앓는 소리. 이따금 소리도 지른다. 주어없는 욕도 해댄다. 대체 무슨 원한이 저리도 깊길래…. 

제주 강정에서 평화운동가로 활동하다 올라온 사람과 2년간 한 숙소에서 지낸 적이 있었다. 구상권이라는 명목으로 시민활동가들에게 선고한 수천만 원의 벌금을 등에 지고 올라온 그는 밤만 되면 고약한 잠꼬대를 내게 선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강정, 힘겨운 투쟁의 흔적을 험한 잠자리로 내게 보여주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가치 있다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이곳에 와요. 그 사람들에게 우리가 줄수 있는 것은 이상을 보여주는 희망의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해요.”(<돌들의 춤>, 37쪽)

10년 넘게 제주 강정마을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선녀씨의 말이다. 그렇다. 여전히 강정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2011년 구럼비 바위의 폭파와 함께 시작한 해군기지 사업은 2016년 완성되었다. 

그러나 평화를 휘한 투쟁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남아 생명과 평화의 길을 열고 공존의 삶을 모색하는 이들이 있다. 

어떤 이들은 이들을 운동권이라고 매도하기도 하고, 특정 이념에 지나치게 경도된 활동이라고 폄하하기도 한다. 국가가 하는 것인데, 안보가 얼마나 중요한데 자꾸 딴지를 거냐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큰 폭력은 늘상 국가에 의해 자행되지 않았던가? 안보 혹은 이념이라는 명목으로 수많은 이들이 희생되었고, 개발이란 미명 하에 얼마나 많은 자연과 공동체가 희생되었던가? 

평화네트워크의 정욱식 대표는 2012년에 저술한 <가짜안보>라는 책에서 강정에 해군기지를 건설하려는 정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을 ‘확실한 위협’으로 만드는 어리석고도 위험한 선택이며 나아가 중국을 군사적으로 견제하려는 미국의 계획과 맞물려 제주도는 미국의 중국 봉쇄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며 한반도는 동아시아 군비경쟁과 신냉전의 수렁으로 깊숙이 빨려 들어갈 것이다.” 

현재 한중일의 군비경쟁은 그 어느 때보다 가속화되고 있고, 한국의 방산수출에 대한 효과와 기대를 연일 언론과 유튜브에서 홍보하고 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와 대중 무역의 비중이 작지 않음에도 현 정부는 중국과 미국의 갈등 사이에서 견제와 균형보다는 미·일 중심의 일방적 외교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이 책 <돌들의 춤>(카카포출판사, 2023)은 강정 해군기지 반대운동을 함께 하기 위해 육지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2011년부터 현재까지 강정에 모여든 사람들이 왜 이곳에 왔으며 어떤 고민을 가지고 현재를 살아가는지를 기록한 책이다. 

어떤 특별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거나 신이 부여한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의 사연을 읽노라면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고 특정한 계기로 강정과 인연을 맺게 된 사람들이다.

누가 평화가 아닌 전쟁을 원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전 지구적 생태 위기 속에 누가 환경이 소중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을까? 

“다 지어졌는데 이제 와 무슨 소용이냐”며 누가 물을 수도 있겠다. 그렇기에 강정이 지닌 상징은 더욱 중요해진다. 보란 듯 한반도와 동북아, 나아가 세계적 평화를 염원하는 순례의 장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대포와 총은 녹이 슬지만 여린 풀잎은 생명을 이어간다. 구럼비는 사라졌지만 제주의 돌들은 평화의 춤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곳 예산에서 추게 될 그들의 춤을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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