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부터 시작한 ‘지켜줘서 고마워’와 2014년의 ‘그때 그 간판’의 세 번째 버전 ‘오래된 그 가게’가 찾아갑니다. 30년 이상 된 가게를 찾아 세월을 들어 봅니다. 한 세대를 넘는 긴 시간 동안 존재해 온 가게에서는 물건만 거래되는 것을 아닙니다. 오래된 가게에는 사람들의 따뜻한 숨결이 배어 있고, 이웃 간의 넉넉한 정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오래된 그 가게’가 쌓이면 예산의 이야기가 되고, 예산 역사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라 믿습니다. 예산의 자랑 오래된 가게는 모두가 주인공입니다.<편집자>

 

충남방적주식회사 예산공장(아래 충방) 부지와 폐건물. 창소리 주민들을 비롯한 신례원 지역사회는 이곳을 개발저해 요인으로 꼽는다.

그동안 선거철 마다 말만 무성한 채 개발에 엄두를 못내다가 지난해 군이 충방 관련 정부공모사업에 선정되면서 전환기를 맞고 있다.

군이 공장건물 석면제거 작업 등 본격적인 개발에 앞서 폐공장 정비에 나선 가운데, 현재 구체적인 개발계획이 발표된 것은 아니지만, 지역사회와 주민들은 어떤 식으로든 개발된다면 이를 계기로 새로운 활로를 찾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충방 정문 맞은 편 길가에서 슈퍼마켓과 세탁소를 운영하며 51년째 동네 변천사를 지켜 본 윤일현(76) 에벤에셀세탁소 대표 역시 충방 부지 개발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지역 주민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윤 대표는 충방 공장이 들어서기 이전에 그의 부친이 지은 2층짜리 건물 1층에 문을 연 ‘대명슈퍼’를 1973년에 물려받아 30년 가까이 영업하다가 지난 2002년 세탁업으로 전환해 아내 남상덕(72)씨와 함께 23년째 ‘에벤에셀’이라는 상호로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다.

아산 도고면 출신인 윤 대표가 처음 예산과 맺은 인연은 예산중학교 재학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예산에서 하숙하며 예산중을 졸업한 그는 가족이 신례원으로 이사와 정착하면서 예산농고에 진학했다. 군대 제대 뒤 현재 위치인 창소리로 거주지를 옮긴 뒤 지금까지 충방의 변천사를 눈 앞에서 목격한 산증인이다.

“충방이 문을 닫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서 예덕실업고등학교가 없어졌고, 기숙사가 폐쇄됐다. 충방 직원 숙소였던 자리엔 아파트가 건설되던 중에 사업자가 부도를 내면서 짓다만 콘크리트 건물이 침체된 동네 분위기에 찬물을 얹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어찌됐든 충방 부지가 개발된다니 다행이다. 좋은 업체가 들어왔으면 좋겠다. 그곳이 살아나야 창소리가 살고 신례원에 활력이 생긴다”고 강조했다.

윤 대표의 부친은 충방 예산공장이 조성되기 전에 비포장 도로에 허허벌판이었던 곳에 건물을 짓고 대명슈퍼 문을 열었다. 사람들의 오고가는 길목이라는 점도 건물 위치도 고려했지만, 충방이 들어선다는 소식에 주목해 건물 위치를 정했다. 

당시 비포장 황토길이었던 이 지역에 윤 대표의 건물이 가장 먼저 들어섰다. 도로가 포장됐고 충방이 들어섰다. 인근에 하나 둘씩 상가가 생기자 점차 활성화 되기 시작했고, 대명슈퍼도 호황을 누리기 시작한 것도 그 무렵부터다.

