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현 작가가 자신의 작품 한 점을 보여주며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오재현 작가가 자신의 작품 한 점을 보여주며 작업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버팀목갤러리교회 담임목사 오재현 작가가 7번째 개인전 ‘Step by Step 7, 예산연가’를 열었다. 전시는 예당관광농원 내 라이크레이크 베이커리카페 2층 전시실에서 오는 2월 26일까지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도화지 위에 연필로 대상의 주요 부분을 포착해 스케치 한 뒤, 수채 물감을 살짝 얹어 빈 공간을 적절히 채우는 방식의 미술 장르인 어반스케치가 오 작가의 특기다.

총 45점으로 채워진 그의 전시회를 감상하고 나면, 어느새 예산 지역을 한 바퀴 돌아본 느낌이 들 정도다. 신암 오산리 눈 쌓인 폐가, 광시 시골길, 예당호, 카페 창가를 통해 바라다보이는 풍광, 예산리의 오밀조밀한 주택가와 언덕길, 신양 죽전리의 오래된 농가 등이 그의 붓터치로 또 다른 예산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오가 오촌리를 지나다 우연히 마주친 고라니 두 마리도, 전시장 밖 굵은 나무도 그에겐 놓칠 수 없는 주요 소재다. 주민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한 탓에  관심조차 두지 않는 장소들이 오 작가의 시선에 닿으면 이내 그림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그는 “건축가가 설계를 위한 밑작업으로 그린 드로잉이 발전한 것이 어반스케치다. 일반인들이 미술을 접할 수 있는 가장 쉬운 기법 가운데 하나다. 그림일기를 쓴다고 생각하면 된다”며 “제 작품들은 모두 현장에서 이뤄졌다. 눈이 오면 눈을 맞으며 그림을 그렸다. 현장에서 핵심 요소를 재빨리 간파해 그 자리에서 묘사해내야 한다. 큰 작품이 아니면 대부분 15~30분 내에 작업을 끝낸다. 가능하면 현장의 느낌, 내가 느꼈던 그 때 그 분위기를 작품에 담기 위해서다”라고 작업 과정을 소개했다.

전시회 대표작 ‘석양리 폐 사과저장고’. 육체적·심적으로 어려운 주인에 힘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 오재현
전시회 대표작 ‘석양리 폐 사과저장고’. 육체적·심적으로 어려운 주인에 힘을 주고 싶다는 마음을 담았다. ⓒ 오재현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장면들은 예산 주민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지역이어서, 과연 그림의 소재나 될까 싶은 장소들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그의 미적 감수성과 종교적 성찰이 있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지나쳐 버렸을 지극히 평범한 장소와 대상을 화폭에 옮길 수 있었는지 모른다.

마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대상에 이름을 불러주자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됐다는 내용의 김춘수 시인의 시 ‘꽃’처럼, 오 작가에겐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았던 장소와 사물을  연필과 붓터치를 통해 특별한 장소로 만드는 능력이 있다.

3년 전부터 <무한정보>에 ‘도화지 속 예산’이라는 그림을 곁들인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그는 “어느 독자가 신문에 실린 그림과 글을 보고는 자신이 어릴 적에 늘 보던 곳이고, 별 느낌 없이 눈길도 안 주던 곳인데 작품 속에 동네가 등장하는 것을 보고 감동을 받았다”며 “지금 살고 있는 자신의 동네를 그려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고 웃으며 말한다.

그는 가방 속에 도화지, 팔레트, 펜·붓을 넣고 그림일기를 쓰듯 7~8년째 예산의 다양한 모습을 화폭에 옮긴다. 그것도 매일.

그에 따르면 처음엔 공책에 연필로 스케치 하는 정도였다. 어느 날 “나같이 별 볼일 없는 사람도 목회자로 세우고, 또 요양원 원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한 데 대해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며 “그렇다면 나도 아무도 눈길 주지 않는 곳을 그려 작품으로 만들어 보는 일도 의미가 있겠다 싶었고, 또 하찮게 보이는 곳이 예술가의 눈에 포착되면 어떻게 작품화할 수 있는지도 궁금해 집중해 작업하던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한다.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매일 챙기는 화구들.  ⓒ 무한정보신문
현장에서 그림을 그리기 위해 매일 챙기는 화구들. ⓒ 무한정보신문

지난 2010년 순천향대 평생교육원 유화반에서 연필 잡는 법, 선긋기 등을 하면서 시작한 그의 그림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예산에서 배울 곳을 찾다가 알게 된 곳이 아산 순천향대 평생교육원 유화반이다. 요양원을 운영하면서 힘들 때, 1주일에 한 번 그림을 배우며 그렸던 시간이 당시엔 나름대로 해방구였고, 같이 배우러 온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떠는 것이 행복했다”고 수줍게 전한다.

