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알까 쉬쉬’할 정도로 수입 좋았던 과수원한국인으로는 1922년 삽교 조경국씨, 처음 심어6.25직후 예농출신 중심 산밭일궈 과수붐 조성한세기 풍미… 2천년 목전에서 위기… 제2전성기를 꿈꾼다 ‘예산’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무엇인가고 물어보면 군내외를 막론하고 99%는 “사과”라고 답할 것이다. 사과가 예산을 빛내고 사과 역시 예산의 땅과 물을 만나 때
50년동안 37번 바뀐 관선군수… 평균수명 1년 3개월 보름1965년 18만이던 인구 지금은 불과 10만 5천여명… 감소세60, 70년대 새마을운동 중심 식량증산정책 ‘추억속으로’기억에 남는 군수 채규정, 이진봉, 이인화씨 등 거론“예산은 안돼” 패배의식 팽배… 21세기 희망주는 행정을예산군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살았던 시기는 언제일까?18만45명까지 인구
예산지역에서 예농의 의미는 무엇일까?많은 사람들이 “예산은 예농 때문에 발전했고, 또 예농 때문에 망했다”는 말을 한다. 그만큼 예농의 위치와 배출해낸 인물들의 사회적 중요성에 대한 왕성한 다른 표현일 것이다.예산군의 인구가 줄어들기 시작한 분기점도 예산농업전문대학이 공주대학교로 흡수통합되던 해인 1991년과 맞아떨어지고, 예산읍의 정중심에 공주대학교라는
예산군민들에게 20세기 예산의 역사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무엇인지 묻는다면 어떤 답이 가장 많이 나올까?각자의 관심분야에 따라 다르겠지만 아마도 예당저수지 축조가 으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산의 지도를 바꿔놓은 저수지 물막이 공사는 축조과정이 40-60년대 격동의 세월을 고스란히 안고 공사중단과 재개를 거듭하며 20여년만에 완공을 보게 된다.3차례
오전 10시. 한무리의 주부와 아이들이 차에 오른다. 빈자리를 찾아 두리번 거리다가 각자 자리를 찾아 앉자, 동방마트로 가는 33인승 셔틀버스, 좌석이 꽉 찬다.신례원을 벗어나면서부터는 논스톱. 50여분만에 목적지에 도착한 버스는 거대한 매장 입구에 사람들을 내려놓고 다음 차시간을 알리는것으로 쇼핑객들의 발걸음을 재촉한다.역전에서 탑승한 주부에게 “오늘은
무한정보신문사는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예산상권 만족도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1백68명(여자 102명 남자 66명)을 대상으로 한 이번 설문조사는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 윤준상교수의 자문을 받아 10개문항을 질문지법에 의해 조사, SPSS 프로그램으로 통계분석처리했다. 예산읍내 상권의 주 소비층으로 일컬어
지난해 게릴라성 집중호우로 군내에는 주택13동이 파손되는 등 총86억4천6백만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지형적인 폭우로 덕산지역의 와룡천과 대치천 주변 피해가 집중됐으며 군내 곳곳의 상습 침수지역의 피해가 매년 반복됐다. 또한 홍수조절 능력을 갖추지 못한 예당저수지로 인한 무한천 주변과 삽교천 만수위에 따른 삽교천 주변이 상습침수지역으로 범람 위협에 주민
본사는 창간1주년을 맞아 독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전체독자중 지역별로 구분, 3백명의 설문대상자를 표본추출해 실시한 전화여론조사는 지난 1일부터 8일까지 이루어졌는데 가독시간과 내용에 관한 의견, 제호에 대한 이미지를 중심으로 8문항에 관한 독자들의 의견을 취합, 앞으로의 신문제작에 좋은 자료로 활용될 계획이다. 설문분석결과를 간단하게 살펴보
6.4 지방선거 실시-민선2기 출항지난 6월 4일 민선2기 지방선거가 총유권자 7만7천89명중 4만8천5백78명이 투표에 참가, 권오창군수가 민선1기에 이어 재당선됐다. 민선2기를 출항시킨 권 군수는 한도원 국민회의 후보와 박종순한나라당 후보에 비해 2만4천40표의 높은 득표율로 당선됐다. 충남도의회 예산군1투표구에서는 이한식 후보가 김인태 후보를 제치고
1) 들어가는 글- 관광예산 그 무한한 가능성2) 천혜의 관광지와 개발현황(덕산) 3) ‘무형관광재’총점검4) 대표적인 농업지역이라는데…(농업의 관광화)5) 글을 마치며- 익숙한 것들에 새로운 가치를 6) 관계자 초청 좌담회내포 역사·문화자원의 보고풍성한 볼거리 연계 안돼 관광객 놓쳐 일선 기관내 정보센터 등 전담화 시급가야산, 덕숭산 도립공원과 그 안의
11만 예산군민에게 같은 질문을 던졌을 때 가장 많은 응답은 무엇일까? “글쎄요.”충절의 고장, 사과의 고장, 추사의 고장, 매헌의 고장…. 숱한 수식어들을 선뜻 내세우지 못하는 것은 예산을 이미지화하는데 일관되고 지속적인 작업이 없었던 때문, 그래서 우리 스스로도 현실적인 설득력을 갖지 못하는 데서 연유하는 것이리라.그러나 무책임한 자기부정 끝에 “예산은
본사 창간 기념 좌담회 “매헌정신, 예산의 얼로” “보다 가까이” 살아있는 청년정신“만일 너희도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반드시 조선을 위해 투사가 되어라.태국의 깃발을 높이 드날리고나의 빈 무덤 앞에 찾아와 한 잔 술을 부어라…”거사에 앞서 윤봉길의사가 가족에게 남긴 편지 글의 일부이다. 당신의 희생도 부족해 자식에게까지 투사가 되라고 유언과 다름없는 글을
누가 그랬던가요? 4월은 잔인한 달이라고.여기 예산의 4월은 ‘희망’입니다.국가가 경제위기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어도 개나리며 목련이 환한 얼굴로 세상을 밝히고 진달래는 온 산에 불을 놓았습니다. 무엇보다 위기를 기회로 이용할 줄 아는 지혜로운 국민이 있고, 충청도 예산땅에선 군민들에게 밝은 혜안을 제시 할 무한정보신문이 창간 됩니다.
1991년 예산엔 임성로(본정통) 상가로 정비에 한창이었습니다. 또한 이제 막 아파트 붐이 일고있었습니다.무한정보신문은 1991년 8월 15일 ‘오일장’이란 이름으로 첫 소식을 전했습니다.“오일장은 여러분과 함께 있을때만 그 가치가 있고 진정으로 필요한 신문이 될 것입니다.”-1991년 10월 25일 창간의 다짐 중에서-1992년 6월 5일. ‘오일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