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길을 헤치고 아침 일찍 남편은 친구 아버님의 문상을 위해 길을 나섰다. 겨울이 되면 오랜 세월의 옷을 벗어버리고 훌훌 하늘로 떠나시는 분들이 많아진다.이 겨울 세상을 등지신 나의 아저씨, 아주머니들은 우리 역사에서 가장 굴곡진 삶을 온몸으로 살아오신 분들이었다. 어린 시절에는 일본식 성씨로 불리어야 했고, 6·25라는 처절한 전쟁 중엔 먼 이웃이나 친척을 적으로 삼아 피와 눈물을 쏟아야 했고, 4·19, 5·16으로 이어지는 정치사의 영욕 속에서 가정을 꾸리고, 보릿고개의 가난에서 가족을 먹이고 입히기 위해 자신의 삶을 기꺼이 던
꼭 1년 전이다. 눈이 내린 12월 이맘때, 무한정보 신문사로부터 외부필진으로 1년 동안 글을 써달라는 제의를 받았다. 그것도 고정 칼럼 코너에 월 1회씩 글을 쓴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다. 누가 보는지는 몰라도 예산 전역에 고루 들어가는 지역정보지에 고정적으로 글을 연재한다는 건, 한 번도 이런 경험이 없는 나에게는 ‘설레는 두려움’이었다. 그럼에도 이런 기회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며, 안 해본 걸 한번 해보는 것도 내 인생에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 제의를 받아들였다.‘한번 해보는 거지. 뭐, 어떻게 되겠어?’ 솔직
나에게는 노랫말을 생각만 해도 눈물이 고이고 이루 말 할 수 없는 서러움과 그리움과 동경의 마음에 사로잡히는 노래 두곡이 있다. 한 곡은 당연히 이고 그 외 한 곡은 이다.는 반주가 시작되면서부터 마음 깊은 곳으로부터 끓어오르는 뜨거운 격정으로 인하여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도록…” 그러고는 펑펑 쏟아지는 눈물 때문에 다음 노랫말을 이어가지 못한다. 몇 번을 부르고 불러도 같은 상황이다. 노래 역시 마찬가지이다. 만주로 이민 가서 사는 동포들에게는 고향을 그리는 마음
‘서연고성서한이중경외시건동홍숙’이것은 대한민국 대학의 서열이다. 공부를 잘하는 고등학생들은 이 서울대에서 시작하여 숙명여대까지 15개 대학에 들어가겠다고 3년을 죽어라 공부한다. 소위 SKY라 하는 최고 순위 3개 대학을 위시하여 인서울 대학의 서열이 있고, 서울과 그 대학의 거리를 비례로 대학의 순서가 매겨진다. 재미있는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20대부터 60대까지 성인에게 인생에 무엇이 가장 후회되느냐고 물었더니 공부를 더 열심히 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가장 많이 했다고 한다. 공부를 더 잘했으면 더 좋은 대학에 갔을 것이고, 그
며칠 전 반가운 소식을 받았다. 17년 전의 담임 반 제자가 소식이 끊긴지 2년만에 독일에서 메일을 보내왔다. 중학교 1학년 때 담임을 한 후 바로 전근을 가게 되면서 통 소식을 모르고 지냈다. 6년 전 어느 날 육군 중위 군복을 입은 씩씩한 청년이 학교로 찾아왔고 10여 년만에 재회를 하였다. 까까머리에 장난기 가득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180센티미터의 쑥 커버린 키에, 장교복이 아주 잘 어울리는 멋진 군인이 되어 있었다.전라도 해안 초소에서 중대장으로 근무하던 제자는 제대 후 군복무 중 모은 월급만을 가지고 독일로 유학을 갔다.
