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의대 정원 증원 정책 추진과 의사들의 집단행동을 보며 새삼 궁금해진다.

히포크라테스 선서가 왜 있고, 눈을 가리고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은 왜 존재하는지 말이다. ‘나의 생애를 인류 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하노라’로 맺는 선서는 그냥 허울 좋은 말에 지나지 않았단 말인가? ‘나는’으로 시작되는 선서 내용에는 존경, 양심, 품위, 의술, 생명, 비밀, 명예, 형제, 오직 등 어느 하나 무겁지 않은 단어가 없다. 마지막에는 ‘나는 자유의사로서, 나의 명예를 걸고 위의 서약을 하노라’이다. 과연 이런 내용에 대해 선서를 한 사람들이 맞나 싶을 정도다.

정의의 여신 디케는 어떠한가?

외국에서는 두 눈을 가린 채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칼을 들고 서있다.

왜 눈을 가린채 저울과 칼을 들고 있는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으로는 법은 만인에 평등하다. 그럼 우리가 알고 있는 법은 무엇이고 만인은 누구인가? 법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똑같은 잣대로 가늠해야 함에도,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의 법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다. 오죽했으면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말이 나왔을까? 법을 배우고 잘 아는 사람들은 그 법을 이용 또는 악용해 사회적 질서를 흔들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대법원에 있는 정의의 여신은 두 눈을 뜬채 한 손에는 저울을 다른 한 손에는 법전을 들고 앉아 있다. 왜 눈을 가리지 않고 칼 대신 법전을 들고, 서지 않고 앉아 있을까? 지위고하를 보려고 그러는 것일까?

내가 세상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는 것일까?

서민들에게는 피도 눈물도 없이 엄격한 법이 정치인이나 고위직들에게는 왜 그렇게 너그럽고 아량이 넓은지 모르겠다. 정치인이나 고위공직자의 자격 기준에 전과 기록은 경력으로 인정되는 것일까? 주민등록법이나 농지법 위반은 기본이고 세금체납 등 범죄 전과가 한 가지도 없는 고위 공직자를 찾아보기 어려울 지경이다.

스스로 법을 지키지 못하면서 상대방에게는 범죄자라 떠들어대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 죄를 뉘우치기는 커녕 법을 탓하고 있는 세상이 되어 버렸다.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하여 입으로는 재판에서 다투겠다 하고 재판에서는 변명조차 못하면서 잡범이 정치범인 것처럼 행세를 하는 세상이다.

그럼 의술은 무엇이고 법은 무엇이란 말인가?

의술은 생명과 직결되고 법은 죄에 대한 처벌을 논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 두가지 모두 사람을 생사를 의사와 판사라는 직업의 사람이 결정하게 된다. 그래서 의사나 판사가 결정하는 일에는 항상 ‘양심’이라는 단어가 따라다닌다. 다른 누구의 지시나 압력이 아닌 스스로의 결정에 있어 ‘양심과 품위’ 그리고 ‘양심’에 따르라는 내용이다.

작금의 현실을 볼 때 많이 안타깝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고 서로에게 책임을 떠넘기기 보다 무엇이 우선인지 살펴봐야 할 것이다. 법의 여신은 눈을 가려서 지위고하를 보지 않을 테니 오롯이 법의 원칙만 생각하고,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한 의사들은 사람의 생명만 생각하고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 이유를 불문하고 사람부터 살려 놓고 봐야 되는 것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이다. 

특정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만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한 나라를 혼란스럽게 만든다면 과연 그 진정성이 인정될까?

이 상황 속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은 결국 돈 없고 빽 없는 국민뿐이다. 아무리 상황이 악화되어도 정치인을 포함한 돈 있고 권력이 있는 사람들은 온갖 인맥을 동원하여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게 대한민국의 현실 아닌가? 

예전 어느 국회의원이 연설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법은 만인에게 평등합니까? 만 명만 평등할 뿐입니다.” 제발, 돈도 없고 빽도 없는 만 명에 포함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결단은 없을까?

나는 그 만명이 누구인지 모른다. 분명한 것은 나는 그 만명에 포함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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