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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무진(谿山無盡) ②<추사 김정희, 그 낯섦과 들춤 사이>
  • 노재준 <서예가, 예산고 교사>  yes@yesm.kr
  • 승인 2019.12.02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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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1) 추사 글씨 <계산무진>.

먼저 <계산무진>(도1)의 의미와 소장자의 이동을 살펴보겠다. <계산무진>을 그대로 풀어보면 ‘계산은 끝이 없다’라는 의미이다. ‘계산(谿山)’은 시내와 산 즉 자연의 대유적 표현이다. 계산은 고전문학에서 자주 등장하는 강산(江山), 강호(江湖), 산수(山水), 산림(山林), 임천(林泉), 풍월(風月) 등과 함께 자연이란 대유적 의미로 쓸 수 있는 말이다. <계산무진>은 ‘강산무진(江山無盡)’과 같은 의미로 볼 수 있다. 이런 종류의 그림을 ‘강산무진도(江山無盡圖)’라고 할 수 있는데 ‘계산무진도(谿山無盡圖)’와 다르지 않다. ‘계산무진도’라는 말은 우리보다는 오히려 중국에서 더 많이 쓰는 이름이다.


<계산무진>의 소장

또한 ‘계산’은 당시 안동 김씨 세도가였던 김수근(金洙根, 1798~1854)일 수도 있다. 김수근의 호는 ‘계산’, ‘계산초로(谿山樵老)’이다. 그렇기에 이 <계산무진>은 추사가 김수근에게 써 준 것으로 전해내려 오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추사는 중의적으로 참 절묘하게 언어를 구사하는 재치도 있는 인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예로 <여균사청(如筠斯淸)>이 있다. 이 <여균사청>은 그간 탁본이나 목각으로만 전해왔는데, 나는 친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친필의 사진을 앞의 연재에서 소개한 바 있다. 이 <여균사청>은 ‘맑기가 대나무와 같다’는 뜻도 되지만 ‘여균이 이처럼 맑다’라는 의미로도 가능하다. 그렇다면 추사는 ‘여균’의 인품을 칭찬하고 있는 것이다. ‘여균’은 추사가 북청에서 만난 김여균(金如筠)을 말한다. 추사는 김여균에게 행서 명작 <석노시(石?詩)>를 써 준 바도 있다. 이 또한 이중적인 의미로 추사의 어법이다.

(도2) <계산무진> 글씨의 오른쪽 밑에 찍혀있는 ‘김용진가진장’ 인장.

이 <계산무진>은 김수근에게 써 준 것이라고 했다. 이는 <계산무진> 글씨의 오른쪽 밑에 찍혀있는 ‘김용진가진장(金容鎭家珍藏)’이라는 인장(도2)이 입증하고 있다. 김용진(金容鎭, 1882~1968)이 소장하고 있을 때 찍은 인장이다. 김용진이 소장한 서화에 이 인장이 많이 찍혀 있다. 김용진은 호가 영운(穎雲)·구룡산인(九龍山人)으로 글씨와 그림에 능했고 서화수장가이기도 했다. 지난 1990년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김용진 회고전이 열린 바 있다.

김용진의 가계를 보자. 김용진은 김흥규(金興圭)의 아들로 김정규(金貞圭)의 양자로 들어갔다. 양조부는 김병국(金炳國, 1825∼1905)이다. 안동김씨 세도의 중심인물로 영의정을 지냈다. 김병국의 동생 역시 영의정을 지낸 김병학(金炳學)이고 아버지가 김수근이다. 김용진은 김수근의 증손자가 된다. ‘김용진가진장’ 인장이 찍혀 있는 이유다. 분명한 내력이 있는 글씨가 바로 <계산무진>이다.

추사 작품에 대한 최초 전시는 ‘완당 김정희 선생 유묵유품 전람회’이다. 1932년 경성 미쓰코시갤러리에서 열렸다. 이때는 김용진이 소장하고 있었다. 어떤 이유에선지 <계산무진>은 김용진 생전에 그의 품을 떠난다. 24년 후 1956년 국립박물관(현재의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완당 김정희 선생 100주기 추념 유작전람회’에서는 간송 전형필의 소장으로 전시되었다. 그래서 현재 소장처는 간송미술문화재단이다.


<계산무진>의 인장

(도3) <계산무진>에 찍은 ‘김정희인’ 인장.

추사는 김수근을 위해 <계산무진> 네 자만 쓰고 관지는 특별히 하지 않고 인장만 찍어 마무리했다. 쌍관(雙款)이라도 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인장도 아호인은 찍지 않고 성명인 ‘김정희인(金正喜印)’(도3)만을 찍었다. <계산무진>은 현재 추사의 작품이 아니라는 억울한 소리를 들으면서 부분부분 박락이 진행되고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에서도 다행히 ‘김정희인’ 인장 상태는 온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이 ‘김정희인’ 인장은 추사가 사용한 분명한 인장이다.

(도4) ‘소산작’이라는 측관이 있는 추사 인장 ‘김정희인’과 ‘완당’.

추사 당시에는 지금처럼 측관(側款)이 일반화되지 않았기에 추사의 인장 중 누가 새겼는지 정확히 알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계산무진>의 ‘김정희인’은 누가 새겼는지 분명히 알 수 있는 소중한 인장이다. 이 인장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소산작(小山作)’(도4)이라고 측관이 되어 있다. 바로 소산(小山) 오규일(吳圭一)이 새긴 것이다. 오규일은 김석경(金石經)과 한응기(韓應耆)와 함께 추사의 전각 제자이다. 오규일의 아버지는 추사와 가깝게 지낸 대산(大山) 오창렬(吳昌烈))이다.

   
 

오규일은 추사의 유명한 난초 그림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불이선란도>의 화제 “吳小山見而豪奪可笑(오소산견이호탈가소)”의 ‘오소산’이다. <불이선란도>는 추사가 처음에는 달준이라는 묵동에게 그려준 것인데, 소산 오규일이 빼앗아 가 결국 <불이선란도>를 품에 안았다. 오규일은 참으로 눈이 밝은 사람이다. 이 <계산무진>에 찍혀있는 ‘김정희인(金正喜印)’ 인장은 바로 이 오규일이 새긴 인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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