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말의 특징은 말끝에 붙어있는 ‘어미’에 잘 나타나요. 그래서 말꼬리만 잘 쓰면 충청도 말맛이 살아나요. ‘밥은 먹었니?’라는 문장이라면, 문장 끝만 살짝 바꾸면 돼요. ‘밥은 먹은 겨?’ 이렇게요. ‘이제 집에 가니?’라면 ‘이제 집에 가남?’ 하는 식이에요. 말끝의 어미만 바꿔도 말맛이 확 달라져요.이렇게 충청도 말맛을 살려주는 어미에 ‘-구라’가 있어요. ‘-구라’는 모양이 재밌어요. 표준말 ‘-어라’와 ‘-구나’를 합쳐놓은 모양이에요.‘아유, 이뻐라!’‘으휴, 시구나!’‘어우, 달구라!’예전 우리 충청도에서는 위 문장처럼
용구 엄마는 일어섰다. 죽은 자식을 끌어안고 산 자식들을 얼려 죽일 수는 없었다. 오랜 만에 지게를 지고 나섰다. 겨울날이 흐렸다. 안갠지 구름인지 모를 뿌연 것들이 산허리를 두르고 있었다. 휘청, 다리가 흔들린다. 용규 엄마는 휘적휘적 안산을 돌아섰다. 안산을 돌아들면 가낭골이다. 거긴 가고 싶지 않은 곳이다. 돌아서면 저 건너편에 일곱다랭이골이 있고, 거기 방죽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뒷동산엔 나무가 없다. 산막골로 들어가면 집에서 멀고 골짜기는 험하다.안산 아래쪽엔 나무가 없었다. 용규 엄마는 낫을 들고 뒤편 등성이를 타고
용규 아버지는 한량이었다. 키가 훤칠하였다. 꽃밭에 가면 꽃잎이 고개를 떨굴 만큼 미남이었다. 말을 함부로 하지 않았고 행동거지가 진중했다. 한 번 보고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넋이 나갈 만했다.그는 상이군이었다. 한국전쟁은 길었다. 긴 전쟁의 총부리는 장정들을 사정없이 전쟁터로 몰았다. 1952년 초, 그는 아내와 자식을 두고 총을 들었다. 그는 동부전선에서 중공군을 만났다. 총알받이란 이름의 소총수로 고지를 향해 달렸다. 동네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그는 운이 참 좋았다. 운이 좋았다는 것은 전쟁터에서 죽지 않았다는 뜻이다. 몸
사람들은 수군거리기만 할 뿐 아무도 나서지 못했다. 그때 아랫동네에서 온 누군가가 말했다.“물이 빠진 사람은 잿간에 묻어두믄 살어날 수도 있다던디.”“뭔 소리랴? 그게 증말인 겨?”“아니, 맻 해 전이 옆 동네에 물이 빠져 죽은 사람이 있었넌디 말여. 다 죽었다구 힜넌디 멫 시간 뒤 재를 털구 일어났댜.”“맞어, 그 얘긴 나두 들었구먼.”그래서 용규는 잿간으로 갔다. 용규네 잿간은 사립문 밖 오른쪽에 있었다. 다 그랬다. 뒷간이야 본래 집 밖에 두는 것이고, 뒷간의 반은 잿간으로 썼다. 아궁이의
용규네는 안방과 사랑방 사이에 마루가 있었다. 그곳에 용규가 누웠다. 용규가 집에 들어설 때 아버지가 뛰어나왔다.“용규 아부지, 용규 아버지, 큰일 났유.”“용규가 물이 빠졌유.”용규보다 먼저 아이들의 목소리가 집안으로 달려들었다. 아이들은 ‘용규가 죽었유.’라고 외치지 않았다. 죽음을 외치는 것은 금기다. 용규는 아직 안 죽었는지도 모른다. 어른들이 달려오면 다시 살아날 지도 모른다. 낮잠에서 깨어난 듯 기지개를 켤 지도 모른다.신발도 신지 못한 채 토방을 뛰어나오던 용규 아버지는 멈칫, 다가서지 못했다.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지만
