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시작한 ‘지켜줘서 고마워’와 2014년의 ‘그때 그 간판’의 세 번째 버전 ‘오래된 그 가게’가 찾아갑니다. 30년 이상 된 가게를 찾아 세월을 들어 봅니다. 한 세대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온 가게에서는 물건만 거래되는 것을 아닙니다. 오래된 가게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숨결이 배어 있고, 이웃 간의 넉넉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된 그 가게’가 쌓이면 예산의 이야기가 되고, 예산 역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 믿습니다. 예산의 자랑 오래된 가게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편집자>

 

고덕철물건재 복광순 대표(오른쪽)와 그의 아들 복상근씨. 부친 복진홍씨가 70년 전에 개업한 고덕철물점은 2대 복광순씨를 거쳐 현재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운영 중인 고덕의 오래된 가게다.
고덕철물건재 복광순 대표(오른쪽)와 그의 아들 복상근씨. 부친 복진홍씨가 70년 전에 개업한 고덕철물점은 2대 복광순씨를 거쳐 현재 손자까지 3대에 걸쳐 운영 중인 고덕의 오래된 가게다.

없는 것 빼고 다 있을 것 같은, 그야말로 만물상이 따로 없다.

고덕면 전통시장 내 위치한 ‘고덕철물건재(대표 복광순)’는 고덕면 주민들에게 ‘고덕철물점으로 통하는 가게다. 각종 농기구, 농자재, 건축자재, 설비자재 등을 판매하며, 57년 동안 같은 자리에서 한결같은 고객 응대로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복광순 대표의 부친 복진홍(50년전 작고)씨가 한내장에서 개업하던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70년이 훨씬 넘는다. 1966년 한내장에서 현재의 자리로 이전했다. 

넓은 매장에 반듯한 진열대를 갖추고 용도별로 일목요연하게 상품들을 진열해 놓은 중소규모의 일반 철물점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직원의 도움 없이 고객들이 스스로 알아서 자신이 필요한 물건을 찾아 구매할 수 있다. 

 

괭이, 쇠스랑 등의 농기구는 고덕철물점이 개업할 때부터 취급했던 주력 상품이다. ⓒ 무한정보신문
괭이, 쇠스랑 등의 농기구는 고덕철물점이 개업할 때부터 취급했던 주력 상품이다. ⓒ 무한정보신문

반면, 고덕철물점에 대한 첫인상은 다소 산만하다. 단골쯤 돼야 자신이 필요한 물건이 어디쯤 있을지 알 수 있을 것 같고, 입장에선 주인이 아니면 물건의 위치를 가늠하기 힘들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고덕철물점은 필요한 호미 한 개, 삽 한 자루 들고 말만 잘하면, 왠지 마음씨 좋게 생긴 주인 아저씨가 단 몇 푼이라도 흔쾌히 깍아줄 것만 같은 시골 장터 가게 분위기 물씬 풍기는 가게다(실제로 깍아줄지는 장담하지 못함. 그냥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

바로 이런 모습이 고덕철물점의 장점이 아닐까. 겉으로 보면 여느 철물점과 크게 다를 바 없지만, 가게의 내력을 잘 모르는 행인들에겐 어쩌다 시골 동네를 다니다 만날 수 있는 그저 낯익은 철물점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이곳은 ‘다른 무엇’을 품고 있다. 바로 이 ‘다른 무엇’이 고덕철물점을 특별하게 만든다.

 

우선 오래된 가게의 역사다. 50년전에 돌아가신 복진홍 아버지부터 시작해 복광순(76) 대표를 거쳐, 아들 복상근(51)씨 까지 3대가 70년 넘는 세월동안 철물점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아버지와 아들, 2대가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사라져 가는 가마솥, 이곳에 가야 구매가능 

고덕 오추리가 고향인 복 대표는 예덕초등학교와 봉덕중학교를 졸업하고 일찌감치 아버지가 개업한 철물점 운영에 뛰어들었다. 처음엔 아버지의 일을 거들다가 군복무를 마친 뒤 21세부터 본격적으로 철물점을 책임졌다.

그는 아버지의 경영철학 △고객이 찾는 물건이 떨어지지 않도록 사전에 준비를 철저히 할 것 △손님은 왕이다. 항상 친철한 자세로 응대할 것 △지나친 이윤을 추구하지 말 것. 이 세 가지를 철두철미하게 지켰다고 강조한다. 

그가 아들에게 철물점을 물려줄 때 전한 말도 이 원칙들이었다. 지금도 가끔 “할아버님을 욕먹일 생각이나 행동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할 정도다.

아버지와 달리 장남 복상근씨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다른 분야의 길을 걸었을 법도 한데, 아버지의 간곡한 권유에 철물점을 물려받았다.

