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예상치 못한 일을 경험할 때 충격을 받거나 감동을 느끼게 된다. 주변에서 우리는 충격과 감동을 더러 만나게 되는데, 문제라면 충격적인 일이 많아서 탈이다. 늦은 귀가에 발꿈치를 들고 숨죽여 방문을 여는데, 명랑한 목소리, 흐르는 음악이며 따뜻한 차 한 잔. 어! 이게 아닌데 하면서 금새 감동한 얼굴이 된다. 몇 해 전 결혼기념일에 꽃 한 송이 받아
사는 집 근처는 어딜 보아도 논밭이며 과수원이고 최근에는 인삼밭도 자주 보인다. 집이라고 몇 채 뜸뜸이 있는데 그나마 빈집이 늘어간다. 노인 층이 주민 대다수를 이루는 그런 곳에 최근에 새로운 시름이 하나 더 늘었다. 아니 올 것이 그냥 온 것이었다. 이미 무역자유화가 추진되고 쌀 소비가 줄면서 예견된 일이었다. 그럼에도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는 심정인 농민
<독자투고>농민대회를 다녀와서 오늘은 11월 13일 농민대회 날 다른 때와 달리 오늘 대회는 지금 쌀값이 매우 낮은 상황에서 동네 사람들도 많은 호응이 있으리란 기대를 가지고 아침부터 조금은 긴장된 마음으로 동네 어귀 버스 승강장으로 나갔다. 8시 30분에 출발한다기에 서둘러 집안 일을 대충 마치고 동네 어귀에 나갔건만 시간이 지나며 호응을 기대
밖에는 스산한 늦가을 바람이 불고 있었다. 몇 잎 남은 퇴색된 단풍잎이 떨어져 뒹구는 오후 늦은 무렵 짧은 늦가을 해가 긴 저녁 그림자를 드리며 서녁 하늘을 붉게 물들일 때 그는 허허로운 눈빛으로 흐느적 거리며 그렇게 교도소 정문을 통과하여 몇 명의 피의자와 함께 구속되고 있었다. 그는 옆 마을에 사는 사람이었고 몇 일 전 사고가 났다는 주변의 얘기를 무심
감방에서 사형장까지의 거리는 그렇게 길지 않은것 같은데 그렇게 천천히 걷다보니 많은 시간이 걸리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인솔 직원들은 결코 서두르지 않고 그가 걷는 속도에 맞춰 함께 걷고 있었다. 그대로 가면 교무과나 의무과가 나오고 바로 왼쪽 샛길 끝으로 사형장 건물이 있었던 것이다. 이윽고 천천히 걷던 발길이 바로 왼쪽 샛길로 이어지는 지점에서 왔을 때
나는 다시 밖으로 나왔다. 사형집행은 몇 팀으로 짜여져 있었다. 사형수를 감방에서부터 인솔해 오는 팀과 길목에 배치되는 팀 그리고 형을 집행하는 팀으로 짜여져서 빈틈없이 그날 일정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사형수를 인솔하는 팀의 뒤를 따라 나섰다. 눈부신 햇살이 내리쬐는 초여름 한낮이었다. 구치소 내의 모든 소리들이 죽어 있었다. 감방 입구에서 들
오랜 취미로 바둑을 둔다. 기력이 대단한 것은 아니고 그저 좋아하고 즐길 뿐이다. 함께 대국할 좋은 맞수를 만나기는 힘들다. 예산에 와서 일하면서 바둑실력이 뛰어나고 인격이 훌륭하신 분들을 만나 더러 즐거운 시간을 갖기도 했다. 그러나 나의 바둑 사랑은 늘 대국할 상대를 목말라 했다. 심지어는 배우자가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하고 바란적도 있었다
우리는 지난날 식량부족으로 빈곤하게 생활 하던 시절, 쌀 절약운동의 일환책으로 보리 밀, 혼 분식 생활을 학교에서 교육을 통하여 실천해 왔었기에 오늘날의 경제 성장에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날로 발전하는 국가경제와 영농방식의 개선으로 쌀 생산량이 과잉되어 고심하는 농민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과 방침을 모색하여 실천하고 있는 현시점에 다음과 같은 쌀값 안
처음 생소하던 교도관 생활도 차츰 적응이 되고 동료직원들과도 안면을 익히면서 생활하니 벌써 여름이 다가오고 있었다. 감방 밖 화단의 여름꽃들이 피기 시작했었고 그 화단 속에 수많은 비둘기들도 깃을 다듬거나 끌거나 콩밥 부스러기 먹이 다툼을 하면서 그렇게 지내던 어느날 이었다. 갑자기 전 직원 비상 근무명령이 내려졌고 여러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근거리고
일전에 우리 청소년들이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이 아시아 꼴찌라는 보도를 들었다. 왜 이렇게 되었나? 하면서 토론회도 열리고 언론에서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러더니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그냥 잊혀져 버렸다. 흔히 얘기하는 냄비성향이 발동되었다가 그냥 사그라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보도를 보면서 실상 답답한 일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에 어른