그곳엔 용규라는 아이도 있었다. 4학년이었다. 방죽 가운데를 들어갔다 나오는 5~6학년 형들을 따라하던 친구 하나가 용규를 바라보았다.“용구야, 저거 되게 재밌다.”그러고 보니 자신을 빼고는 다 들어가 본 것만 같다. 용규는 한 발 한 발 가운데로 향했다. 그러는 용규를 아이들은 거들떠보지 않았다. 다 자기의 놀이에 정신이 없었다. 어느 순간 발이 푹 꺼졌다. 경사가 심한 바닥에 미끄러웠다. 몸이 기우뚱 흔들렸다. 바닥을 짚고 솟아오르려 했지만 바닥이 닿지 않았다. 물속에서는 몸이 기울면 걷잡을 수 없는 법이다. 수영을 제법 하는
1967년 7월, 장마가 끝나고 방학이 왔다. 아이들은 책보를 집어 던지고 가낭골로 달렸다. 대술면 고새울에는 땀을 식힐 만한 개울이 없었다. 안락산 골짜기에서 흘러내리는 개울은 가늘었다. 졸졸졸 흘러내리는 개울물은 송사리나 가재 잡기에 어울렸다. 동네 아낙들이 빨래터로 쓰일 정도였다. 장마가 쓸어내리면 웃통 벗어던지고 목간이나 할 정도의 웅덩이가 생길 뿐이었다.가낭골에는 방죽이 있었다. 그곳은 동네에서 몇 백 미터쯤 돌아들어간 골짜기였다. 동네 앞 안산을 돌아가면 나오는 길게 이어진 가낭골, 그 사이엔 작은 논다랭이들이 계단처럼
아이를 잃은 아비들은 자식을 찾지 않았다. 돼지 아버지도 아들의 무덤을 찾지 않았다. 애장터를 찾는 것은 금기다. 돼지 할아버지는 아들이 애장터를 찾아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아이 무덤은 가슴에서 찾는 거지 실제로 거길 찾아가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죽은 자식은 잊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돌아보면 이 금기어는 죽은 자식을 그만큼 잊기가 어렵다는 반증이다. 죽었든 살았든 부모가 자식을 찾는 것은 천륜이 맺어준 끈이다. 그것을 끊는 일이 어려워 속담이 되고 금기가 생긴 것이다. 죽은 아이는 입에 담을수록 부모에게 병이 된
장질부사가 쓸고 간 동네엔 아이들이 줄었다. 쉬쉬 아무도 말하지 않았지만, 남겨진 아이들은 친구의 빈자리를 돌아보며 움츠렸다. 누구는 어느 애장터로 갔대. 지게에 지고 가는 어둠의 뒷모습을 보았어. 어둠 속으로 아버지가 따라가더라. 돌멩이 몇 개 놓았다더라. 아이들은 바둑골을 떠올리고 저녁 어스름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에 흠칫 몸을 떨었다.떠난 아이들의 그림자는 동네 풍습도 바꾸었다. 장손을 잃은 집안이 둘이나 되었다. 한 집안은 대를 이을 독자였다. 딸들은 여럿이었지만 독자가 애장터로 떠났다. 한해가 흐르고 두해가 흐르고, 쓸려간
아이무덤은 아무도 찾지 않았다. 아이는 죽는 순간부터 지워져야 했다. 사람들은 죽은 아이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살아 있을 적의 아이를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부모 가슴에 묻힌 아이가 깨어난다고 했다. 부모의 기억을 헤집고 가슴을 헤집는다고 했다. 그래서 죽은 아이를 언급하는 것은 금기가 되었다.아이는 땅 속에 묻혀 흙으로 지워졌다. 무덤 위엔 낙엽이 쌓이고, 돌 몇 개 뒹굴다간 흩어졌다. 아무도 아이가 누운 자리를 알지 못하고, 사람들의 입에서는 아이가 지워졌다. 이제 아이가 있는 곳을 아는 이는 아버지뿐이다.
