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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출신 독립운동가 중 독립장 수훈자
  • 김창배 <예산군청 건설교통과>  yes@yesm.kr
  • 승인 2018.11.1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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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건국에 뚜렷한 공을 세운 사람, 국기(國基)를 다지는데 공적이 있는 사람에게 건국훈장(建國勳章)이 수여된다.

대한민국에서 무궁화대훈장, 건국훈장, 국민훈장, 무공훈장, 근정훈장, 보국훈장, 수교훈장, 산업훈장, 새마을훈장, 문화훈장, 체육훈장, 과학기술 훈장 12가지의 훈장을 수여하고 있다.
건국훈장은 독립운동의 공헌과 기여도에 따라 대한민국장, 대통령장, 독립장, 애국장, 애족장의 5등급으로 되어 있다.

예산군의 자랑 윤봉길 의사는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훈자이다. 유관순 열사와 같은 건국훈장 독립장 등급을 받은 예산출신 독립운동가 3명(김한종, 박인호, 이남규)이 있다. 예산출신 건국훈장 독립장 수여받은 세분은 대한민국을 위해 몸을 바쳤다. 그분들의 독립을 위해서 노력한 활동상황 등을 간략하게 인터넷에서 발췌하였다. 

독립운동에 참여정부로부터 공적이 인정되어 포상을 받은 예산출신 독립운동가 유공자는 40여명이다. 이 분들의 활동분야는 다양하다. 3·1운동, 국내항일, 의병, 중국방면, 의병, 학생운동, 의열투쟁 등이다.

박인호는 1855년 충청남도 덕산군 양촌면 막동리에서 출생을 했다. 동학농민전쟁시 덕산의 대접주로 승전곡전투, 신례원전투 승리를 이끌었다. 1908년 천도교 제4대 교주가 되었다. 1938년 멸왜기도운동(滅倭祈禱運動)을 전개하였다. 1990년 정부에서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하였다.

이남규는 이산해의 후손이다. 을미사변 후 향리로서 예산으로 내려왔다. 1907년 의병 민종식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협의로 공주감옥에 투옥되었다. 석방된 후 일본군에 의해서 아들 이충구와 이남규는 피살되었다. 

정부에서는 이남규의 공훈을 기리어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맏아들 이충구는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남규 손자 이승복도 일제강점기 만주에 망명하여 독립운동에 일평생을 바쳤다.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이남규 증손자 이장원도 북한과 싸우다 전사를 했다. 1953년 충무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김한종은 1883년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에서 태어났다. 대한광복회 가입하여 충청도 일대 군자금모집에 활동을 했었다. 1921년 38세 나이로 대구형무소에서 순국을 했다. 1963년 정부에서 공훈을 기리어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하였다.

한민족은 19세기 말부터 일제의 침략을 받았다. 1910년 일제에게 국토와 주권을 빼앗겼었다. 주권을 상실 일제침략에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일제강점기 예산호서지역이 농업중심지로 발전을 하였다. 또한 항일독립운동도 활발히 전개하였다. 한말 홍주의병 참여와 국채보상운동에도 예산 사람들은 적극 참여하였다. 윤봉길 의사는 해외로 망명하여 목숨을 바쳐 독립운동을 하였다.

지난 8월 29일 예산군립도서관에 개최한 ‘길 위에 인문학’ 강의를 김상기(충남대 국사학과) 교수로부터 들었다. ‘예산지역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 강의였다. 한국독립운동 전반사와 우리지역 출신 독립운동가 활동상에 대하여 이번 강의를 통해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예산군립도서관에서 강의를 마친 30여명은 9월 8일 예산지역 강희진(향토사학자)씨의 안내로 예산 독립운동가 관련된 ‘서대문형무소역사관’,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유적지 탐방을 하였다.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은 1987년 전액 국민성금으로 기공하였다. 1988년 12월 1일 준공 운영하다가 2016년 서울시에서 국가보훈처로 이관하였다. 2018년 매헌 윤봉길의사 기념관 전시실은 재개관하였다. 그곳을 방문하여 근무하는 직원해설과 안내를 받으며 기념관에 전시된 관련 자료를 살펴보았다. 유물 유품이 원본은 거의 없고 복사본과 모형만 있어 큰 기대와는 달리 실망을 했다. 수십 년 동안 매헌 윤봉길 의사에 대한 자료가 그곳에도 오류된 것이 전시되고 있었다. 안타까웠다.

인근 홍성군 출신 홍주의병에 참여한 이근주는 왜병에 채포되기 전 유서를 남겼다. “매장을 하지 말고 화장할 것을 당부했다. 매장하는 일은 비린내 나는 땅으로 나를 멸하는 것이라!”라고 하였다. 얼마나 대한민국독립 운동가는 일제를 증오했던가를 알 수 있다. 그는 1910년 자결 순국하였다. 1991년 정부에서 이근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국권회복을 위해 헌신, 희생하신 순국선열의 독립정신과 희생정신을 후세에 길이 전하고 위훈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법정기념일이다. 독립운동에 참여하고 공적이 인정되지 못하여 정부로부터 포상을 받지 못한 예산출신 독립유공자는 많다. 예산에서 독립운동에 참여한 이들의 독립운동의 활동상이 유가족이나 향토사학자에 밝혀져 다수가 국가보훈처에 독립유공자로 등록되어 해택을 받았으면 한다. 그래야만 나라를 사랑하는 예산정신이 되 살아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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