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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여행기> 3. 스웨덴, 스톡홀름
  • 박종수 <광시 구례리>  yes@yesm.kr
  • 승인 2018.10.02 1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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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크 시를 흐르는 아우라 강과 파란 하늘이 잘 어우러져 있다. 그렇게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국을 떠나 북유럽에 오니 아침 바람은 제법 서늘한 기운을 느끼게 한다. 푸른 하늘 시원한 바람 가을의 길목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핀란드는 13세기 당시 북유럽에 강국 이였던 스웨덴이 핀란드 지역을 정복해 거의 7세기 동안 지배 했었다. 스웨덴 지배 이전 핀란드는 독립된 국가는 아니었고 스웨덴의 공국으로 있으면서 유럽 문화와 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다가 동쪽의 강국 러시아와 다투다가 밀려나 핀란드는 러시아의 공국이 되고 러시아 정부는 핀란드 공국의 수도를 투르크에서 스웨덴에 가까운 동쪽 헬싱키로 옮기게 되었다.. 북유럽은 24시간 해가 뜨는 백야 현상이 있는 나라 북극의 낙원이라 할 만큼 죄고의 복지국가 스웨덴으로 떠난다.

우리는 투르크로 이동 발트해의 유람선 바이킹라인에 탑승하였다. 바이킹 라인은 북유럽의 주요 도시와 도시를 운송하는 수단뿐 아니라 숙박을 제공함으로써 크루즈 안에서 디스코택, 라이트 클럽, 카지노, 사우나, 오락실, 면세점 등을 이용할 수 있다. 선상위로 아침 해가 떠오르기 시작 한다. 평화로움이 가득해 보이는 북유럽의 베니스라 불리는 스톡홀롬에 도착해 스톡홀름 시내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위치한 감라스탄 지구에는 왕궁, 대 광장, 대성당, 노벨 박물관 등이 있다. 12세기부터의 건축물이 남아 있는 스웨덴의 옛 모습과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하나의 거대한 옥외 박물관 같다. 고딕, 바로크, 로코코 등 다양한 양식으로 건축된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즐비하다.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길을 걷다 보면 건물 외벽에서 묻어나는 세월의 흔적 하나하나가 살아있는 역사다.

스웨덴 왕궁인 쿵리카 슬로트 앞을 지나고 있는데 파란 제복을 입 은 군위 병이 근엄하게 서 있다 날씨가 맑아 푸른 하늘과 제복이 잘 어울린다. 왕궁의 안뜰을 통해 노벨 박물관에 도착할 수 있었다. 2001년 설립된 이곳은 노벨상의 역사와 역대 노벨상 수상자를 조명하는 박물관이다. 이곳은 수상자의 업적이 학문과 문화에 미친 독창성을 주제로 수상자들의 인터뷰 등 전시물이 있고 더 안쪽으로 들어서면 물리학, 화학, 의학, 경제학, 노벨 문학상 등 각 분야별로 관련된 업적에 관한 것들이 전시고 있다. 노벨상은 크게 생리의학상,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경제학상 6개 분야에 걸쳐 수여가 이루어진다. 한 편에는 2000년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소개와 민주화 운동을 위해 투옥하던 당시 사진과 함께 전시되어 있어 뿌듯함을 느껴지게 한다.

스톡홀름에 높이 솟은 종탑과 함께 호수가 아름다운 붉은 벽돌건물 하나가 서 있는데 바로 스톡홀름 시청사다. 호숫가 바로 옆에 있어 그 붉은 벽돌 자체가 더 아름답다. 시청사는 1911년 건설이 시작되어 1923년 완공된 12년 동안 지어진 스웨덴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이 대단하다. 높이 106미터의 종탑과 함께 시청사는 시정을 위한 사무실과 회의실 노벨시상식 만찬이 열리는 블루홀이 있다. 이곳 의회는 스톡홀름 시민투표로 의원들을 선출하는데 의회의 구성 역시 남여 평등이 지켜지는 편이라 시의원 남녀 비율도 50대 50 이라고 한다. 고작 100년 정도 시청사가 스웨덴의 역사와 위인들의 모습을 그 공간 속에 녹여 넣었다는 것과 그 공간에서 매년 인류의 정신을 도약 시킨 위대한 노벨상 수상자들의 위한 만찬과 무도회가 열리는 장소이기도 하다.

스톡홀름은 참으로 인상적인 곳이었다. 현재의 모습은 평화롭기 그지없지만 바사박물관을 관람하며 느끼는 스웨덴은 과거 북유럽 국가들과 많은 전쟁에서 승승장구 했을 것 같은 강국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고 있는 것 같다. 바사는 1628년에 첫 출항에 나선 최고의 군함이었는데 안타깝게도 고작 먼 바다에 가보지도 못하고 스톡홀름 항에서 침몰해 가라앉아버렸다. 승선해 있던 대부분의 선원들은 익사했고 이에 왕은 분노하여 책임을 물었지만 어느 누구도 처벌받지 않았다고 한다. 배가 가라앉은 이유는 배의 폭이 너무 좁고 무거웠기 때문인데 설계도를 왕이 승인 했기에 책임을 묻기가 난처했던 것이다. 당시 유럽에서 가장 강한 해군을 만들어 천하무적의 군함을 만들고 싶었던 왕은 큰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으리라. 하지만 330년 만에 인양돼 지금은 세계인이 찾아와 왕실의 호화 전함 바사호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유명한 역사의 박물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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