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오펜하이머>가 다른 나라보다 한국에서 흥행이 잘 되고 있다고 한다. 일본 패망의 큰 원인이 되었던 히로시마 원폭 투하 장면이 나온다는 이유로 광복절을 개봉일로 했던 배급사의 전략이 통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사실 영화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점을 놓치게 하는 흥행 전략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원폭 투하 장면을 사실적으로 볼 수 있다고 아이맥스 상영을 주로 홍보한 것도 그렇다. 수십만의 사망자가 나고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엔터테인먼트처럼 다룰 수 있는 건 아니다. 현실감을 살려서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자 했다고 해도 공감이 가지는 않는다.

‘오펜하이머의 순간’이라는 말이 있다. 원자폭탄 개발로 이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완전히 새로운 세계관이 열리듯, 불가역적인 결과를 낳는 결정의 순간이다. 영화에서 우리는 준비가 돼 있지 않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을까?

지금 미국 헐리우드에서 지난 5월부터 작가들의 파업이 시작됐는데 지난달부터 배우들의 동참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영화와 방송작가들은 공들여 쓴 대본이 챗GPT를 통해 순식간에 만들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고 있다. 

챗GPT가 기존 내용을 짜깁기해 작가들의 지식재산권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우들의 목소리를 AI로 만들어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배우의 모습까지 만들어내 연기를 하게 하는 것도 당장 가능하다. AI 실행 프로그램을 마주한 지금 ‘제2의 오펜하이머의 순간’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AI 기술 개발을 위한 각론은 곳곳에서 나오지만 윤리적 담론은 부족해 보인다. 우리는 AI시대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2016년 알파고가 등장했을 때 잠깐 인간의 일자리 문제를 거론했던 몇 번의 토론을 본 기억이 난다. 

변하는 세상을 거부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항상 19세기 있었던 영국의 ‘러다이크 운동’을 얘기한다. 자기 일자리 때문에 무조건 산업자동화 기계에 대한 폭력적 저항은 실패한다는 것인데 물론 그렇다. AI는 곧 우리의 구체적인 일상 안으로 들어올 거다. 

우리가 지금 준비해야 할 것은 기술 개발이 아니라 사회의 작동 시스템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때보다 민주주의에 대한 교육과 토론이 필요한 때이다. 그래서 헐리우드 작가들이 시작한 시위는 단순히 미국 헐리우드 작가와 배우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제2의 오펜하우머의 순간, 원폭 피해의 고통이 지금도 이어지고 있음을 알고 신중하고 세심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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