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같은 마당에서도 햇볕이 잘 비추는 곳부터 온다. ‘꽃가루 400℃’ 원칙이 있다. 1월 1일부터 하루 중 최고 기온을 합하여 400℃가 되면 꽃이 핀다는 이론이다. 지금은 몇 ℃ 정도 쌓였을까.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허리 굽혀 열심히 들여다본다. 

이 모습을 본 이웃은 아무것도 없는데 뭘 그리 보느냐고 묻는다. 이미 꽃들의 자리를 알고 있기에 금방 찾을 수 있다. 솔잎 같은 크로커스 잎, 돌고래 입술 같은 히아신스의 잎도 보인다. 작년 가을, 이 알뿌리들을 심을 때 약속했기에 믿고 기다리면 틀림없이 와 준다. 

2월, 그리고 입춘이 지났으니 무슨 일이라도 하고 싶어 들락거리는 정원지기에게 드디어 일거리가 생긴다. 우선 이리저리 너풀거리는 장미 가지를 정리해 줘야 한다. 보기 싫다고 미리 잘라버리면 겨울의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어려울 수도 있다. 눈이 트기 전에 원하는 형태와 길이로 가지를 정리하고 아직 떨어지지 않은 묵은 잎을 따주면 새순이 나오는 데 도움이 된다. 

홍매화의 꽃망울.
홍매화의 꽃망울.

잡초 제거도 해야 한다. 겨울을 보낸 잡초는 금세 꽃이 피고 씨를 퍼뜨려 여름에 어마어마한 잡초더미를 만든다. 정원 지기들의 허리를 휘게 만들고 가드닝을 집어치울까 하고 고민하게 만드는 주범이다. 하지만 이 작업마저 기꺼이 할 수 있어야 아름다운 정원을 즐길 자격이 생긴다. 

꽃나무와 더불어 몇 그루 있는 과수들도 가지치기를 해야 한다. 마당에서 일을 하다가 따 먹는 과일 맛은 일품이다. 그다음은 거름을 듬뿍 뿌려 줘야 한다. 장미와 알뿌리 화초들은 거름을 많이 필요로 한다. 장미는 연속 개화를 위해서, 구근식물은 꽃을 피우고 나서 알뿌리에 영양을 저장해 두어야 다음 해 필 꽃눈을 풍성하게 만든 후 겨울잠을 자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꽃씨 파종이다. 벌써? 시장에서 꽃모종을 사다 심겠다면 필요없지만 올해 꼭 심어보고자 하는 꽃이 있다면 실내에서 이른 파종을 하면 꽃을 일찍 볼 수 있다. 씨앗에서 작은 떡잎이 나오고 본잎이 나오는 경이로운 과정을 지켜보는 재미는 파종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

올해는 어떤 꽃에 매혹될까. 정원에 꽃을 선택하고 키우는 원동력은 추억과 호기심이다. 어린 시절 학교에서 돌아와 대문을 열었을 때 놀라울 만큼 진한 향기를 뿜던 백합, 백일홍, 붓꽃, 작약, 마리골드 등 추억의 꽃들을 포기할 수 없다. 

더불어 새로운 꽃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넘쳐난다. 외국 장미들의 화려함과 해마다 쏟아지는 이름도 생소한 원예 품종에 빠져서 급기야 마당이 좁다는 푸념을 하기에 이른다. 그래서 가드닝에서도 절제는 중요한 덕목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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