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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친절의 양은 얼마나 되어야 상대방이 만족할까?
  • 박언서 <예산읍 예산리>  yes@yesm.kr
  • 승인 2019.12.1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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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전화를 거는 일 보다 받는 일이 더 많다.

사무실에 출근하면 하루 종일 전화를 받고 방문하는 민원을 상담한다.

어찌 보면 감정 노동자라 말해도 맞을 것 같다. 물론 하루 종일 전화만 받는 일은 아니다. 때로는 출장을 나가서 상담하고 전화도 받고 점검도 하고 다양한 일을 접하지만 내가 하는 행동이 과연 상대방은 친절하다고 느끼고 있는지 아니면 불쾌해도 공무원이라서 참고 있는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나는 누가 알아주기를 바라며 하는 일은 아니지만 항상 최선을 다해 친절하려 노력하고 있다.

또한 나도 사람인지라 모든 사람에게 무조건 친절할 수 없다.

때로는 기분이 나쁘고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그렇지만 내 직업이나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참아야 하는 경우가 있어 감정을 추스르려 노력한다.

과연 친절이란 그 양으로 따지면 얼마나 되어야 상대방이 만족을 할까?

답은 “한도 끝도 없다.”이다.

지난번 글에서도 언급했듯이 내가 생각하는 친절과 상대방이 생각하는 친절은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친절이란 유명한 맛 집이라 논한다.

맛 집이란 내 입맛에 맞으면 맛있다고 하고 내 입맛에 맞지 않으면 맛이 없다고 표현한다. 음식점이란 10명이 음식을 먹고 그 중 5명만 맛있다고 하면 성공한 것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손님의 입맛은 천차만별이고 간사해 맞추기가 어렵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의 성격 또한 간사한 입맛과 다를 바가 없다.

음식이란 똑같은 재료와 똑같은 사람이 조리를 해도 온도나 재료의 상태 등 여러가지 복합적인 원인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확률이 높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똑같은 법을 똑같이 설명을 해도 상대방은 그 날의 기분이나 주변 여건 그리고 대화의 태도와 말투 등 시시 때때로 변화하는 여건에 따라 대화가 좋을 수 도 불쾌할 수 도 있게 마련이다.

우리는 항상 친절은 생활화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때로는 직장에서 친절 강사를 초빙하여 교육도 받고 연중 전화 친절도 조사와 함께 그 결과를 평가 한다. 하지만 불합리한 점이 다소 있을 수 있다. 평가라는 것이 모든 기준에 부합되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전화를 걸어 엉뚱한 질문이나 담당자가 아닌데도 세부적인 질문 등 일부 불친절을 유도하는 질문과 업무와 관련이 없는 질문을 한다. 물론 누구나 본인이 알고 있는 범위라면 최선을 다하여 대답을 하려 하지만 이 또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루 종일 그런 의문에 전화만 받은 사람이라면 하루 종일 친절할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우리 주변에서는 그래도 친절해야 한다고 말한다.

친절하기 위해서는 내 영혼은 뒤로하고 오롯이 상대방의 영혼을 존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상담이나 대화에서 상대방이 기분 나쁘게 느끼는 순간부터 나는 이유 불문하고 불친절한 사람으로 낙인이 찍힌다. 소수이지만 먼저 화를 내며 이런 약점을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이제 일상화가 되었다. 과정보다는 결과만으로 친절과 불친절을 판단하다 보니 민원인과 부딪치고 싸워봐야 득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민원인들은 어떠한 사안에 대하여 법이나 규정을 본인이 유리한 부분만 인용하고 해석하여 공격적으로 말한다. 이런 경우에는 설명할 여유도 없다. 본인의 주장이 받아드려지지 않으면 불친절이라는 굴레를 씌워 윗사람을 찾고 더 심하면 청와대나 감사원 등에 진정하는 등 목적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60년대까지는 공무원이 갑이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이제 공무원이 을이고 민원인이 갑인 시대가 되었다. 이런 시대가 지극히 정상적인 시대이긴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뭔가 마땅치 못하다.

나는 오늘도 친절을 위해 나를 내려놓을 준비가 되어 있다.

친절하기 위해 고개를 숙인다고 나의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친절함으로서 세상 다른 사람들이 편안할 수 있다면 난 언제든지 고개를 숙일 수 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사주팔자에도 없는 직업으로 삶을 살아가는 일이 정신적 육체적으로 고난의 길이었지만 그래도 30여년을 이어오다 보니 지금은 내 몸에 일부가 되어버렸다.

친절은 상대방을 위한 것인지 나를 위한 것인지 명확하게 구분하기 어렵다.

다만, 나를 한 번이라도 만나 본 사람이라면 기분 좋게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되는 그런 사람으로 남고 싶은 마음이다.

친절은 그저 부족하지도 넘치지도 않고 시기적절하게 주고받아야 하는 서로의 배려인 동시에 무언의 약속인 것이다.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영혼이 없는 삶이 아니라 나 보다는 상대방의 영혼을 존중하고자 노력할 뿐이다.

내가 항상 마음에 새기며 매년 업무수첩 첫 장에 써 놓은 글 중 논어에서 공자는 군자불기(君子不器)라 하였다. 직역을 하면 군자는 그릇이 아니라는 뜻으로, 군자는 한 가지만 정통하고 용납하는 사람이 아니라 다양함을 받아들이고 다양한 분야에 식견을 갖춘 사람이라고 정의한다.
그릇은 만들어진 용도에 합당한 것만 담을 뿐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기 때문에, 군자는 어느 한 가지만 수용하는 그릇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렇듯 친절 또한 틀에 박힌 공식이 있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이나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마음 자세가 바로 친절이라 생각한다.

물론 나는 학식이 높고 행실이 어진 군자는 아니지만 누구에게나 편안하게 어울릴 수 있는 친절한 사람이고 싶다. 멋지고 아름다운 석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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