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던 농촌 주민들이 어느날 작가가 되고 사진기자가 돼 자신들 삶의 주 무대인 삽교읍 37개 마을을 기록한 책 <삽교 이야기>를 출간했다.

책은 △우리들의 이야기 △문화유산이야기 △학교와 기관이야기 △사진으로 보는 이야기 4개 챕터로 구성돼 있다. 지난해 7월부터 5개월 여 동안 삽교의 생생한 장면들을 글, 사진, 삽화로 담은 243쪽 분량의 책이다.

취재, 인터뷰, 기사 작성, 영상촬영·편집 등 어느 하나 익숙한 분야가 없었지만, 농촌 주민들로 구성된 ‘시담’ 팀원들은 교육·워크샵 등을 통해 역량을 키우고 발품을 판 노력이 (삽교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무한정보신문
취재, 인터뷰, 기사 작성, 영상촬영·편집 등 어느 하나 익숙한 분야가 없었지만, 농촌 주민들로 구성된 ‘시담’ 팀원들은 교육·워크샵 등을 통해 역량을 키우고 발품을 판 노력이 (삽교 이야기)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 무한정보신문

이같은 결실은 지난해 삽교 주민 12명이 의기투합해 맺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이들을 움직이게 한 동기가 됐다. 이들은 이 책의 저자 유흥준 교수처럼 “문화유산 답사 동아리를 만들어 삽교 지역 문화유산 답사기 같은 활동을 하면 좋겠다”는 발상에서 지난해 6월 주민조직 ‘시담(시선을 담다)’을 결성했다.

화훼농장인 ‘힐데가르트 정원(삽교 상성1리)’을 운영하고 있는 박연우(56)씨가 ‘시담’ 대표를 맡았다. 귀농 전 30~40세 때 아트앤컬쳐와 더무브 등의 월간지에서 사진기자로 활약했던 그의 경험이 이번에 책자를 만드는데 소중한 바탕이 됐다.

그는 정원 명칭이기도 한 힐데가르트 성녀를 소개하면서 “중세 유럽의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였던 성녀는 문학, 과학, 미술, 음악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허브를 연구하는 등 농사가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해 일찍이 간파했던 분”이라며 “책을 다채롭게 기획하고 구성할 때 다양한 분야에서 유의미한 유산을 남긴 성인의 삶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발간 작업은 2023년 6월 30일 삽교곱창특화거리 오픈 기념식 취재를 시작으로 11월 29일까지 5개월 동안 진행됐다. 본격적인 활동은 7월에 예산군농촌신활력플러스사업 추진단의 자율공모사업 3차 팀에 선정되고 임의단체 고유번호증을 받고서부터다. 

먼저 예산해봄센터에 모여 글쓰기, 동영상 편집교육 등을 받으며 역량을 키웠다. 그러면서 발품을 팔아 마을 곳곳을 다니며 사람들의 이야기를 취재해 글로 풀어내고, 읍내 다양한 문화유산을 영상으로 기록했다.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담던 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진에 담았다. 왼쪽 아래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김혁, 박연우, 이미숙, 방명선, 정일희, 박태정, 권경숙, 박상민. ⓒ 시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담던 팀원들이 한 자리에 모여 사진에 담았다. 왼쪽 아래부터 반시계 방향으로 김혁, 박연우, 이미숙, 방명선, 정일희, 박태정, 권경숙, 박상민. ⓒ 시담

12명으로 시작해 현재 9명이 남아 활동하고 있는 ‘시담’의 팀원들은 박연우 대표와 방명선 총무를 중심으로 △취재팀-박연우·방명선·김혁·김보영 △글-박연우·이미숙·유진영 △삽화-박성은 등으로 각자 재능을 살려 주어진 역할을 수행했다. 

젊었을 때 로버트 카파 같은 종군기자가 되고 싶었다는 박 대표는 “평생 사진작가로 활동했던 본업을 접고 내려놨던 열정이 내면에서 꿈틀대는 것을 느꼈다”며 “젊었을 때 꿈 꿨던 일인데, 책을 만들면서 ‘이게 내가 원했던 일이었구나’라는 것을 문득 깨닫게 됐다”고 스스로가 보기에 장한 변화된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책 발간 작업은 ‘시담’ 팀원들이 모여 ‘삽교 이야기’라는 주제를 정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사람 이야기, 문화유산 이야기, 기관 이야기 등으로 구분해 싣겠다는 대략의 방향도 정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려니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할지 막연했다고 한다. 

