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내 탓이오’가 생각났다.

아마 30여년 전 종교 지도자로부터 사회운동으로 시작된 ‘내 탓이오’ 스티커를 차량 뒷면 유리창에 부착하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내 탓이오’ 운동이 잘잘못도 가리지 않고 무조건 ‘내 탓이오’로 인식하는 일부 사람들로 인하여 그 진실성이 퇴색되어 당초에 의도와는 달리 자동차문화의 양보 운전 정도로 인식되고 말았다.

‘내 탓이오’라는 단어는 긍정과 부정의 결과로 보여지게 마련이다.

진정성이 있는 ‘내 탓이오’와 회피성 ‘내 탓이오’는 다르다. 엊그제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진행자가 이런 질문을 한다. 결혼 했는데 남편이 이상하고 잘못된 행동을 할 때 어떻게 하는지 출연자에게 물었다. 

그 출연자의 대답은 ‘내 눈을 찍겠다’라고 한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 눈으로 내가 선택을 잘못했으니 나를 탓해야지 누구를 탓할 수 있느냐고 한다. 동반 출연자는 한 술 더 떠 아니다 싶으면 빠른 포기가 현명하다고 말한다. 이미 안되는 것을 알면서 계속해서 요구하는 것 또한 집착으로 인한 갈등의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우문현답이다.

요즘 정치권을 보면 ‘내 탓이오’를 실천하는 사람들을 보기 어렵다.

어떻게 하면 책임을 회피하고 남에게 떠넘길 수 있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은 정치권에 다 모여 있는 것처럼 보여진다. 무조건 우리도 나도 아니고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확인되지 않은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포장하는 기술이 정치권을 통해 날로 발전하고 있는 것 같다.

정치인은 스스로 공인이라 말한다. 그들이 말하는 공인이라면 말과 행동에 공인으로서 책임이 따르게 마련이지만 책임은 지려고 하지 않는다. 상대방이 빈틈만 보이면 무조건적 공격으로 여론을 호도하고 공인이라는 사람의 입을 통해 언론이나 방송에 떠들어댄다. 

그러니 정보에 취약한 사람들은 사실관계를 판단할 수 없는 현실에서 진실로 믿을 수 밖에 없다. 더구나 요즘 세상은 영상이나 사진 등의 편집 기술이 발달하여 그럴싸한 짜깁기로 영상과 함께 소문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더구나 유권자의 선택에 당락이 결정되는 정치인들은 소문의 옳고 그름은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오롯이 상대방의 약점이라 생각이 들면 소문을 사실인 것처럼 막무가내 퍼뜨리고 다니는 세상이다. 

더 큰 문제는 정치인들로 시작된 사회적 문제의 소문이 시간이 지나고 진실이 밝혀져 거짓이 확인되어도 그 책임을 지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상황이나 자리에 따라서 거짓과 진실을 분간 못하고 떠들어대는 정치인을 투표를 통해 우리 손으로 뽑았으니 그 또한 내 탓이라 말해야 할까?

요즘 우리 사회에는 왜 이런 정치인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지 모르겠다.

중앙정치에서 지방정치로 이어지는 어느 한 곳, 어느 한 사람도 진솔하고 참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드문 세상이 되어버렸다. 입으로는 진실을 말하고 있지만 뒤에서는 온갖 부정한 방법을 동원해 개인의 부를 채우고 권한을 남용하며, 유권자인 국민을 현혹하고 있는 정치 현실을 평범한 사회인으로서 어떻게 받아드려야 할지 모르겠다. 아마 어떤 사람들은 혐오스럽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특히 장마로 인해 많은 비가 내렸다. 전국적으로 많은 인명과 재산의 손실 등이 발생했지만 누구 하나 ‘내 탓이오’라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그저 어떤 구실을 찾아서라도 내가 아닌 남을 탓하려 혈안이 되어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어떤 문제가 있으면 내 탓이든 남의 탓이든 그 원인은 분명하게 있기 마련이다. 

문제에 대한 원인을 찾아 다음에는 그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보완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면 당당하게 지고, 잘못이 있다면 고개를 숙이는 자세를 보여야 할 사람들이 어느 하나 실천하는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이런 와중에도 내 직장에는 ‘덕분에’라는 표현을 자주하는 사람이 있다.

그 ‘덕분에’라는 표현 속에 미약하지만 내 덕분도 있을 것이고 그 덕분을 인정받는 느낌이라서 그런지 모르겠다. 그러나저러나 이런 말을 들을 수 있어 감사함을 느낀다.

저는 여러분들 덕분에 지난 1년이 있었고 오늘이 있으며 앞으로도 희망이 있고 기대가 된다는 말이다. 엊그제 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여러분들의 수고 덕분에 그 많은 비에도 큰 피해 없어서 다행이라는 말이다. 

자칭 타칭 공인이라면 ‘내 탓이오’는 차치하더라도 ‘덕분에 누구 덕분에’라는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표를 구걸하려 하는 ‘덕분에’가 아닌 진정성이 있는 당신 ‘덕분에’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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