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순이 주흥상회 대표. 시어머니를 도와 이불, 한복 등을 판매한 지도 어느덧 44년이 됐다. 예전 환갑잔치나 명절 때 만큼은 아니어도 가끔씩 행사 의류로 한복을 찾는 고객들이 있다고 한다. 마 대표가 치수를 재고 재단은 서울 광장시장에 의뢰한다. ⓒ 무한정보신문
마순이 주흥상회 대표. 시어머니를 도와 이불, 한복 등을 판매한 지도 어느덧 44년이 됐다. 예전 환갑잔치나 명절 때 만큼은 아니어도 가끔씩 행사 의류로 한복을 찾는 고객들이 있다고 한다. 마 대표가 치수를 재고 재단은 서울 광장시장에 의뢰한다. ⓒ 무한정보신문

“한복을 입으면 사람들이 몸가짐과 행동이 바르게 형성돼. 그렇잖유…. 한복 입고 함부로 움직일 수 있남. 그러다보면 행동 하나하나가 바르게 되는 거지. 또 예쁜 옷을 입고 있으면 말하는 것도 저절로 조심스러워져. 그게 한복의 장점이야”

시어머니의 일손을 돕는 것을 계기로 44년째 한복 가게를 지키고 있는 마순이(74) 주흥상회 대표는 한복 예찬론을 펴며 요즘 세태에 대한 지적을 살며시 얹는다. 하지만 한복을 찾는 사람들이 예전처럼 많지 않은 탓인지, 한복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목소리가 신이 나지 않는다.

고덕 용리가 고향인 마 대표는 23세에 친척의 소개로 만난 삽교 출신 남편 이근주씨(2021년 76세 나이로 별세)와 백년가약을 맺고 51년째 삽교 살이를 하고 있다. 

결혼 뒤 남편과 함께 홍성군 홍북읍에서 사과 농사를 짓던 마 대표는 당시 삽교·고덕·덕산 장날 시장에서 기성복 장사를 하던 시어머니(신태남, 2007년 별세)를 틈틈이 거들기 시작하면서 50년째 삽교에서 한복, 각종 생활의류, 이불 판매업을 운영하고 있다. 

매장 천장 가까이 높은 위치에 색깔별로 곱게 진열해 놓은 한복이 시선을 끈다. 하지만 설날 설빔으로 한복을 입는 사람들이 점점 줄면서, 지금은 삽교 지역에서 한복을 맞출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가게가 됐다.

20년 전부터 한복을 맞추기 위해 가게를 찾던 손님의 발길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5일마다 삽교를 들썩이게 했던 장날이 제 기능을 잃기 시작한 것도 그 즈음부터인 것 같다”며 “지금은 사실상 5일장의 의미가 사라졌다”는 말을 체념 섞인 목소리로 전한다.

원하는 물품은 집 근처 마트나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구하는 시대다. 굳이 장날을 기다렸다가 시장에 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는 “예전엔 환갑잔치를 집에서 치렀다. 식당에 안 갔다. 우리도 여기로 이사오면서 이 집에서 시어머니 환갑잔치를 했다. 밀가루 한 포대씩 약과를 해서 내놨던 시절의 이야기다”라며 “그땐 환갑잔치 같은 대소사를 치르는 집에서 어른들이 자손들 한복 해 입힌다고 가게를 찾는 사람들이 많았다. 또 추석 때보다 설날에 집집마다 아이들 옷을 사 입혔는데, 요즘엔 그런 전통이 다 사라졌다. 가게 건물을 새로 짓기 전엔 설 전날, 설 당일, 설 다음날에도 어머니 옷을 해드리겠다고 딸들이 치수를 재고 가곤 했다”고 회고한다.

 

한 고객이 이불을 사러 가게를 들렀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설날에 방문할 아들을 위한 것이란다. ⓒ 무한정보신문
한 고객이 이불을 사러 가게를 들렀다. 며칠 앞으로 다가온 설날에 방문할 아들을 위한 것이란다. ⓒ 무한정보신문

현재 한복은 마 대표가 직접 짓지 않는다. 고객이 한복을 맞추려면 먼저 매장에 비치해 놓은 다양한 형태와 색깔의 한복 샘플 사진책을 보며, 원하는 디자인을 고르면 된다. 그 다음부턴 마 대표가 해야하는 일이다. 그는 고객의 치수를 재고, 고객이 선택한 옷감의 일련번호와 함께 서울 광장시장에 제작을 의뢰한다. 

