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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산 넘어 소 팔러 다니던 길<2021년 새해특집> 대술 이티2리 소고리 “숯장수, 나무장수 다 머그네미 고개로”
  • 김동근 기자  dk1hero@yesm.kr
  • 승인 2021.01.11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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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한 기운을 품은 신축년 새해가 밝았다.

‘소(牛)’는 전통적으로 우직함과 성실함, 희생과 풍요를 의미했다. ‘고집이 세다’는 다소 부정적인 이미지도 띄고 있지만, 전형적인 농경사회에서 쟁기질과 방아, 우마차 등 가족을 먹여 살린 농사일을 돕는 유일한 가축이자 부(富)를 상징하는 중요한 자산이었다.

시골에 사는 부모들이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에도 어떡해서든 자식들은 공부를 시키기 위해, 어찌 보면 유일한 재산인 소를 팔아 대학등록금을 마련하면서 ‘우골탑(牛骨塔)’이라는 말도 만들어졌다.

우리민족은 소를 아끼고 보살펴야 집안과 마을이 평안하며 번창한다고 믿었다. 이 같은 생활모습과 문화적 특징은 지명(地名)에 고스란히 남았다. 여기에 더해 코뚜레, 멍에, 바리, 구유, 길마, 가마 등 소와 관련한 농기구가 51곳이나 등장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국토지리정보원이 ‘흰 소띠해’를 맞아 전국적으로 고시지명(‘공간정보관리법’상 국가지명위원회가 결정한 지명)을 분석해 발표했다. 그 결과 소는 군내 4곳(대술 이티2리, 광시 서초정2리, 신양 여래미·시왕리)을 포함해 모두 731개로, 용(1261개)과 말(744개)에 이어 세 번째로 많았다. 종류별로는 마을(566개, 77.4%)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으며, 섬(55개, 7.5%)과 산(53개, 7.2%)이 뒤를 이었다.

대표적인 장소는 동학농민운동으로 익숙한 공주시 ‘우금치(牛禁峙)’. 동학군이 관군과 맞서 싸우다 패한 이 고개는 소도둑이 많아 해가 저물었을 때 소를 끌고 넘어가면 도둑들에게 빼앗겨 ‘장을 보고 돌아가는 사람들이 피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름이 붙었다는 설명이다.

우리지역은 어떨까? 대술 이티2리 ‘소거리(소고리)’가 대를 이어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품고 있다.

 

하늘에서 내려본 ‘소거리(소고리)’ 마을. ⓒ 다음지도

대술면지를 보면 이곳은 ‘누워 있는 소가 우는 형국’이어서 우명리(牛鳴里), 우명동(牛鳴洞)이라 불렀다. 이는 입향조로 알려진 전주이씨 족보와 ‘여지도서’가 기록한 지명이다. 또 마을(뒷산)이 ‘와우형(臥牛形, 소가 누워있는 모양)’이고, 뒷산에서 마을 어귀로 뻗은 지맥이 소꼬리를 연상시켜 소꼬리→소고리→소거리로 변했다고 한다. 동네 우물 앞을 지나던 스님이 지세를 훑어보더니 ‘우명동은 소가 울어 장차 마을에 해로우니 이름을 바꾸는 것이 좋다’고 귀띔해 소거리로 개칭했다는 설화도 내려온다.

그 옛날 소거리와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머그네미)를 잇는 ‘머그네미 고개’는 예산장을 보러 가는 길목이었다. 5일장이 되면 장돌뱅이와 두 지역 주민들의 왕래가 끊이지 않았다. 국토지리정보원은 소장수들이 이곳에서 소를 놓아 쉬어 갔다 해 소거리(소고리)로 이름붙여졌다고 설명했다.

예전에는 30여 가구가 모여 살던 제법 큰 마을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서낭나무에 근처에 있던 입석도 도로를 내느라 사라지고, 대여섯 가구에 노부부 10여명만 남았다.

 

이정길 어르신이 ‘오지작(머그네미) 고개’를 가리키며 옛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 무한정보신문

소거리에서 나고 자라 터를 잡고 ‘80년 인생’을 보낸 이정길(80) 어르신이 60~70여년 전 기억을 생생하게 떠올렸다. 비록 구술이지만 마을사를 기록하는 산증인이다. 그는 “내가 어렸을 적에는 오지작(머그네미) 고개가 큰길이었고 유명했다. 예산사람들과 공주사람들이 예산장, 신양장, 공주장, 유구장 등을 보러 많이 오갔다. 소장수들은 해가 저물면 소를 묶어놓고 하룻밤을 묵기도 했다. 장작을 땔 때기 때문에 이들뿐 아니라 숯장수, 나무장수 다 여기로 다녔다”고 회상했다.

 

‘소의 눈’ 닮아 우목이
 
서초화 피는 샘, 광시 서초정2리
 
‘우목이’ 마을 둘레로 산이 감싸고 있다. ⓒ 다음지도
광시면지 등에 따르면 서초정2리는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마을이 ‘소의 눈’ 같이 생겨 ‘우목리(牛目里, 우목이, 우묵이, 우메기)’로 부른다.
 
지명인 서초정(瑞草井)은 우목이에 선계의 꽃 서초화(瑞草花)가 피는 샘이 있어 이름지었다. 서초(瑞草)는 궁궐 등에 새겨진 ‘상서로운 풀’이다. 이 샘은 사계절 많은 물이 솟아나고, 5정보(1만5000여평)의 논물을 댈 수 있을 정도로 수량이 풍부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또 샘물로 목욕하면 집안이 다복해지고 부스럼이 나지 않아 칠월칠석에는 용왕제를 지내 마을의 무사태평을 기원했다고 한다.
 
 
상서로운 ‘서초정’ 샘터는 원통형시멘트 틀이 자리를 잡았다. ⓒ 무한정보신문
서초정은 지난 1980년대 초까지 옛 모습을 간직해 왔지만, 안타깝게도 이후 농지정리를 하는 과정에서 훼손돼 그 자리에 시멘트로 만든 원통형 틀을 얹어 놓았다. 김홍채 이장은 “우리마을은 서초정1리와 장전리 등 인근 지역에서 우메기, 우목이로 통한다”며 “서초정은 여전히 가물 때도 샘물이 마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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