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는 주인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란다. 농민은 손에 쥐는 돈이 적어도 한 톨의 쌀을 얻기 위해 이른 봄 못자리부터 한여름 뙤약볕과 비바람을 이겨낸 뒤 가을걷이할 때까지 분주하다. 비가 오면 엎칠까 가물면 타죽을까, 언제나 자전거 뒷칸에 실린 낡은 장화 한 켤레와 익숙한 삽 한자루를 들어 물꼬를 튼다. 오월의 마지막 날, 덕산 둔리에서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뜬모를 하는 어르신이 정겹다. 무논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마주보며 이앙기가 지난 자리를 따라 이빨이 빠진 빈 곳마다 벼 한 포기를 채운다. 아무리 기계가 사람을 대신하는 세상이라지만, 결국 식량창고를 지키는 일은 얼굴과 팔과 다리와 농심(農心)도 검게 그을린 이들의 몫이다. 그래서 쌀 한 톨이 소중하고, ‘쌀값은 농민값’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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