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수양버들. 어떻게 태어났는지 기억나진 않아. 누가 일부러 심은 건지, 바람에 날려온 씨앗이 싹을 틔웠는지. 갓난아기 시절을 다들 기억 못하잖아. 운이 좋았어. 산에서 내려오는 작은 개울 옆에 자리 잡았지. 지금은 조그만 저수지 덕택에 걱정 없이 살고 있거든. 사람들은 버들나무가 사랑과 이별의 나무라네. 옛날엔 사람들이 연인과 헤어질 때 흔한 이별장소가 나루터였거든. 거기에 흔하게 자라는 버들가지를 꺾어주면서 가슴 아픈 사랑을 주고 받았대. 김소월이라는 시인은 ‘실버들’이라는 기차게 아름다운 시를 썼지. 실버들을 천만사 늘
“땡땡땡 키로 헤르츠, 여기는 예산 방송, 깊은 밤 음악이 흐르는 시간, 자칭 음악 평론가 땡땡님을 모시고 음악의 세계로 떠나봅니다” 나는 기억한다. “별이 빛나는 밤에”, “밤을 잊은 그대에게” 라는 멘트와 함께 밤의 고요함을 타고 흐르는 시그널 뮤직을. 그 시절 소녀들은 FM 음악방송에 엽서를 보냈고, 라디오를 듣는 건지 공부를 하는 건지 모르지만 사연 속 주인공을 상상하던 시절이 있었음을. 젊은 사람들은 모르는 아재, 아줌마들의 지나간 아날로그적 기억의 감성이다. 이젠 TV를 켜면 엄청난 케이블 방송 숫자에 놀라고, 라디오도
“웃음소리가 안나니께 허전하쥬. 애들 소리가 날 땐 좋았는디”군 최초의 보육시설이었던 신명유치원, 폐원한지 벌써 4년이 흘렀습니다. 골목을 메웠던 아이들의 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습니다. 유치원과 맞닿아 있는 옆집 아저씨, 아침부터 저녁까지 조잘대던 애들 소리를 못 들으니 영 아쉬워합니다. 큰 아들도 이곳 유치원을 보냈다는 말 속엔 지나간 시절에 대한 그리움도 묻어납니다.과거에 유치원은 아무나 보낼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보육에 대한 관심이 높지 않았고, 많은 자녀들을 유치원을 보낼 만큼 형편도 넉넉지 않았지요. 그래서 유치원을
엊그제 소한(小寒)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간밤 큰 눈이 내렸고 바람은 차고 매섭습니다. 눈 쌓인 강변이 보고 싶어 무한천을 걷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겨울 철새들은 얼지 않은 강변 물에 발을 담그고 있습니다. 저절로 군락을 이룬 갈대들이 서로의 몸을 비비고 있습니다. 고요한 강변에서 들리는 것은 오리들과 바람에 우는 갈대뿐입니다. 그들은 모두 서로에게 기대어 있습니다. 더불어 사는 소중함을 알고 있습니다. 무한천의 한자는 ‘無限’입니다. ‘수량이나 정도의 한계나 제한이 없다’는 뜻입니다. 니편 내편 나누거나 가르지 않으니 이 얼
내 고향은 충청도에서도 먼 끝 제천, 그중에서도 첩첩산중에 있는 산골 동네였다.어릴 적 TV가 들어오자 주말만 되면 자릴 깔고 보았던 코미디 프로. 그중에 새마을 모자와 장화를 신고 등장하는 개그맨 최양락은 정말 웃겼다. 그가 구사하는 충청도 사투리와 너무 잘 어울렸기 때문.같은 충청도인데도 이북 말씨 비슷한 내 사투리와 이리도 다를 수 있단 말인가. 직접적인 표현이 아니면서도 여운을 남기는 그 사투리의 미묘한 뉘앙스는 참 매력적이었다.충청도 말씨는 다양한 사투리 중에서도 존재감이 특별하다. “아부지 돌 굴러가유”라는 느린 말로 상