그는 “가게의 주 고객은 충방 직원들이었다. 남자 직원들은 퇴근하면 가게를 들러 맥주를 찾았고, 여공들은 간식으로 과자 종류를 샀다. 조장이 몇십명분을 한꺼번에 사가는 경우도 있었다. 외상 고객도 많았는데, 외상값을 떼인 경우도 허다했고, 값을 깍아달라는 손님도 많았던 시절이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기숙사가 밖에 있어서 이 근처 상가들이 영업이 됐다. 기숙사가 공장 안에 있었다면 그처럼 장사가 잘 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충방이 문을 닫고 실업학교와 학생 기숙사가 사라지면서 주변 상가들의 영업도 주춤하기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충방이 문을 닫을 무렵 그는 새로운 일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슈퍼를 찾는 충방 직원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보고 2~3년 동안 병행한 세탁 DC점(세탁물 위탁 배달 서비스업) 경험과 마침 윤 대표의 아내 남상덕씨가 세탁기능사 자격증을 획득한 것이 부부가 세탁업으로 방향을 전환하기로 결정하는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그는 지난 2002년에 30년 가까이 운영하던 대명슈퍼를 접고 ‘에벤에셀’이라는 상호로 본격적인 세탁소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가게 문 열기 전 새벽기도·통학도우미

옷수선을 담당하는 아내 남상덕씨의 작업공간엔 재봉틀과 각종 색깔의 실이 걸려 있다. ⓒ 무한정보신문

옷 세탁, 다림질, 드라이크리닝 등은 남편이 맡고, 수선은 아내가 역할을 분담한다. 그에 따르면 세탁물 하나 들어오면 접수, 분류, 먼지털기, 전처리, 드라이크리닝, 건조, 후처리(전처리때 미진한 부분), 다림질, 포장 등 7~8단계의 공정을 거친다. 약품도 전처리제가 다르고, 후처리제가 다르다. 

그는 “세탁DC점을 통해 공장에 보내면 이 같은 전·후처리 공정은 없다고 보면 된다. 세탁을 맡겨도 옷에 묻은 오염물질이 제거되지 않은 채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고객 민원이 많을 수밖에. 세탁 DC점은 값이 저렴하고 빠르긴 한데, 하자가 많아 고객 민원이 끊이질 않았다”며 “내가 세탁소를 직접 운영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된 배경엔 이런 이유도 있다. 세탁물 접수 단계부터 꼼꼼하게 처리하는 세탁소는 드물 것”이라고 말한다. 

세탁소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월~토요일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저녁 7시까지 영업한다. 그는 독실한 기독교 신앙인이다. 일요일에 그가 어김없이 향하는 곳은 교회다. 

그는 “교회에서 70세까지 장로직을 수행하고, 지금은 예산, 당진 지역 성결교회 은퇴장로 모임의 부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며 세탁소 상호인 ‘에벤에셀’의 의미가 ‘하느님이 여기까지 도우셨다’라고 풀이해줬다.

마네킹 모양의 거치대는 양복·점퍼 등을 장착한 뒤 내부에서 스팀을 발생시켜 옷을 다림질하는 장비다. ⓒ 무한정보신문
마네킹 모양의 거치대는 양복·점퍼 등을 장착한 뒤 내부에서 스팀을 발생시켜 옷을 다림질하는 장비다. ⓒ 무한정보신문

코로나19가 발생하면서 손님도 덩달아 줄었다고 한다. 사람들의 외부활동이 잦아들고 주로 집안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옷 세탁할 일도 수선할 일도 줄어든 탓이다. “요즘엔 하루에 손님은 10명 정도다”라며 “세탁업은 영세업”이라고 규정한다. 

그럼에도 그는 새벽 4시반 기상해 새벽기도를 멈춘 적이 없다. 최근엔 신례원초등학교 통학도우미 일도 맡았다. 또 틈틈이 집 근처 200여평 되는 텃밭에서 상추, 고추 등을 재배하는 등 여든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주어진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 노력하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 시대의 젊은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물음에 “모든 이들이 하나님을 섬겼으면 좋겠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올바른 정신을 갖고 열심히 살았으면 좋겠다”는 말을 전한다.

이어 충방 부지와 이곳이 위치한 창소리, 그리고 신례원 지역에 대한 걱정도 빠지지 않는다. “예산 지역에 건설 크레인 하나 제대로 서 있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다른 지역에 비해 점점 낙후 돼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는 그의 눈동자는 어느새 충방 담장을 향해있다. 

군민들에게 새해인사 겸 덕담을 청하자, 역시 충방 이야기다. “충방 부지가 개발돼야 침체된 신례원 지역의 상가가 살아날 수 있다. 하루빨리 주민들이 활력을 되찾았으면 좋겠다”는 그의 바람, 최근 그의 내면 대부분을 차지하는 소망인 듯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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