우리 예산은 사과재배 면적이 156ha(전국 2만7000ha), 생산량은 3만2000M/T(전국 43만8000M/T)내외 전국 5위의 사과 주산단지로 사과농업은 지역경제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으며 국민들에게는 맛있는 사과를 제공해왔다. 그러나 근년들어 WTO협정이 진행되고 있는 한칠레간 FTA협정 등을 통해 사과산업은 위기를 맞고있어 과수산업은 노동력은 많이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서대문 형무소는 일찍이 조선 개국당시 무학대사가 훗날 수 천의 사람들이 괴로워할 곳으로 지명을 예언했던 곳으로 유명하며, 서대문 무학재 넘어가는 고개밑에 일제시대에 세워졌던 건물로 당시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갇혀 억울하게 고문과 박해와 죽음을 당했던 곳이다. 해방 이후로는 서대문 형무소로 개명되었고 박정희 대통령시대에 다시 서울 구치소로
사람은 무엇 때문에 사는가? 창밖에 내리는 가을비를 보면서 산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엊저녁 밤늦도록 후배는 자신이 살아온 지난 날의 삶을 이야기하다 끝내 울어버리고 돌아섰다. 전교조 때문이다. 지난 날 젊은 열정에 무조건 열심히 교육운동을 하면 이 세상이 달라질 거라고 굳게 믿었던 후배, 아이들에게 부정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 그 약속을 지키기 위
몇 년 전 일이다. 여름 장마비가 지루하게 내리던 저녁 무렵 두 모자가 절도 피의자가 되어 구속 수감되고 있었다. 교도소 쪽문이 열리고 인솔하는 경찰을 따라 보안과 사무실까지 오는 꾀죄죄한 옷차림으로 내리는 비를 다 맞으며 두 모자는 포승줄에 묶여 힘없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렇게 어미와 자식이 공범이 되어 들어오는 경우는 아주 드문 일이다. 예나 요즘이나
사람들은 눈물이 날때, 어째서 콧물도 함께 흐르는가? 찬물을 퍼 뿌린듯 숨소리 조차 들리지 않는 객석에서 눈물을 참는 듯, 훌쩍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관객들이 눈물샘을 그 예 짜고만 신파극 “울고넘는 박달재”는 30~40여년전 추석날 저녁 밀대방석, 멍석으로 둘러친 무대에서 벌렸던 옛날의 연극이 아니었다. 소시적 향수가 있는 무
마을 어귀에는 ‘고향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현수막이 어지럽게 걸리고 음식장만에 분주한 손길이며 밀리는 도로를 보노라니 추석명절이 실감난다. 나는 명절이라도 꼬박 집을 지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학생 시절 어렵사리 시골집을 찾던 기억 외에 추석에 관해 특별하게 말 할 것은 없다. 되레 새 양말 하나, 이런 저런 먹거리에 감사하며
예산군에는 무한천과 삽교천이라는 큰 하천 생태계가 있다. 그냥 지나치는 눈에는 두 하천은 참으로 보잘것없는 작은 하천이지만 여름에 비가 많이 오면 물이 불어 때로는 위협적이기도 하고 강태공들이 바로 다리 아래 앉아서 시간을 낚는 그런 곳이기도 하다. 조금 더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면 두 하천은 내포평야를 질러 서해로 들어가는 아직은 평화롭기 그지없는 하천이
한 국가의 치안을 책임지고 있는 경찰은 곧 그 나라의 민주화 정착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기억이 있다. 새삼스레 이러한 말을 되뇌는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의 치안 공권력이 권력의 틈바구니에서 책임있는 행동을 다 해오지 못해왔다는 사실을 기성세대들은 이미 알고 있던터이기 때문이다.최근 김강자 서장의 소신있는 치안정책에 박수갈채를 보내는 것도
올해로 네번째를 맞는 예당 호반 축제의 기술을 맡은 사람으로서 앞으로 좀더 멋있는, 참다운 지역문화의 장이 되길 바라며 몇가지 아쉬웠던 점을 짚어볼까 한다..먼저 주최측의 문제로 행사 진행요원들간의 상호 의사 소통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공연 전반의 흐름이 부드럽지 못하였던 점이다. A.D를 맡은 사람들이’ 거의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큰 행사에 경험이
흔히 묘자리나 집자리를 잡는데 쓰인다고 하는 풍수지리와 분단된 강토를 잇는 구체적 조치의 하나로 추진되는 경의선 철도의 복원이 무슨 연관이 있을까 의아해 할만하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풍수지리가 조상의 산소자리를 명당터에 잡아서 후손이 잘되고 집터자리를 잘 잡아서 식구들이 편안하게 되는 이기적인 이론이 있는가 하면, 한 왕조의 도읍을 정하고 국가 창업의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