11월 중순이다. 달력이 10을 넘기면 이젠 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밀려온다. 열 달을 고이 키워 출산하는 여인의 감격처럼, 11월은 지난 열 달을 돌아보며 마지막 불꽃을 지피는 달이다. 풀이든 나무든 모든 초록은 빨갛게, 노랗게 단풍으로 불타고 이제 마지막 잔불만이 남아 내가 여기에 있었음을 조용히 말해 주고 있다. 머잖아 그마저도 빛을 잃고 땅으로 돌아가겠지만.봄에 이 세상에 왔던 모든 것은 다시 흙으로 돌아가고 있다. 시듦으로, 마름으로, 떨어짐으로... 낙엽도, 낙과도 땅으로 내려앉는다. 나무 위에 매달려 땅을 그리
단풍은 저 마다의 자태를 뽐내며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낙엽을 조롱하듯 한껏 알록달록하다. 때가 되면 단풍이나 낙엽이나 지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든 말든 개의치 않는 것 같다.도심에 자리한 공원에서는 산책을 하면서도 마스크를 착용하고 집에 들어와서는 “공기 좋은 시골에 가서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야지”를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었다.말이 씨가 되었는지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예산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고 그토록 원하던 텃밭에 내 손으로 상추며 가지며 여러 가지 야채를 심어서 먹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물론 손바닥 크기
돈에 대한 사랑은 끝이 없다. 어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환풍기를 통해 공장의 작업장에 돈냄새를 불어 넣으면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한다.21세기가 되자 돈은 물건을 살 수 있게 하는 교환가치를 넘어서 그 자체로서 상품가치를 갖게 되었다. 심지어 액체로 된 돈도 출시되었는데 리퀴드머니 닷컴으로 검색하면 돈냄새 나는 향수도 살 수 있다. 남성용 향수이름은 히즈 머니 (His Money), 여성용 향수이름은 헐 머니 (Her Money). 이 향수를 바르면 성공할 수 있다고 광고를 하고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 신의 자리에 돈이 앉은 지 오래
11월 3일은 학생독립운동기념일이다. 하지만 내게는 학생의 날이라는 이름이 훨씬 친숙하다. 어린이 날, 성년의 날, 어버이 날, 부부의 날 등등 한 사람의 성장 및 역할의 변화에 따라 다양한 날을 지정하여 그 날의 주인공으로 삼고 그 의미와 중요성을 기념한다. 하지만 육체적으로 크게 성장하고 정신적으로 많은 갈등과 방황, 격정을 극복하고 어른으로의 성숙을 꾀하는 청소년을 격려하거나 기념하는 날은 없다. 그래서 학생의 날이라는 명칭이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지는지도 모르겠다. 학생의 날은 우리 정치사의 변화 속에서 존폐를 거듭한 수난 많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 온 세상이 노랗게 물든 10월, 누군가에게 편지 한 장을 쓰고 싶은 계절. 오늘은 그대들이 그대가 되어 제 편지를 받아주세요.저는 지금 봉수산 위에서 황금빛 대흥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어요. 가을의 절정은 불타는 노을이 아니라 1년을 잘 익은 황금들판. 그 옆에 마을을 감싸고 있는 남태평양 쪽빛 바다 같은 예당저수지가 한눈에 보여요. 지금은 물로 채워진 저곳이 그 옛날에는 논이었다고, 그대들이 살던 마을도 저기 물 밑 어느 지점이었다고.그대들의 흔적은 이젠 공원에 와야 찾을
푸른 물결 일렁이는 바다 한 가운데를 자유롭게 날아예는 갈매기, 해변에서는 크게만 느껴졌던 등대, 배가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한 섬, 그리고 나, 이 모든 것을 품고 있는 바다!가늠이 되지 않는 우리의 삶의 깊이와 높이에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 진다.“태산은 한 줌의 흙을 마다하지 않았기에 그 높이를 이룰 수 있었고, 바다는 작은 실개천의 물도 가리지 않고 받아들여 그 깊이를 얻을 수 있었다”사마천의 사기 이사열전에 나오는 대목으로 그 내용은 초(楚)나라 출신으로 진(秦)나라 왕의 신임을 얻어 외국인으로서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
올해부터 수능시험에 영어가 절대평가가 된다. 얼마 전 수능개편을 발표하려던 정부가 1년 유예를 하여 지금 중2 학생부터 새로운 수능을 보게 되었다. 이런 교육 관련 기사를 보면 항상 영어가 비판의 대상이다.아무리 영어에 고득점을 받아도 말 한마디 못하는 무능력한 영어교육이라는 것이다. 수능에 만점을 받아도 외국인을 만나면 대화를 잘 못하는 것과 오바마 대통령이 방한했을 때 한국 기자들이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못한다는 상징처럼 인용된다.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가장 싫어했던 과목이 미술이었다.
