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특집/기획
"고향 신례원 가고 싶지…" 엉엉 울어버린 마음일본군 ‘위안부’ 최초 증언 배봉기, 고국 땅 못 밟고 영면
  • 김두레 기자  dure1@yesm.kr
  • 승인 2019.09.02 10:27
  • 댓글 0
지난 8월 21일 예산읍내 분수광장에서 열린 ‘예산군 수요집회’에서 최초 위안부 증언자 예산출신 배봉기 할머니가 알려졌습니다. 일본인 작가 가와다 후미코가 1977년부터 10년여 동안 배 할머니 삶을 취재하며 들은 증언을 토대로 엮은 책 <빨간기와집:일본군 위안부가 된 한국 여성 이야기, 꿈교출판사>과 서울시·서울대 정진성 연구팀이 추적한 자료 <끌려가다, 버려지다, 우리 앞에 서다, 푸른역사)를 참고해 배 할머니의 이야기를 재구성했습니다. <편집자> 

 

일본군 ‘위안부’ 최초 증언자 배봉기 할머니의 모습. ⓒ 개인소장자 김현옥, 서울시 제공

1914년 9월 태어난 봉기는 예산읍 신례원리에서 자랐다. 어려서부터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고, 19살 이후 예산을 떠나 10년여 동안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살았다.

1943년 늦가을 함경남도 함흥군 흥남읍 농가에서 일하고 있을 때였다. ‘여자소개꾼’인 일본인 남자와 조선인 남자 두 사람이 말을 걸었다. ‘돈을 벌 수 있는 곳, 더운 곳이라 과일이 지천인 곳에 가자’고 했다. 이듬해 그가 도착한 곳은 일본 오키나와 도카시키 섬의 일본군 위안소였다.

그곳에서 상상할 수 없는 고초를 겪은 봉기는 “전쟁터의 ‘일’이 부끄러워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다”며 귀국을 포기했다.

전쟁이 끝나고 이시카와 민간인억류자수용소를 나와 혼자가 된 순간, ‘속아서 일본군에 끌려와 낯선 나라에 버려졌다’는 생각에 어딜 가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봉기는 그렇게 오키나와에 방치됐다.

1972년 오키나와가 일본땅으로 복귀되자 배 할머니는 불법체류자 취급을 받고 강제퇴거 대상이 됐다. 3년의 유예기간 안에 신청하면 특별체류허가를 내주는 조치가 취해져 그것을 신청했다. 이 과정에서 위안부로 끌려왔다는 사실을 증언하게 된다. 1975년 일본언론 <교도통신>, <고치신문> 등에 사연이 기사화되면서 할머니의 사연이 알려졌다.

<빨간기와집>에는 1988년 9월, 일본의 주간지 <여성자신> 기자들이 찾아와 고향이 어디인지를 지도에 표시해보라고 했을 때, 정확히 예산의 위치를 짚는 배 할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다.

일본 기자들이 할머니에게 “고향에 한번 가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했을 때, “글쎄, 가고 싶지, 한번 가야지” 하면서도 확답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 한참을 엉엉 울고 만다.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가 오키나와에서 이뤄진 조선인 강제동원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을 만들었다. 기사를 접한 오키나와 지부의 김수섭·김현옥 부부가 할머니를 찾았다.

할머니는 당시 오키나와 동남부의 난조시 사시키의 사탕수수밭 한가운데 조그마한 오두막에서 살고 있었다. 심신이 피폐해진 상황이었다. 두통, 신경통, 신경쇠약, 대인기피증 등으로 고통받았다.

배 할머니는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김씨 부부에게 마음을 열고 이후 16년 동안 그들과 교류하며 아픔을 증언하는 삶을 살다 1991년 10월 18일 영면했다.

배 할머니가 잠든 1991년은 김학순 할머니가 기자회견을 통해 위안부 피해 사실을 공개 증언한 때다.

지난 8월 28일 1402번째 수요집회가 열렸다. 일본군 ‘위안부’ 만행을 폭로하며 그들의 참회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두레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