성당 앞 허름한 집에는 사람이 더는 살지 않는다. 몇 해 전만 해도 드나드는 아저씨가 있었는데 아마 돈을 벌러 타지로 떠난 듯 싶다. 낡은 함석지붕은 이제 고양이들 차지가 되었다. 쌓여있는 고지서와 낙엽들이 뒹구는 마당은 골목 풍경을 더 스산하게 한다.빈집이 하나 둘 늘어가고 있다. 지난 10월 기사를 보니 예산군이 인구소멸 위험지역으로 분류되었다고 한다. 골목에 아이들의 소리가 끊어진지 오래되었으니 예상했던 일이다. 전국 지방 도시의 미래는 그리 밝지 않다. 2020년 4월 기준으로 전국의 228개 시군구 중 소멸 위
가을이다. 사과는 붉게 물들어 가고 들판은 온통 황금색이다. 가을은 한 해의 모든 빛을 끌어 모아 찬란함으로 내어 놓는다. 저 들녘 풍요로움 속에는 기대와 걱정, 한숨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한 해의 부지런함이 저 들판의 나락 속에 숨겨져 있다. 그래서 홍순관이라는 가수는 ‘쌀 한 톨의 무게’라는 노래에서 쌀 한 톨 안에 우주의 무게가 담겨있다고 했다.이 들판이 이리 아름다운 건 언제부터였을까? 아마도 까마득한 옛날부터였으리라. 삽교천이 충적된 이 넓은 평야지대는 농사짓기에 적합했고 아산만과 바닷길로 통하여 수운교통이 편리하고 소금,
골칫덩이로 전락한 충남방적공업유산을 어떻게 활용할까?벤쿠버는 복합문화공간으로런던은 ‘테이트 모던’ 미술관으로우리도 상상력을 쏘아 올려보자 흰색 승용차가 낡은 적갈색 벽돌 건물들을 지나고 있다. 음산한 음악이 회색 빛 슬레이트 지붕들 위로 내려앉는다. 이윽고 차가 멈췄다. 차문 밖으로 보이는 황금색 하이힐. 붉은 코트를 입은 중년 여성이 내려선다. 건물을 힐끔 쳐다본 그녀는 이내 그곳을 향해 걷는다. 건물 입구에 도착하려는 찰나, “쾅!”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여인은 순식간에 튕겨져 차에 부딪친다. 깨진 창문과 입구로 불길과 연기가
오늘은 그날이다/ 종남산(終南山) 꼭대기에 일장기가 내려지면/ 삼천리 방방곡곡에 태극기가 휘날릴 줄 알았는데/ 군정청 하늘에 성조기가 오르던 날이다/ 그날을 아느냐 친구야/ 어찌 우리 모르랴 그날의 배신을.- 김남주, ‘오늘은 그날이다’ 1945년 9월 9일, 해방의 기쁨을 맞이했던 조선의 사람들은 조선총독부 게양대에 일장기가 내려가고 태극기 대신 성조기가 올라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이 역사적 장면을 시인은 ‘배신’이라 했다. 그 날의 광경은 앞으로 펼쳐질 불행한 조선의 역사를 미리 보여준 암시와도 같았다.왜 배신이라 했을까? 해
나는 대전서 낳고, 자라서 여러 번 밤차 타고 도망쳐봤으나/ 종내 대전서 밥 벌고 혼인하고 아이 키우며 가끔 새벽차에 막 돌아 온 낯선 얼굴로 가로에 서면/ 큰길 뒤 잊혀진 골목 보이고 거기 묵은 이발소나 사진관, 목욕탕이 그대로 있으면 마음 환하고 애처롭고 쓸쓸한 어느새 쉰/ 내가 등짐 져 지은 무수한 집들 헐리고 다시 새집 들어서도록 나는 여기서 꼼짝없이 낡아가며 새로워지는 중이다.- 이면우 이따금 신명유치원을 찾는 방문객들이 있다. 어릴 적 다녔던 유치원이라며. 대개 중년을 훌쩍 넘긴 사람들이다. ‘수구지정’(首丘之情)
악마가 보낸 잡초, 나는 그렇게 불렀다. 예산살이와 함께 시작된 풀 뽑기 작업, 이 악마의 풀과 씨름하며 두 해를 보내고 있다.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봄에 땅에서 올라온 포자들이 뱀 머리를 닮아 살짝 수상쩍긴 했다. 그러더니 웬걸 온 사방으로 퍼져나간다.번식력도 대단하지만 어지간히 살기 힘든 유치원 모래놀이터에도 땅 속 깊이 뿌리를 박고 수북이 피어난다. 민들레도 씀바귀도 울고 갈 극강 생존력이다.전쟁에서 패색이 짙어 질 무렵, 비장의 카드를 꺼내들었다.“이 놈들아 맛 좀 보거라”현대문명이 선물해준 제초제를 손에 들고 회
