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산산성 근경. ⓒ 예산군
예산산성 근경. ⓒ 예산군

예산산성의 국가사적 지정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예산군에 따르면 충남도 지정 기념물 제30호 ‘예산산성’이 문화재청이 시행하는 2024년 사적 예비문화재조사 지원사업에 선정되면서, 본격적으로 국가 사적 지정을 위한 사전작업을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이번 선정으로 군은 사적 지정을 위한 현지조사와 학술세미나 등 지정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제반 비용 8910만원(국비·군비 각각 50% 부담)을 투입할 예정이다. 

군 관계자에 따르면 지난 2019~2021년 3년 동안 예산산성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로 확인되는 성벽과 이와 관련된 건물지·유물 등을 확인했으며, 고려시대 예산지명 발원지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받아 이번 사업에 선정됐다.

예산산성은 무한천과 접한 충적평야에 독립적으로 위치한 구릉지에 조성된 석성(포곡식 산성, 예산읍 산성리 275-8번지 외 19필지)이며, 규모는 △성벽길이 965m △성내 면적 5만8200㎡ △문화재 구역 면적 6만1196㎡다.

 

예산산성 원경. ⓒ 예산군
예산산성 원경. ⓒ 예산군

예산산성 유적 발굴과 관련해 △2016~2018년, 예산산성 내부 동쪽 구간 시·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건물지 확인 △2019~2020년, 예산산성 북성벽축조기법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로 백제 토성 확인 △2020~2021년, 예산산성 진입로 확장 및 주차장 조성 공사 등의 과정이 진행됐다<무한정보 2020년 4월 27일자 보도>.

군은 2024년 3~6월 사이 사적 지정을 위한 학술 대회를 열고, 6~11월에 사적 지정 보고서 작성 뒤, 12월 문화재청에 국가사적 지정 신청을 할 계획이다.

예산산성이 처음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시기는 5세기 후반 백제시대로 추정된다. 군이 2017년에 발표한 ‘예산지역 백제산성 학술조사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예산산성은 무한천에 오산성으로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명칭은 오산성 혹은 무한성으로 불렸다. 

백제부흥전쟁기(660~663년)에는 임존성과 함께 무한천 변의 전초기지로서의 국가시설의 기능을 했다.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는 고려 태조가 934년 대민교서를 발표한 역사적 공간이며, 고려 통일 이후에는 예산현의 치소(治所)로서 역할을 했다. 조선 초 태종이 태안지역 군사훈련 참관 길에 방문한 기록이 남아있다. 이후 예산산성은 동학농민혁명기엔 관군이 목을 지킨 거점으로서 활용됐고, 동학군에 의해 함락된 근대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고고학적 가치로는 2015년에 예산산성 일원 지표조사를 통해 산성의 규모, 내부시설, 전체 면적 등의 계량화된 수치를 확보했다. 이어 2016~2018년에 예산산성 내부 동쪽 구간 발굴조사를 통해 △백제시대 건물지 2동 △저장수혈 43기 △수혈유구 4기 △목곽고 1기 등을 확인했으며, 목곽고는 그 규모가 동서 11.2m, 남북 10.5m, 잔존 깊이 5.1m이다. 성벽축조기법은 판축기법을 이용한 백제시대 토축성벽과 성 내부 와적층에서 유물이 발견됐다.

산성의 지세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연결되는 정상부 능선과 서쪽의 경사면과 곡부를 감싸는 동고서저(東高西低)형으로 계곡을 포함하는 ‘포곡식’ 형태를 띠고 있다. 

 

예산산성 건물지 1~2호 남쪽 전경. ⓒ 예산군
예산산성 건물지 1~2호 남쪽 전경. ⓒ 예산군

동벽은 전체길이 282m로 산성 동쪽 정상부에 해당한다. 성 안쪽 평탄지는 현재 경작지와 민묘 군으로 이뤄져 있으며 경작으로 인해 원형은 파괴됐다. 잔존 성벽은 내벽 높이 2m, 외벽 높이 2.5m, 상단 폭 2~3m이다.

서벽은 전체길이 196.6m로, 산성 서쪽 사면 말단부에 해당한다. 성내에서 무한천으로 흐르는 곡부 한 가운데를 경유하며 축성됐다. 현재 성내 계곡부 한가운데는 모두 유실돼 성벽의 흔적은 확인이 불가능하다. 하단부 평탄지에 건물지 1기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 과수원으로 이용하고 있다.

남벽은 전체길이 약 203m이며, 남쪽 능선 선상부에 해당한다. 성벽 안쪽으로 폭 1.5m~2.5m 내외의 평탄면이 조성돼 있다. 현재 과수원과 함께 이동로로 사용 중이다. 면석은 대부분 유실됐지만, 남서벽 모퉁이 부근에 높이 1.8m(4~9단), 길이 약 5m 정도가 남아 있다. 잔존 성벽의 규모는 내벽 높이 2m, 외벽높이 2.3m, 상단 폭 1.5m이다.

북벽은 전체길이 224m이며, 북쪽 정상부 일부와 능선 선상부에 해당한다. 현재 일부구간이 유실됐지만, 대부분이 지면에 돌출된 상태로 잔존한다. 성벽 규모는 내벽높이 1~1.4m, 외벽높이 5m, 상단폭 1m, 하단폭 8m이다.

문지(출입시설)로서 남아있는 곳은 현재 동문지가 유일하고, 북문지는 흔적이 남아 있어 추가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며, 나머지는 위치를 특정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건물 추정지는 성내 곳곳에서 삼국시대로 추정되는 저수지, 저장 구덩이 등이 다수 발견됐다. 

예산산성과 관련해 보고서는 출토된 유물 현황에 비춰볼 때 산성은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오세인 학예연구사는 “5세기 후반 유적이면 꽤 이른 시기에 형성된 것이며, 무한천 주변의 거점 산성 역할을 했다. 고려 태조 왕건이 919년에 오산현을 예산현으로 바꾸면서 현재의 예산지명 발원지가 됐고, 934년엔 이곳에서 대민교서를 반포했다. 또 조선 태종이 산성을 방문한 기록이 있고, 근대사에서 관군이 동학농민군에 맞서 산성을 지키는 등 백제·고려·조선 시대를 거쳐 근대사에 이르기까지 오랜 기간 역사적인 중심 무대였다”며 “그동안 발굴조사를 통해 어느 정도 자료로 확보돼 있고 역사적 가치도 밝혀져 있어, 정리하고 연구만 잘하면 충분히 사적으로 지정될 만하다”고 말했다.

이강열 문화재팀장은 “예산산성이 문헌상에는 무한성 또는 무한산성으로 돼 있는데, 사적으로 지정되면 명칭을 사적지정 명칭으로 바꿀 계획이며, 정비계획을 수립해 장기적으로 역사유적공원을 조성하고, 문화재 활용사업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사적으로 지정될 경우 윤봉길의사 유적과 임존성에 이어 예산군에 세 번째 사적이 된다”라고 밝혔다.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