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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선은 어디로 갔을까?<예당의 기억> 저수지 누빈 배목수 87세 김봉산
  • 발행인 박봉서  yes@yesm.kr
  • 승인 2020.11.23 10:49
  • 댓글 2
광시면 장전리, 옛날 좌대와 목선이 있는 풍경(1980년대 후반, 사진 신현성).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당저수지를 몇 번이고 돌아봤지만, 만나지 못했다.

그 배는 모두 어디로 갔을까?

“봉산이허구 종길이가 맹글었지. 현종길이는 세상을 뜨구, 봉산이도 지금은 몸이 성하진 않지? 그러구 배 맹그넌 이가…”

박규진(89, 대흥 송지대야리 도덕골) 어르신이 힘겹게 떠올린 이름이다.

“지금 목선 그런 거 맹글 게 뭐 있어. 다 프라스틱으로 배꼈지. 지금 프라스틱배 좋아. 아주 좋아, 개볍구 ”

박 어르신은 평생을 예당저수지에서 고기잡이 일을 해 왔지만 지금은 건강이 좋지 않아 어업권도 딸 부부에게 넘겨주고 일을 그만 둔지 몇 해가 됐다.

1964년 예당저수지가 완공되고 고향을 지켜온 사람들 중 일부는 고기잡이나 낚시객을 상대로 생업을 이어왔다.

모양과 재료는 달라졌지만 그들에게 배는 예당저수지고, 물이 곧 밥이다.

박 어르신의 기억에 따르면 예당저수지에서 배를 만들던 목수는 모두 세 분이다. 그중 작고하신 박승세(대흥 동서리)씨와, 현종길(도덕골)씨를 빼면 김봉산(대야리) 어르신이 유일하게 살아계신다.

 

김봉산 옹이 배를 만들때 사용하던 연장을 꺼내 보여주고 있다(오른쪽). ⓒ 무한정보신문

대흥 대야리 회관 옆, 예당저수지가 내려다 보이는 김봉산 어르신(87) 댁을 찾았다.

“아버지 어깨 너머로 배우다 스무살 넘어서부터 (목수일을) 했지. 여기가 고향이여. 배 만드는 건 수리조합 생기구 나서부터 시작했어. 이 근방하고, 딴 데 쓸 데 있으면 오라고 해서 하고 그랬지”

예당저수지에서 사용된 배는 1990년을 전후로 목선에서 철선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모두 섬유강화플라스틱(FRP)이 라는 재료로 만들어진다.

마지막으로 배를 만든게 언제였는지 묻자, 대답 대신 웃는다. 김 어르신은 청력이 약해져 보청기에 의지해 대화를 하지만 그마저도 놓치면 그냥 웃는다.

보다 못한 아내 김흥분 어르신이 “한 삼십년은 됐지”라며 거든다.

“아버지가 하던 연장 있으니께, 내려오메 그놈을 썼지. 그전엔 전부 나무로다 해갖고 맹글었거든. 무슨 돈이 있어갖고 쇠를 대여. 광시 장전리, 응봉같은 데 다니며 맹글었지”

“나무가 나왕이라고 좋은 거거든. 다섯치(대략 15㎝)짜리, 요만해가지구서. 읍내 대영목재에서 사다가 그놈을 톱으로 이만하게 만들어놓으면 거기다가 싹, 가운델 해갖고서 우로 붙이면 이렇게 가다(肩:일본어-모양)가 좋거든. 위는 좁게 반을 얹히고 대고서, 하나 다섯치짜리 붙은 거 해갖고 못으로 박었어. 거기는 붙이는데, 앞뒤로 오려내야지. 둘러갖고 앞은 더 오려내고”

배의 크기는 대략 3미터60센치로, 폭 15센치 길이의 나왕 판재를 이어붙여 배의 몸통을 만들었다. 앞뒤는 몸통보다 좁고 그 끝은 사람이 앉을 수 있게 판재를 댔다.

일을 돕는 사람 한둘을 붙이면 하루 만에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물에 띄우기까지는 며칠이 더 걸린다. 배 바닥에 콜타르(coal-tar)를 녹여 바르는 방수작업까지 마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만들어진 배는 알뜰히 쓰면 5~6년은 탈 수 있었다고 한다.

“배 한 척 만들면 쌀 몇 짝 값 했을겨 아마. 지금은 쇠로 해가지고, 발동기 놔갖고 댕기더먼”

“이제까지 만든 배 셀 수 있간요? 한 50개는 될 테지. (그거 만드는 사람이) 하나 둘이었간. 우리네가 하는 게 그중 나섰었는디…”

배 만드는 일은 생계를 이을 만한 일은 못됐다. 농사도 짓고 상여도 만들었다. 도면 따위 그려가며 해 온 일이 아니다. 그저 필요해서 만들어 쓴 물건일뿐. 그 누구도 특별한 기술이라 여기지 않았다.

“여기 그전에 (배) 맹근 게 있었거든. 괴기 잡느라고 여기저기서. 그걸 보고서 더 낫게, 가다가 좋게(모양이 좋게), 잘나가고 그러게끔 맹그는 거지. 잘못 만들면 노 저어서 가는 게 무겁기도 하댜”

“배 만들 때 썼던 연장?”

붉은 녹을 버즘처럼 얹은 톱 한자루 컴컴한 헛간 천장에 매달려 있다.

김 어르신은 바닥에 놓인 플라스틱 상자에서 자루만 남은 끌, 망치 따위를 찾아 마당에 늘어 놓는다. 한때 단단했던 기억을 아주 잊은 듯 가을 햇살아래 순하게 누웠다.

쓰임새가 사라지고 나면 그 기억 또한 잊혀지는 게 당연한 일.

수면을 꾹꾹 누르며 저어가던 배도, 그 배를 만들던 사람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져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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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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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경수 2020-12-20 05:06:51

    어릴 적 예당저수지 끝자락 물 옆에 살면서 젤 갖고 싶었던 게 '노'였어요
    어른들이 배를 타고 와서 말뚝을 단단하게 박아놓고는 노만 뚝 떼어 메고 가버려서 말뚝은 뽑아도 저어 갈 수가 없었거든요!
    그 배를 만들었던 분이 강 건너 마을에 사셨단 걸 이제야 알게 됐네요.
    좋은 기사입니다.   삭제

    • 심신부 2020-11-25 11:05:22

      그 배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요? 좋은 기사 감사합니다.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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