예전엔 주흥상회 길 건너편에 옷 재단 가게가 있어, 그곳에 맡기면 됐는데, 지금은 사라지고 없다. 반면, 광장시장에는 치마 꿰매는 사람, 저고리 꿰매는 사람, 고름접는 사람 등 한복 부분별로 전담하는 인력이 있다.

그는 여성 한복의 옷 맵시를 좌우하는 포인트는 저고리에 있다고 강조한다. 진동, 동정, 소매, 고름, 총장 등을 각각 치수에 맞춰 만들어야 하기에 작업과정이 많고 손이 많이 간다. 특히 당의 저고리는 원단도 많이 들어가고 손도 훨씬 많이 간다.

“예전 한복을 보면 소매가 넓고 풍성한데 비해 요즘 한복 저고리는 좁은게 특징”이라며 “한복 한 벌 맞추는데 들어가는 공임비는 15~20만원이다. 여기에 옷감 가격을 더하면 보통 비용은 50만원 정도한다. 가장 싼게 35만원이고, 비싼거는 80~100만원 짜리도 있다”고 설명한다.

개업 당시 주 품목은 시어머니가 장날마다 취급했던 생활의류와 이불이다. 점차 주단, 포목으로 취급 품목을 조금씩 확대했다. 현재 가게 안에 진열돼 있는 양말, 속옷, 내복, 여성의류, 아동의류 등은 명절이나 환갑잔치 등 가족 친지들의 모임이 있는 집에서 찾기 때문에 구비해 놓았다.

“지금은 아기가 있는 집이 귀하다. 아기 옷을 찾는 사람들도 거의 없다”고 한다. 저출산의 사회적 여파를 주흥상회도 고스란히 겪고 있는 것. “아기 이불 세트도 있지만 거저 줘도 가져갈 사람이 없다”며 “확실히 시대가 변했다”고 목소리 톤을 살짝 높여 강조한다. 


고객 뜸해진게 20년쯤, 장날 의미도 사라져

장날이면 시장에서 시어머님이 옷 장사를 했는데, 혼자서 버거워 하는 모습을 보고 마 대표와 남편이 일을 도왔다. 남편이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옷을 떼다가 기차 편으로 예산으로 가지고 오면, 시어머님이 그 옷을 장에 내다 파는 식이다.

주흥상회의 모습.
주흥상회의 모습.

1980년에 가게를 매입하고 ‘주흥상회’를 열면서 시어머니는 시장 한복판에서 겪어야 했던 더위와 추위를 피할 수 있게 됐다. 지금의 2층짜리 현대식 건물은 2013년에 신축했다. 

마 대표는 “시어머니가 가게를 매입할 당시, 가게 앞 거리는 일제강점기 때 지은 창고 건물들이 줄지어 있었다”고 말한다.

당시 각 가정에서 직접 이불 꿰매거나 간단한 옷수선 정도는 으레 하는 일이었다. 대부분의 여성들이 재봉틀을 다룰 줄 알았다. 마 대표 역시 따로 재봉기술을 배운 것은 아니었지만, ‘미싱’ 정도는 할 줄 알았기에 시어머니를 도울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도 목화솜 이불 만큼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목화솜으로 이불을 짓기가 여간 까다로운게 아니다. 솜틀집에서 가져온 목화솜을 원하는 두께와 넓이로 골고루 펴고, 여기에 맞춰 이불감을 꿰매야 하는데, 손이 많이 간다”며 “요즘엔 찾는 사람들이 없기도 하지만, 만드는 과정이 어려워 하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친다. 

그러면서 “며칠 전에 동네 어르신이, 오랫동안 사용하던 목화솜 이불 커버가 헤져 가져왔길래, 새 커버로 교체해 드렸다”며 “요즘 사람들은 가벼운 이불을 선호하지만, 나이 드신 분들은 지금도 목화솜 이불을 더 좋아한다. 무게감이 있어 덮고 있으면 따뜻하고 푸근하다”고 말한다. 

주흥상회는 오전 7~8시에 문 열고, 오후 8시에 문을 닫는다. 일요일 오전에 마 대표가 교회에 가기 위해 오후에 문을 여는 것 빼고 주중무휴로 운영한다. 내포신도시가 생겨 삽교에 살던 인구가 빠져나가면서 동네가 썰렁해졌지만, 집이 가게와 함께 있기 때문에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일 가게 문을 연다.

그는 마지막으로 “돈이 많아도 몸이 아파서 다 쓰지도 못하고 힘들게 사시는 분들을 봤다”며 “올 한해 모든 주민들이 바라는 소망 다 이루고 건강했으면 좋겠다”며 새해인사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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