아이의 장례에는 엄마가 없다. 아이가 죽으면 엄마는 떼어졌다. 죽은 아이 얼굴을 보지 못하게 했다. 아니, 아이가 맥을 놓기 전에 엄마는 격리되었다. 숨이 끊어지는 순간을 지켜보지 못하게 했다. 아버지는 굳건하였다. 몸부림치는 엄마를 사람을 시켜 한사코 막았고, 죽은 아이의 모습을 엄마는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엄마는 살아있는 아이의 모습만을 간직하게 된다.어른이 죽으면 초혼이 이루어지고 바람보다 빠르게 소문을 낸다. 그래서 초상집은 순식간에 불야성을 이룬다. 그러나 아이의 죽음은 소문나지 않는다. 죽음을 아는 이웃들이 입을 닫는다.
아이는 이웃 아저씨의 지게 위에서 애장터로 간다. 죽음은 어둠이다. 알 수 없는 어둠 속에서 태어났다가, 푸른 햇살에 눈이 부셔 아이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사위가 어둠으로 덮인 산길을 돌고 돌아 더 어두운 애장터로 가는 중이다. 아버지는 이미 돌아갈 집을 구상했을 것이다. 아이의 집은 어디가 좋을 거야. 거긴 아무도 알 수 없는 그늘로 캄캄할 거야. 아이를 지고 가는 아저씨는 친절하게도 그 곳을 미리 다녀왔을 것이다.구비구비 어둠을 뚫고 들어선 골짜기, 거긴 아이가 처음 가보는 곳이다. 아이의 영혼도 길을 잃을 것이다.
길가 돌무더기를 보며 가슴 졸이던 때가 있었다. 산길 옆에 쌓인 돌덩이를 보며 흠칫 하던 때가 있었다.먼 길을 돌아나가던 학교길이 참 멀던 시절이 있었다. 홍역 마마가 때 없이 찾아들고 여름이면 장질부사가 휘날리던 시절이 있었다. 아이들의 죽음이 종종 산속으로 들어가던 시절이 있었다.‘애장이다!’누군가 돌무더기를 가리키면 섬뜩 가슴이 주저앉곤 했다. 홀로 걸을 때면 돌무덤을 피해 다녔다. 뒤로 멀어져가는 돌무덤을 돌아보지 못하고 뛰기도 했다. 돌무더기에서 불현듯 애기 울음이 따라오기도 했다.어릴 적 애장은 두려움이었다. 할머니와 할
“명재씨, 배돌다란 말 알지? 도토리가 배돌아 떨어지는 것 말야.”“알쥬. 그거 물르넌 사람도 있남유?”“엊그제 애들 데리고 분례숲길을 갔거든. 거기 도토리랑 상수리가 많이 떨어져 있길래, 상수리들이 배돌어 떨어졌네, 했더니 애들이 전혀 그 말을 모르더라구.”여름내 방안에 처박혀 궁상을 떨었어요. 7월의 어느 날 마룻바닥을 내려서다 헛디뎌 주저앉았어요. 몸무게를 이기지 못한 다리가 똑 부러졌어요. 달포 동안 깁스한 다리를 바라보며 무더위야 얼릉 가라, 여름아 빨랑 가라, 부채질을 해댔어요.긴 여름 끝에 가을이 달려오고, 세 달이 다
지난주에 질문을 주셨던 분이 다시 물어 왔어요.①쎄리다 ②쎄비다 ③버큼 ④참말로 ⑤짠지, 오이짠지, 무짠지 ⑥빵구다.“선생님, 위 말들이 충청도 사투린지 판별해 주세요. 혹시 충청도 사투리가 아니라면 그에 어울리는 충청도말을 알려주세요.” ①쎄리다- ‘때리다’의 충청말이 맞아요. 전라, 경상도에서도 많이 쓰는 말이고요. 표준어 ‘때리다’에 대응하는 말이니 ‘쌔리다’가 좀 더 정확하겠네요. 요즘은 표준어화가 진행되어 많이 쓰이지는 않아요. 표준어 ‘세게 때려버릴까 보다.’를 사투리로 바꾸면 아래처럼 될 것 같아요.“확 쌔려뻐릴라./콱