복광순씨에 따르면 큰아들이 대학을 졸업한 뒤 아내와 함께 셋이 철물점 운영을 두고 상의를 했다. 

복상근씨는 “동생들도 보살펴야 하니 장남인 제게 이어서 한 번 해보라는 아버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고 전한다. 그의 나이 25~26세 무렵이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 고객이 들어 온다. 단골이라는 이 고객은 엄지척을 한 채 “다른 곳에 없는 물건이 고덕철물점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고덕철물점이 인기 있는 이유를 설명한다. 복 대표는 “꼭 그런 건 아니다”라며 손사래를 치지만, 그 모습이 오히려 신뢰감을 더한다.

 

육철솥으로 불리는 가마솥은 시대가 바뀌면서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물건이 됐지만, 고덕철물점에 가면 구매할 수 있다. ⓒ 무한정보신문
육철솥으로 불리는 가마솥은 시대가 바뀌면서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물건이 됐지만, 고덕철물점에 가면 구매할 수 있다. ⓒ 무한정보신문

육철솥으로 불리던 가마솥만큼은 실제로 고덕철물점만 취급하는 물건이다.

가게를 방문한 고객은 “고덕면뿐만 아니라 예산군을 통틀어 가마솥을 살 수 있는 곳은 고덕철물점이 유일하다”고 거든다.

가마솥 역시 고덕철물점이 품고 있는 ‘다른 무엇’ 가운데 하나다. 

복 대표는 “이제 여기 아니면 예산 어디서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 됐다. 몰라서 안 오는 사람이 있겠지만 가마솥을 구하려면 이곳으로 와야 한다”며 “한때 고덕에서 ‘솥장사 복서방네’로 통할 정도로 가마솥 가게로도 유명했다”고 말한다.

지금은 대부분의 농촌 가정들이 싱크대와 가스·전기레인지 등을 갖춘 서구식 주방으로 바뀌어 가마솥을 찾는 사람들이 옛날보다 줄었기 때문에 덩달아 가마솥 제작 공장도 하나 둘씩 사라졌다. 충청지역엔 청주와 천안 공장 두 곳이 남아 있다고 한다.

옛 명성만큼은 아니지만 고덕철물점은 가마솥 전문 판매점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예전 판매량과 비교하면 턱없이 적은 양이긴 해도 지금도 가마솥을 찾는 사람들이 있어 가게 한쪽에 가마솥을 크기별(2~8통)로 솥뚜껑과 함께 준비해 놓고 있다.

2통짜리가 7만원이고, 8통이 35만원이다. 솥뚜껑이 포함된 가격이며, 솥뚜껑을 원하지 않을 경우 솥뚜껑을 뺀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다. 삽겹살 굽는 용도로 솥뚜껑만 별도로 찾는 손님들이 있다. 보통 3만5000원 짜리를 주로 구매한다고 한다. 

여든을 바라보는 복 대표는 “그동안 정말 열심히 살았다. 배운 게 철물계통이고, 청춘을 여기에 다 바쳤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이도 이렇게 먹었다. 마음 편히 어디 놀러도 못갔다. 손님이 찾으면 물건을 내 줘야 하니까”라며 잠시 회한에 빠져들다가도 가족 생각에 미소를 짓는다. 그의 든든한 버팀목이다. 

하지만 동갑내기 아내 원부희씨가 자꾸 눈에 밟힌다. 사정을 들어보니 코로나19가 한창 창궐할 무렵 전염됐던 아내가 후유증으로 예전 건강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이약 저약 좋다는 건 다 먹었는데, 회복이 느리다”며 “안식구와 건강하게 잘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망을 전한다. 

 

철물점이지만 모터수리도 가능하다. ⓒ 무한정보신문
철물점이지만 모터수리도 가능하다. ⓒ 무한정보신문

옛날 같지 않은 고덕시장 상황에 대해 물으니 “많이 쇠퇴했다. 전통시장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줄었고, 퇴색하는 모습을 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어 마음이 아프다”는 답이 돌아온다. 

그러면서 “우리마저 여기서 장사를 그만두면 시장을 찾는 사람들이 더 줄어들까 걱정이다”라며 “우리가 이 자리를 지키고 있어 그나마 고덕시장이 명색을 유지한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보람을 갖고 지금까지 고덕시장을 지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와 그의 가족이 대를 이어 고덕철물점을 운영하는 또 다른 이유다. 

“예산군이 큰 상설시장을 조성해 여러 사람들이 편하게 장사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줬으면 좋겠다”는 영욕의 고덕시장 역사를 겪어온 그의 바람을 흘겨 들어선 안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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