하얀 깃에 귀밑 1센티의 짧은 머리, 검은 플레어스커트, 진청색의 천 운동화, 몇십 년 전 나의 여중생 때의 모습이다. 내가 처음으로 중학생 교복을 입고 입학식에 다녀온 날, 엄마는 기쁨과 감격으로 평생 잊을 수 없는 환한 모습을 보여주셨다. 그 시절 엄마들은 학교라고는 초등학교나 겨우 다니거나 아예 무학의 아픔을 숨겨야 하는 분들도 많았다. 그래서 자신의 딸이 드디어 교복을 입는 여중생이 된다는 것에 대한 뿌듯함과 보람이 누구보다 크지 않았을까.나는 매일 여중생들을 만난다. 내 삶에서 여중생이 사라지면 내 삶은 기둥과 뿌리가 뽑힌
예산에 가을이 왔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더위와 비가 그치고 하늘이 파래졌다. 가을은 하늘로부터 온다. 언제부터인가 하늘에 눈이 자주 간다면 가을이 왔다는 신호다. 평평하던 하늘이 풍선처럼 빵빵하게 위로 솟아 보이면 누가 뭐래도 가을이다.나는 요즘 하늘 보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눈만 뜨면 하늘이 어떤가 쳐다보는 게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 날씨가 어떤가 하며 올려보고, 출근할 때는 ‘오늘도 좋은 하루’ 하며 큰 숨 들이마시며 쳐다보고, 점심때도 여름 흉내내는 태양이 어디쯤 와있나 고개 돌려 찾아보고, 오후에는 새파란 하늘에
우울증 약을 끊을 수 있었던 계기는 검푸른 바다의 한가운데 우뚝 서있는 등대와 그 위를 자유롭게 날으는 갈매기 때문인 것 같다. 갈매기와의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고 오늘은 등대와 이야기를 나누어본다.‘등대’, 등대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니 이렇게 설명이 되어있다.‘섬·곶·항구·해안선 등에 설치해 놓은 배의 항로 표지등이다. 낮 동안은 탑의 색깔로서, 밤에는 강한 불빛을 비추어서 선박 또는 항공기에 육지의 위치, 위험한 곳 등을 알린다’그렇다. 위험을 알리고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기 위하여 해안에는 수많은 등대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초등학생에게 물어본다. “넌 꿈이 뭐니?” 아이들은 이 질문에 희망직업을 얘기한다. 주로 ‘사’자가 들어가는 직업이 줄줄 나온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면 자신의 꿈에 대해 자신이 없어지고 급기야 꿈이 없다고 대답하는 아이들이 태반이다.학교 성적이 상위권이 아닌 아이들은 흔히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꿈이라고 하지 못한다. 꿈이 뭐냐고 아이들에게 물었을 때 나는 희망직업이 아니라 그냥 어떤 사람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기대하지만 무엇이 되고 싶다는 대답을 듣는다.내가 어릴 때 꿈이라는 단어를 쓸 때는 외국에서 살고 싶다든가 책을 만
연일 살충제 달걀로 인해 신문과 방송이 시끄럽다. 닭의 사육조건이 필연적으로 초래한 결과라는 것에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오죽했으면 A4 닭들의 반란이라는 말까지 나왔을까.어린 시절 나는 학교 앞에서 파는 노란 병아리를 엄마 몰래 가방에 숨겨서 사오곤 했다. 병아리의 보드라운 깃털과 밝게 빛나는 노란 색의 매력은 어린 아이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이렇게 사온 병아리는 하루나 이틀을 넘기지 못하고 죽어버려서 무척이나 슬펐던 기억이 난다. 그 때는 왜 그렇게 많은 병아리들이 학교 앞에서 싼 가격(한두 번의 군것
드디어 말복이 지났다. 올해만큼 말복을 기다린 적이 없다. 아무리 삼복더위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정말 더웠고 정말 습했다. 낮뿐만 아니라 밤에도 숨이 막혀 창문을 꽁꽁 닫고 자기 일쑤였다. 그나마 에어컨이 있었으니 견뎠지, 그것조차 없었으면 병이 나도 났을 것이다. 이런 더위에 제일 먼저 생각나는 곳은, 단연 봉수산이다. 예산읍내에서 10키로 정도 떨어져 있어 가까운 데다가 물이 많은 예당저수지를 지날 수 있어 더욱 좋다. 매년 여름이 되면 나는 아이를 데리고 안방 드나들 듯 자주 봉수산에 간다. 아이에게는 시원한 물놀이장이
산동네에서 태어나서 자란 나는 바다를 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서울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도 주말에는 등산하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의 유일한 방법이었다. 하지만 예산에 와서 사는 2년 가까운 동안 집 가까이 있는 수암산과 용봉산에는 거의 가지지가 않고 집에서 1시간 가까이 달려야 갈수 있는 바다에 깊이 매료되어 있다.출렁이는 바닷물, 그 푸르름이 낯선 만큼 더 자주 가보고 싶어진다. 일렁이는 물결과 사람들, 이름 모를 새들이 서로 백사장을 사이에 두고 힘겨루기를 하는 것 같다.한결, 한결 철석이며 다가오는 바닷물이 백사장을 점령하면
아줌마! 이 단어는 참 난감하다. 젊었을 때, 알바로 프랑스 어린이 베이비시터를 하는데 꼬맹이가 아줌마가 뭐냐고 물었다. 번역어가 딱 떠오르지 않았다. 한국 부인들이 스스로 쓰고 싶지도, 듣고 싶지도 않아하는 단어라 설명해 줬다.사전에는 아주머니를 낮추어 부르는 말이라 써 있다. 분명 이 단어는 남을 하대하고 무시하는 말에 가깝다. 그래서 요즘은 잘 모르는 부인을 부를 때 아줌마라고 하지 않고 이모, 언니 이런 단어를 쓰거나 선생님, 사모님이란 단어를 쓴다. 나를 스스로 가리켜 아줌마라고 할 수는 있으나 누가 나를 아줌마라 부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