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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학살 희생자 이강세·김숙제 유해 식별유전자감식 신원확인 최초… 유족들 “기쁘다“
  • 심규상 기자  sim041@paran.com
  • 승인 2019.07.18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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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기쁩니다.”

한국전쟁 당시 군경이 집단 학살한 민간인 2명에 대해 처음으로 유전자 감식 신원 확인을 성공했다. 

그동안 민간인 집단 희생자의 경우, 최소 수십 명이 한꺼번에 암매장돼 유해별로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희생자 유해발굴 공동조사단(아래 공동조사단)’은 지난 2016년 2월 광천읍 오서산 기슭 폐금광 유해발굴을 실시했다. 그 과정에서 발굴된 21구의 유해에 대해 유전자 감식을 의뢰했고 이중 2명의 신원이 확인됐다.
 

이종민씨 부친 이강세(왼쪽 위)가 1944년(당시 36) 가족들과 찍은 사진. 품에 안긴 갓난아이가 다섯째 딸이고, 오른쪽 옆이 그의 아내와 형제들이다. 아래 오른쪽부터 어머니 홍씨와 네 명의 딸이다. ⓒ 무한정보신문

1950년 오서산 기슭 폐금광에서 부친(고 이강세)을 잃은 이종민씨는 유전자형이 87%(검사 15항목 중 13항목)가 일치한다는 판정을 받았다. 같은 곳에서 희생된 부친(고 김숙제)을 잃은 김동규씨도 일부 유해와 유전자형이 70%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DNA 감식결과는 상염색체의 유전자형이 99.99% 일치해야 법적으로 친자관계가 성립된다.

하지만 유전자 감식 전문기관인 서울 휴먼패스는 두 사람의 경우 뒤섞여 있는 수십 명의 유해 중에서 70% 이상 유전자형이 일치해 사실상 친자 관계가 인정된다고 보고, 동일부계 혈족으로 판단, 지난 5월 말 유족들에게 알렸다.

민간인 희생자 유족인 김동규씨는 자신의 아버지 사진을 보며 “당시 추석 명절에 광천을 찾았다가 억울하게 돌아가셨다”고 울먹였다.

이종민씨의 부친인 이강세는 일제강점기 말기 독립운동을 하는 ‘가야비밀동지회’에 가입해 활동했다.

해방 직후 홍성군 농민조합장으로 선출돼 친일파인 당시 홍성군수를 응징하는 일을 주도했다. 홍성농민조합에서 정치투쟁을 벌이기도 했는데 이 일로 보도연맹에 가입, 선전부장을 맡았다.
보도연맹은 1949년 좌익계 인물들을 전향시켜 보호한다는 취지로 조직됐다. ‘북한 정권 반대’와 ‘공산주의 배격’이 단체 주요 강령이었다.

하지만 전쟁이 나자 이승만 정부는 북한에 동조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보도연맹원을 총살했다. 이강세도 이때 끌려가 담산리 폐금광에서 살해됐다.

당시 19세였던 이강세의 큰 딸도 몇 달 뒤 인민군에게 밥을 해 주는 등 부역을 한 혐의(특별조치령 위반)로 경찰에 끌려갔고, 7년간 옥살이를 한 뒤 1957년에서야 출소했다.

김동규씨의 부친인 김숙제는 광천읍 내죽리 출신으로 서울 세브란스 병원 의사로 근무하던 중 추석 명절 고향에 내려왔다가 담산리에서 총살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씨는 “아버지 유해를 찾게 돼 기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제가 살아가는 이유가, 아버지 혼이 찾아오면 저라도 맞아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며 “희생된 21분이 모두 제 아버지라고 생각하고 모든 분의 넋을 위로하는 일을 꾸준히 벌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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