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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만리(九萬里)와 구만포(九萬浦)<발길따라 예산>
  • 이병우 객원기자  bounjw@hanmail.net
  • 승인 2019.10.07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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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 구만리는 후미지에 있는 길지(吉地), 즉 명당터라는 의미다. 전해 오는 일설에는 중국의 정치에 골몰하던 풍수사상가가 안락한 휴식처를 찾아 헤매다 이 곳을 택했다 전해진다.

구만리의 포구 구만포는 삽교천 중류에서 조선시대 내포의 수륙교통 요지로 쌀을 포함한 농작물을 서울로 수송하고 새우젓, 소금 등 해산물을 실어오는 배들이 선착된 포구로 번성했던 곳이다. 1979년 삽교천방조제가 축조돼 구만리 일대에 들어 오던 갯물은 끊기고, 간척지로 예산 황금쌀의 주산지가 돼 있다.

 

구만포정. ⓒ 무한정보신문

새우젓 배가 드나들던 시절은 옛 이야기가 돼 있으나 구만포의 흔적은 작은 정자로나마 남아 있다.

조선후기 1868년 독일상인 오페르트가 통상압력의 수단으로 덕산에 위치한 대원군 아버지 남연군 묘를 도굴키 위해 상선을 정박한 곳도 이 곳 구만포다.

삽교천방조제가 막히지 않고 지금도 갯물이 들어 와 배가 드나드는 기분 좋은 상상을 하면서 구만포의 뚝방길을 걸을 수 있다.

 

구만포구 터. ⓒ 무한정보신문

하지만 돗대의 상징물인 듯한 기둥 몇 개, 뚝 위에 낡은 정자와 변색된 안내판, 무성한 잡초 속에 나 뒹구는 작은 두 척의 합성수지 폐선, 못내 아쉽고 초라하다. 구만포 터를 찾아 가는 길도 묻지 않으면 난감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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