박 대표는 “진짜 살아있는 이야기를 쓰려면 무엇보다 사람들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가장 먼저 읍장을 만났던 일이 우리들의 첫 행보였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박문수 읍장을 찾아가 7월 이장단 회의에 초대해 달라고 부탁했다. 회의 때 모인 이장들에게 취지를 설명하고 협조를 요청했다.

취재는 가장 먼저 스케치 취재를 한 뒤, 구체적인 인터뷰 대상자들을 추려 섭외하는 과정이 반복적으로 진행됐다. 

<삽교 이야기> 제1장 제1편에 배치한 ‘아들 추만을 통해 추식을 기억하다’는 어쩌면 책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는 첫 번째 이야기를 무엇으로 정할지 꽤 고민했겠다 싶은 흔적이 엿보인다.

“총각 총각 삽다리 총각, 꽃산의 진달래 손짓을 하는데 장가는 안 가고 날일만 할텐가~”로 시작하는 노래 ‘삽다리 총각’의 작사·작곡자 추식 선생을 추적하는 과정이 제법 흥미진진하다.

박 대표는 “귀농 준비를 할 당시 솔직히 <삽다리 총각> 지은이도 몰랐고, 삽교가 어딘지도 몰랐다. 몇 번 가봤던 당진 삽교호가 삽교인 줄 잘못 알고 있을 정도였다. 

다만 라디오가 귀했던 1960년대 전국민을 스피커 앞에 모여 앉게 만든 연속극 <삽다리 총각>의 주제곡에 대해 어렸을 때의 어렴풋한 기억은 남아 있었다”며 “그 총각도 세월따라 노인이 됐을 텐데 살아있다면 사진 한 컷 남기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고 말한다.

상성1리 김명세 어르신이 “추식 선생의 자제분 중 한 분이 삽교를 떠나지 않고 덕산 가는 벚꽃길에서 카페를 하고 있다”는 제보 한자락 달랑 들고, 박 대표는 팀원들과 함께 삽교에서 덕산가는 방향의 카페를 “샅샅이 뒤졌다”고 한다. 그렇게 해서 만난 ‘더마니 카페’ 추만 사장이 바로 추식 선생의 넷째 아들이다.

박 대표에게 관심 영역 밖에 있던 ‘삽다리 총각’을 재발견한 것은 책을 만들지 않았으면 얻지 못했을 의외의 소득이다. 

그는 “가사엔 삽교의 봄·여름·가을·겨울이 절묘한 상징과 은유로 표현돼 있음을 책 발간 작업을 하면서 알게 됐다”며 “그 촌스러웠던 <삽다리 총각> 이야기에서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매력을 느꼈고, 어느 순간 가사 내용을 음미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팀원들도 비슷한 체험을 했다고 하니 책 첫 장을 <삽다리 총각> 이야기로 장식해야 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러면서 박 대표가 얻은 깨달음. 아니 재차 확인할 수 있었던 진리는 “아는 만큼 이해하고, 이해한 만큼 사랑하게 된다”였다.

‘시담’ 팀원들은 <삽다리 총각>이 삽교를 비로소 이해할 수 있게 만든 관문이었고, 그 문을 들어가 만난 책 속 수많은 사람들과 한걸음 더 다가서 바라 본 문화유산들을 통해 삽교를 더 사랑하게 됐노라고 고백한다. 

이제 ‘시담’ 팀원들의 시선은 어느새 새로운 곳을 향하고 있다. 역량과 경험이 책 두께만큼 쌓였고, 자신감도 얻은 이들은 “다른 읍면의 요청이 있다면, 그 지역도 담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누가 보기에도 지나치지 않은 욕심이고 충분한 자격이 있어 보인다. 

2월 29일 삽교읍행정복지센터에서 마을 이장 등 관계자들을 초청해 조촐한 출판기념회를 가진 ‘시담’은, 이를 전환점 삼아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충남문화관광재단이 공모한 예술교육지원사업에 신청했는데, 1차는 서류 합격했다. 2차 면접을 거쳐 3월 7일 결과가 나오면 사업을 곧바로 진행할 계획이다.

‘시담’은 또 어떤 시선으로 무엇을 담게 될까. ‘삽교’를 담는 동안 한층 더 세련되고 깊어져 있을 이들의 시선이 향하는 곳, 그곳이 어디일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