미술을 전공한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생 시절 사생대회에서 상을받은 일도 있다는 것을 보면, 그의 미술 재능이 어느 날 갑자기 발휘된 것이 아님을 알게 된다.

지금은 목회자가 됐지만, 한때 미대 입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만큼 미술에 대한 관심과 열정이 있었다. 하지만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시작된 그의 빠듯한 목회 생활이 미술 등 다른 분야의 관심에서 멀어지게 했다.
그는 “일반 목회가 아닌 치매, 고아, 알콜중독자 등과 함께 지내며 돌보는 일을 했다”며 “그분들을 먹여 살리고 입혀야하는 사역을 하다보니 아예 그림을 잊고 살았다”고 회고한다.

지난 2005년부터 아내 문차선씨와 함께 오가에서 추사고택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버팀목요양원’을 운영하며 10명 미만의 어르신들과 가족처럼 지냈던 것 역시 그가 신학교 시절부터 갖고 있던 특수 사역에 대한 남다른 철학이 바탕이 깔려 있다<무한정보 2010년 2월 22일자 보도>.

하지만 요양원 사무장으로 있던 아내가 건강 문제로 부득이 요양원 운영을 포기해야 했다. “요양원이 잘 된다는 소문을 듣고 인수의향을 갖고 있는 분들도 있었지만 팔지 않았다. 많은 분들의 후원과 사랑이 모여 조성된 요양원을 개인적으로 파는 것을 양심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며 “앞으로 버팀목요양원은 선교사들의 게스트하우스, 은퇴 목사들의 쉼터로 활용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요양원을 폐업하는 대신 인근에 26평 규모의 ‘버팀목갤러리교회’를 지은 그는 지난해 안식년을 보낸 뒤 올해부터 담임목사와 작품 활동을 함께할 계획이다. 예빛봉사단 등의 도움으로 교회 내부 리모델링해 다양한 어반스케치 작품들을 감상할 수 있도록 마련했다고 한다.  

그의 작품 속엔 이미 사라져버린 건물도 등장한다. 이음창작소 건너편에 위치한 주교리 커뮤니티센터가 건축되기 전에 있던 폐정미소, 고속도로 개통으로 사라진 마을의 풍광 등은 그가 의도치 않게 그림으로 남긴 예산의 역사다.

조곡산단 문제로 걱정이 많은 주민들을 생각하며 그린 ‘혜전목장’.   ⓒ 오재현
조곡산단 문제로 걱정이 많은 주민들을 생각하며 그린 ‘혜전목장’. ⓒ 오재현

조곡산단 조성으로 걱정이 이만저만 아닌 주민들을 위해 산단 예정부지 가운에 하나인 혜전목장 그림도 눈길을 끈다. 
그는 “지금은 사용하지 않은 석양리 사과저장고 그림은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건물 주인에게 위안과 힘을 주자는 취지로 전시 초대장 대표작으로 사용했는데, 그분이 전시회에 오셔서 그림을 보고 감격해 하기도 했다”며 전시 후일담을 전한다.

오 작가는 “지난 2021년 더뮤지엄아트진과 지난해 디아트엘에서 연 개인전 출품작 80~90점이 완판됐는데, 예산에선 흔하지 않은 경우다”라며 “보시면 알겠지만, 제 작품이 딱히 대단한 것도 아닌데 완판될 수 있었던 건 판매수익으로 아픈 이들의 병원비를 지원해주고,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입학금으로 사용하니까 하나님이 도와주시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회 판매수익금을 예빛봉사단의 해외봉사와 통일선교회(탈북여성 지원)에 후원금으로 사용할 계획이다. 작품가는 개당 10만~20만원 사이다. 최고가는 50만원인데 인천에서 온 분에게 팔렸다. 현재 45점 가운데 30점 가량이 판매된 가운데, 오 작가는 남은 전시기간 완판을 기대하고 있다.

오늘 그의 따뜻한 시선이 닿아 있는 곳은 어디일까? 예산을 지나다니다가 누군가 도화지를 꺼내들고 스케치를 하는 사람이 발견한다면, 어쩌면 오재현 작가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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