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63세이고, 맏언니의 나이가 올해 89세다. 13명으로 구성된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에어로빅팀’ 어르신들은 ‘행복’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님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이 팀은 지난 18~20일 예산윤봉길체육관에서 열린 ‘제29회 전국에어로빅힙합선수권대회’ 실버로빅 부분에서 당당히 1위를 했다.

12년차 장금수(82), 5년차 강희순(78)·이영자(72), 3년차 김신분(75) 4명의 어르신과 20년차 임언년(89), 양태관(88), 정양희(88), 권영옥(88), 김순분(87), 김숙희(85), 김정희(85), 이경자(84), 이순분(78) 등이 이번 대회 주인공들이다. 

어르신들 대부분은 지난 2003년 유원숙(76) 예산군에어로빅힙합협회장과 인연이 닿아 에어로빅을 시작한 창단 주역들이다. 20년 동안 함께 호흡을 맞췄으니, 눈빛만 봐도 서로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번에 알 수밖에….

유 회장은 현재 예산읍 산성리에서 ‘유원숙에어로빅’을 운영하며 선수들을 양성하고 있다. 이번에 우승한 ‘노인종합복지관팀’은 그가 에어로빅 강사로서 자원봉사하고 있는 노인종합복지관 어르신들 가운데 일부다. 

이번 대회에 원래 20여명의 어르신들이 준비하고 있었는데, 대회를 앞두고 주저하는 어르신들은 빠지고 12명으로 팀을 꾸려 출전했다.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에어로빅팀’이 단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 에어로빅팀’이 단체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팀에서 총무를 맡고 있는 양태관 어르신은 “무릎 관절이 안 좋았는데, 에어로빅을 하면서 건강도 좋아졌다. 자신감도 생기고 명랑해졌고, 가족들도 좋아한다. 손자들은 ‘우리 할머니 춤추니까 좋다’고 한다”며 “에어로빅을 하는 순간은 모든 근심은 사라지고 대신 행복이 그 자리를 차지한다”고 에어로빅이 얼마나 좋은지 강조했다. 

이어 “서로를 향해 이름을 부른다. 나이가 어린 사람은 언니들에게 아무개 ‘형님’이라고 부른다”며 화목한 팀 분위기를 전했다. 

이번 대회를 위한 특별한 훈련은 없었다고 한다. 하긴 함께 한 세월이 얼마인데, 굳이 별도의 연습이 필요 있을까 싶다. 다만 일주일에 세 번 모여 늘 하는 연습 정도다. 화요일은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에서 목요일과 금요일엔 유원숙에어로빅에서 모여 1시간씩 에어로빅, 라인댄스, 라틴댄스 연습을 한다. 

양태관 어르신은 “한 번 연습하고 나면 땀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이번 대회뿐 아니라, 전국 여러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며 팀 자랑을 풀어 놓는다.

팀 내 최고령자 임언년 어르신은 “나도 20년 됐다. 에어로빅을 시작하기 전에 내가 자꾸 어디 일을 하러 다니니까, 당시 큰 며느리와 아들의 권유로 시작했다”며 “지금 너무 좋고, 즐겁게 산다”고 말했다. 

이순분 어르신은 “20년 전 58세 때 시작했는데, 그때는 에어로빅이 유행이었다. 그전에는 먹고 숨쉬기 운동만 했는데, 여기 오니까 음악도 좋고, 운동이 됐다. 에어로빅을 하면서 굉장히 건강해졌다”며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여준다.

예산군의 에어로빅 역사는 유 회장을 빼고 이야기할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 에어로빅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될 무렵, 예산군에 에어로빅을 본격적으로 소개하고 확산시킨 장본인이 유 회장이기 때문이다. 

서산이 고향인 그는 무용가가 꿈이었던 친정엄마의 영향을 받아 언니와 함께 무용을 전공했다. 27세 때 예산이 고향인 남편과 결혼하면서 예산에 정착한 지 50여 년이 됐다.

그는 “미국에 살고 있던 이모가 이미 생활체육으로 자리를 잡은 미국의 사례를 들려주며,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한 나에게 예산지역에 에어로빅을 소개하면 좋을 것 같다고 권유했다. 당시 에어로빅은 예산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에서 생소한 스포츠였다”며 “서울 중앙협회를 찾아갔던 것을 계기로 예산에 에어로빅협회를 만들고 보급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팀 창단 당시 예산군 문예회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 양태관
예산군노인종합복지관팀 창단 당시 예산군 문예회관에서 공연하고 있는 모습. ⓒ 양태관

체육관 벽 한쪽에는 유 원장에게 에어로빅을 배워 국내외 각종 에어로빅 대회 출전해 메달을 딴 제자들의 사진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그동안 그가 지도한 선수들이 500여명에 육박한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선수들이 국내·국제 대회에 출전해 메달 성적을 거두며 발군의 실력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도 예산군에서 학생, 주민, 어르신 등 300여명이 그의 지도를 받고 있다.

2013년 예산군에서 처음 전국단위 에어로빅선수권대회를 열게 된 것도, 그때부터 올해까지 예산군에서 연속 11번째 대회를 유치할 수 있었던 배경에 유 회장의 노력은 남달랐다.

에어로빅을 하기 전과 후의 가장 크게 달라진 점에 대해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건강이 좋아졌다’는 점을 꼽았다. 그것도 ‘확실히’. 그리고 이어지는 말은 ‘행복’이다.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어놓고 율동하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나이 들수록 운동의 중요성을 새삼 느낀다. 누가 이 여성들을 어르신이라 보겠는가. 주름지고 늘어지고 군살 붙은 몸이지만 아무도 부끄러워하거나 힐끗대지 않는다.

유니폼을 입는 순간 청춘으로 변신한다. 큰소리로 웃어대고, 온몸을 움직인다. 서로의 얼굴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된다.

‘날마다 한 시간’의 사사로운 행복이다. 에어로빅이 없었다면 이 많은 할머니들은 대체 어디 가서 무슨 운동을 하며 신나게 놀까.

정부나 지자체가 노인 문제를 다룰 때 흔히 치매나 고독사 같은 사후 처방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보다 건강하고 활기차게 노년의 여가를 보내도록 지원하는 쪽이 훨씬 더 실질적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유원숙 회장의 바람이기도 하다. 그는 “현재 예산군의 어르신 인구가 40% 정도 된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노인종합복지관 정도이고, 그것도 주중에 한 두 번 이용하는 상황”이라며 “어르신들이 에어로빅, 라인댄스, 요가 등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스포츠센터가 건립됐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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