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여백
HOME 독자마당투고
겨울
  • 박연상 <출향인, 서울 거주>  yes@yesm.kr
  • 승인 2019.02.12 16:37
  • 댓글 0

이번 겨울에는 눈이 너무 안 내린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서울에는 지난해 11월 말에 첫눈답지 않은 함박눈이 펑펑 내려 쌓였던 것을 빼고는 눈다운 눈이 내린 적이 없는 것 같다. 다른 곳도 강원도 같은 일부 산간지역을 제외하고는 비슷한 상황으로 겨울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인 1960~1970년대에는 겨울이 지금보다 훨씬 더 추웠다. 기온이 영하 1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도 많았고 눈도 아주 많이 내렸다. 어느 날인가는 밤새도록 눈이 왔는데 바람 한 점 없어서 곱게 내려쌓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방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온 세상이 하얀 눈 천지였다. 눈이 얼마나 곱게 내렸는지 아주 가느다란 나뭇가지에도 그 모양 그대로 소복이 쌓여서 나무 하나하나, 풀 하나하나가 모두 하얗게 옷을 갈아입고 그림 같은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 광경을 보신 아버지도 “야~, 눈 참 멋있게 왔구나!” 하고 감탄을 하셨다.  

그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 아침에는 식구들이 옷을 두툼하게 입고 털모자를 쓰고 털장갑을 낀 다음 빗자루를 들고 눈을 쓸었다. 우리 집의 안마당부터 눈을 쓸기 시작해서 대문 밖의 골목길까지 좌우로 비질을 하여 길을 내면서 양 옆으로 눈을 치워놓았다. 눈이 너무 많이 내려서 빗자루로 감당이 안 될 때는 긴 자루가 달린 넉가래로 밀어서 눈을 치우곤 했다.

한낮이 되면 나는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눈을 뭉쳐서 눈싸움도 하고 눈뭉치를 크게 굴려서 눈사람을 만들기도 했다. 또 언젠가는 양은 대야에 눈을 퍼 담아서 단단하게 다져 넣고 그걸 엎어서 벽돌처럼 차곡차곡 쌓아올려 에스키모의 이글루 모양으로 눈으로 집을 만들어놓고 그 안에 들어가서 놀기도 했다.

지붕에 쌓인 눈이 녹아서 흘러내리다가 다시 얼면서 기다란 고드름이 생기곤 했는데 아이들은 지붕의 골마다 줄줄이 길게 매달린 고드름을 따서 손에 쥐고 서로 칼처럼 부딪치며 놀았다.

썰매타기 또한 겨울에 빼놓을 수 없는 놀이였는데 우리 집에는 아버지가 만들어주신 튼튼한 나무썰매가 있었다. 오빠와 나는 우리 집 우물가의 감나무 옆에 있는 밭에 쌓인 눈을 다져서 얼려놓고 거기서 썰매를 타기도 했고, 향천사 가까이에 있는 논에 물을 대서 얼려놓은 곳에 가서 타기도 했다. 삽티 공원의 연못이 얼면 거기에 가서 썰매를 탄 적도 있었다.

그 옛날의 집들은 단열이 잘 안돼서 겨울이면 몹시 추웠다. 아궁이에 연탄불을 피우고 또 다른 아궁이에 장작불로 군불을 때기도 했지만 아랫목만 뜨겁고 윗목으로 갈수록 온기가 줄어들어서 방안 공기가 썰렁했다. 조금이라도 보온을 하려고 아랫목에 덮어놓은 요를 들춰보면 방바닥에는 까맣게 탄 자리가 있었다. 기온이 더 내려가는 밤에는 웃풍이 심해서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어쓰고 잠이 들기도 했다.

우리 집의 북쪽 귀퉁이에는 변소가 있었는데 수세식 변기가 없었던 옛날이니 당연히 재래식 화장실이었다. 변소의 아래쪽은 외부로 트여 있어서 겨울에는 볼일을 볼 때마다 엉덩이가 시릴 정도로 찬바람이 드나들었다. 아주 혹한기에는 똥을 눌 때마다 그게 얼어붙어서 점점 산처럼 뾰족하게 높아졌다. 그 똥산이 변소의 바닥 가까이까지 높아지면 할 수 없이 삽으로 윗부분을 쳐서 깎아내려 높이를 낮추곤 했다.

그 시절에는 지게의 양쪽에 똥통을 매달고 돌아다니며 변소의 똥을 치워주고 품삯을 받는 아저씨들이 있었다. 겨울이 가까워지면 그들은 동네방네 돌아다니면서 이렇게 소리를 질렀다. “퍼~, 퍼~, 얼기 전에 똥 퍼~.” 변소에 쌓인 똥이 얼어붙으면 퍼낼 수가 없으니 그 전에 치우라는 얘기였다. 그러나 긴 겨울 동안에 다시 똥은 쌓이고 결국은 얼어붙게 마련이었다.

설날이 되면 차례를 지내고 떡국을 먹고 나서 집안 어른들께 세배를 드리고 세뱃돈을 타는 재미가 쏠쏠했다. 정월 대보름날에는 엄마가 한 솥 가득 해놓은 오곡밥과 나물을 먹고 나서도 아이들은 이집 저집 돌아다니며 또 밥을 얻어먹었다. 그러고 나서는 창호지를 직사각형으로 자르고 가운데에 동그랗게 구멍을 낸 다음 대나무를 가늘게 쪼개서 살을 붙이고 실을 매어 방패연을 만들어 친구들과 뒷동산에 올라가 날렸다. 밤에는 깡통에 구멍을 뚫어 줄을 매고 그 안에 불을 피워 빙빙 돌리면서 쥐불놀이를 했다.

그렇게 설이 지나고 정월 대보름도 지나다보면 우수가 되고 경칩이 되어 얼었던 땅도 서서히 풀리면서 겨울은 물러가고 봄이 찾아왔다.

<저작권자 © 예산뉴스 무한정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박연상 <출향인, 서울 거주>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 댓글 0
전체보기
첫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여백
여백
여백
여백
여백
Back to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