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막내가 나를 또 테스트 한다. 친구 엄마들보다 나이 많은 엄마가 옛날사람 취급받을까봐 걱정 되어서라고 내 맘대로 생각하며 기쁜 마음으로 테스트에 응한다. 

“쉬운 문제부터 낼게. 별다줄!”

“별다줄? 아! 별도 달도 다 따줄게!”

난 정말이지 너를 위해서라면 별도 달도 다 따줄 수 있다는 사랑스러운 표정을 담아 환하게 웃어 주었다. 그런데 아들이 “땡!” 이라고 귀청이 떨어져라 소리를 질렀다. 그럴 줄 알았다며 고개를 가로 저었다. 마치 옛날 사람 맞다고 판결을 내리는 듯 했다. 

별걸 다 줄인다라는 뜻이란다. 참 나! 뭐 이런 이상한 문제가 있담? 툴툴거리는 내게 다음 문제를 내겠다며 아들이 눈알을 또르르 굴린다. 

생파는 생일파티, 생선은 생일선물, 꾸안꾸는 꾸민듯 안 꾸민듯, 이생망는 이번생은 망했어. 머릿속에 저장된 줄임말을 복습하며 나도 아는 척 좀 해 본다. 

하지만 내가 알고 있던 이 말들은 이미 오백 만 년 전에 생겨났다 사라진 신조어, 아니 구조어란다. 헛웃음이 났다. 

요상한 단어 만들어서 엄마를 놀린 죄도 크지만 세종대왕님께 허락도 받지 않고 우리말을 변형시킨 죄는 더 크다며 겁을 주었다. 아들이 입을 꾹 다물더니 억울한 듯 삐죽인다. 

“유튜브에서 그런 거야. 내가 만든 거 아니거든!”

우리말을 변형시킨 죄, 내가 너무 또박또박 말했나보다. 어쨌든 변명이라도 해야 벌을 안 받을 것 같았나보다. 아이는 아이다. 

바르고 고운 말, 아름다운 우리 말! 강의를 했다가는 옛날 사람 취급을 받을 게 뻔하다. 요즘 아이들의 정서 또한 환경에서 만들어지는 거니까 어느 정도는 받아들여야 한다. 예능프로그램의 자막에 노출되는 게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짧은 영상을 쉴 새 없이, 여과 없이 손쉽게 시청할 수 있는 시대 아닌가.

아이들을 나무랄 수도 없다. 줄임말은 재미있다. 어른도 아이들도 재미있다. 술잔을 기울이며 옛날 사람들은 신이 나서 외친다.

“청바지!”

청춘은 바로 지금!을 생각하며 청바지를 외칠 때 얼마나 신나고 재미있는지 웃음이 절로난다. 청바지를 입고 젊은 시절로 시간여행을 간 듯 행복해지기도 한다. 아이들도 마찬가지겠지. 재미있으니까 자꾸만 신조어를 만들어낸다. 

기상천외한 생각지 못한 단어를 만들어내고 해석(?)을 하며 깔깔대고 웃는다. 하지만 적응하기도 전에 세상이 빠르게 변한다. 빠르게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려니 웃을 시간도 없다. 어쩌면 웃을 일을 만들려고 신조어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다. 

흠좀무. 2024년 신조어라고 검색하니 나온 단어다. 

“흠… 좀 무서운데?”

정말 흠좀무다. 얼마나 무서운 일이 많으면 이런 신조어가 생겨났을까?

요즘은 사귀는 사이에 앞서 삼귀는 사이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사귀기 전 단계로 썸 타는 사이라고 친절하게 풀이까지 나와 있다.

‘삼귀다니 흠좀무다’

먼 미래 어느 교실에서 2024년 생겨났던 신조어는 무슨 뜻이었을까요? 시험문제에 아이들이 답을 적고 있는 모습을 상상해 본다. 

신조어의 탄생이 일상 속 소소한 웃음을 갈구하는 단순한 놀이문화이기를, 잠시 공유되는 MZ세대의 한 때 유행어이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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