예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네는 어디일까? 생각이 다를 수 있겠지만 대체적으로 대흥 슬로시티라면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을까.그도 그럴 것이 뒤편엔 아름다운 봉수산과 백제부흥운동의 본거지였던 임존성이 있고, 앞에는 너른 들판과 예당저수지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다. 이곳에 오랫동안 살아온 마을의 역사가 녹아있고, 느린 꼬부랑길을 걸으며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좋은 산책길이 있기 때문이다. 가족 단위 관광으로 이만한 곳이 또 있을까? 대흥이 지닌 잠재적 가치는 앞으로 더 커질 것이라 생각한다.누구의 발상이었을까? 슬로시티에 고속도로를 놓자는 그
골목을 걷는다. 오래된 집들 헐리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은 소방도로로 확장되었다. 그래도 사람 둘 어깨 스칠 듯 지나갈 수 있는 골목들이 종종 남아있다. 어쩌다 지나는 사람이 귀할 정도로 휑한 골목길, 낡은 카메라 눈에 대면 오래전 시간들이 파인더 안에서 피어오른다.기억 속 골목은 놀이와 대화로 가득 차 있다. 공차기, 땅따먹기, 구슬치기, 말뚝박기. 짓궂은 사내 녀석들에게 탱탱한 고무줄놀이는 얼마나 큰 유혹이었던가. 볕 잘 드는 담벼락 아래는 만민공동회, 둘러 모여 누군가 다녀온 서울 구경에 귀를 쫑긋였다. 그렇게 골목은 학교 밖 운
“예당저수지가 아름답고요. 더 가면 형님먼저 아우먼저 마을도 있어요. 읍내서 밥 먹고 거기로 가볼까요?”작년 나의 단골 멘트.성당이 다시 문을 열었다니 전국의 성공회 교회들이 격려 차 많이도 방문해주었다. 문제는 관광도 겸해서 오셨기에 관광 홍보대사 노릇을 해야 할 판, 그렇게 출렁다리 전문가도 되었고, 임존성 흑치상지와는 막역한 사이인양 야매 해설을 겸했다. 등잔 밑이 어둡다던가! 성당 앞 향천사 가는 길을 교우들과 함께 산책해보니 이처럼 아름다운 산책길이 또 있을까. 초입의 느티나무를 시작으로 졸졸 흐르는 시냇물을 따라 올라가니
벌써 입춘이던가. 예산의 겨울 하늘은 하얀 눈물 한 움큼도 인색한 채 끝나버렸다. 누군가의 콧김마저 코로나일지 모른다며 예민해진 이때, 마냥 방구석에서 유튜브 좀비 시리즈들만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게 장롱을 뒤져 꺼낸 20년도 더 된 카메라, 몸은 나이를 먹었건만 기억은 그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그러다 퍼뜩 든 생각, 신부의 상상은 현실이 될까?상상의 출발은 늘 가까이 있는 법, 성당 가까운 옛 군청 거리에 디자인 가게가 있다. 가게 명 ‘디자인 밥’. 간판 없이 창문에 소박하게 붙인 시트지에 그렇게 쓰여 있다. 디자인에서
“하늘도 요망하지, 1월에 뭔 장맛비여”나이 지긋한 동네 어르신이 한 소리 하신다.“그래도 비라도 내리는 게 농사짓기 좋데요”위로하듯 한마디 하고 보니 벌써 새해, 가장 추워야 할 시기에 3일 내내 비가 내린다. 눈 오는 성탄절은 전설 따라 삼천리고, 엘리뇨에 쫓겨 도망친 산타는 이제 반팔 입고 적도에서 와야 할 판.그래도 운전으로 밥을 먹는 이들과 난방비 한 푼이 아쉬운 이들에게 따뜻한 겨울은 얼마나 축복이던가.성당에서 옛 군청 내려가는 아담한 쪽길, 빈 집이 하나 있다. 혼자 살던 아저씨는 대문도 열어놓고 떠나버렸다. 누구든 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