.가정집 1층에 마련한 사업장에 들어서니 엿 고는 달큰한 향이 가득하다. 소쿠리에 듬뿍 담긴 유과가 반짝이는 엿 고물로 옷 입혀지길 기다리고 있다.이미영 사장은 옛 어른들이 집에서 만들던 방법을 배워 수제한과를 만들고 있다. “시집오니 명절마다 시어머니께서 한과를 직접 만드셨어요. 저는 막내며느리여서 따로 배우지 않고 있었는데, 어머님이 더이상 만들지 않으시는 걸 보니 그 기술
1914년 9월 태어난 봉기는 예산읍 신례원리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19살 이후 예산을 떠나 10년여 동안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았다.1943년 늦가을 함경남도 함흥군 흥남읍 농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여자소개꾼’인 일본인 남자와 조선인 남자 두 사람이 말을 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곳, 더운 곳이라 과일이 지천인 곳에 가자’고 했다. 이듬해 그가 도착한 곳은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의 일본군 위안소였다.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봉기는 “전쟁터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갈
이웃한 지자체지만 분위기는 확연하게 차이가 난다.한쪽은 군수까지 나서 적극적으로 메시지를 내고 있는 반면, 다른 한쪽은 이렇다 할 제스처 없이 상대적으로 잠잠하다. 이유가 뭘까?홍성군은 지난 1일 군청 대강당에서 직원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전국 33개 의병도시 중 처음으로 ‘일본 경제침탈 규탄대회’를 가졌다. 김석환 군수는 이날 부당한 수출규제 조치를 즉각 철회할 것을 요구하며, 민간단체 등 각계각층의 한목소리를 당부했다.그는 대한민국의병도시협의회장으로 32개 회원도시에 협조공문을 발송하기도 했으며, 군수실을 비롯한 각 실과
일본의 수출규제를 넘어서기 위한 ‘극일(克日) 운동’에 동참행렬이 잇따르고 있다.국익을 위해 진보와 보수 등 이념을 가리지 않고 한목소리로 경제보복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이는 양상이다.바른미래당 예산홍성지역위원회는 지난 10일 당원들과 지역을 돌며 ‘자유무역 짓밟은 아베정권, 보복조치 철회하라’고 촉구했다. 김석현 위원장은 “한일 양국이 쌓아온 신뢰를 한 순간에 무너트리는 퇴행적 행위”라며 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군내 12개 읍면 중에선 삽교읍이 가장 적극적인 모습이다. 삽교읍이장협의회(협의회장 인흥식)는 13일 36개 마을 이장들
예산군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영화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일본의 경제보복으로 극일감정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예산적정기술협동조합 꼼지락(이사장 우장식)은 8일 저녁 7시 대한성공회 예산성당에서 ‘주전장’ 상영회를 열었다.이 영화는 일본계 미국인 미키 데자키 감독이 3년 동안 한국·미국·일본을 넘나들며 위안부 문제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다.‘주된 전쟁터’를 뜻하는 제목처럼 일본 우익세력이 주장하는 ‘거짓’과, 진정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해 오랜 시간 싸움을 이어온 이들의 ‘진실’을 담았다.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100여명이 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