충청도 말에 관심이 많은 분이 질문을 전해왔어요.“선생님, 생각나는 사투리를 모아봤습니다. 충청도 사투린지 판별해 주세요. 혹시 충청도 사투리가 아닌 경우 올바른 충청도 말을 알 수 있을까요?”그분이 전해준 말은 △뭐시껭이 △땜시 △노나다 △안짝, 저짝, 이짝, 그짝 △넘, 넘의 자식 △괴기, 물괴기예요. 나는 아래와 같이 답을 했는데 잘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같이 한번 생각해 볼까요?△뭐시껭이 - ‘뭐시껭이’는 ‘무엇’에 대응하는 경상도말이에요. 충남지역에서는 쓰지 않지요. ‘무엇’에 ‘-껭이’란 접사가 붙은 말이고요. 보통 경상
‘이전이 쪽 지구 단장헐 때 쓰넌 빗이 챔빗이여. 요샌 베랑 안 쓰지. 시절이 배꼈으니께.’‘어레빗은 방물장사덜이 마을마두 돌어댕기매 팔었어. 근디 읎넌 집은 나무를 깎어 대충 맹글어 빗기두 힜댜.’어렸을 때 나는 챔빗이라 쓰지 않았어요. 참빗이라 썼지요. 내 누이도 아버지도 엄니도 다 참빗이라 했어요. 그런데 이웃 어른들은 곧잘 챔빗이라 썼어요. 그래도 그게 이상하지는 않았어요. 참빗이나 챔빗이나 같은 말로 알아들었거든요. 학교에 다니는 우리들은 챔빗은 할머니들의 말이라 이해했고요, 우리들은 학교에 다니니
‘솜이불이 부품허니 올 즑인 춥지 않게 지내겄네.’‘새로 산 옷이 보푸래기덜이 부허니 이넌디 이게 뭔 일이랴?’‘부품허다’는 ‘부풀다’에서 생긴 말이에요. 크기가 팽창하여 커지는 것이 부푸는 것이니, ‘부품허다’는 어떤 물건이 부풀어 올라 큼직하고 넉넉해진 것을 나타내는 말이지요. 형태는 다르지만 ‘부허다’도 비슷한 말이에요. 이는 쪼그라들었던 물건이 크게 부풀어 오른 상태를 이르는 말이지요.이 두 말은 지금도 많이 쓰여요. 아이들은 이 말을 쓰지 않지만요, 어른들이 이 말을 많이 쓰는 까닭은 일상생활과 밀접한 옷이나
충청도와 전라도에서는 ‘티껍다’라는 말을 많이 썼어요. 얼마 전 국어사전을 펼쳤더니 이 말이 ‘더럽다’의 ‘평안도 방언’이라고 나오는군요. 이건 지역말 조사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한 탓이에요. ‘티껍다’는 속되긴 하지만 훌륭한 순우리말인데 지역말 조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사전에 오르지 못한 말이에요.요즘은 지역 방언들이 빠르게 사라지고 있어요. 국어사전에 오르지 못한 방언들은 책에 쓰지 않아요. 그러다 보니 학생들은 배울 기회가 없고, 지역에 사는 분들도 다른 사람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방언은 되도록 쓰지 않아요. 당
이른 장마가 끝나고 가뭄이 이어지고 있어요. 한 달 넘게 비가 내리지 않은 예산은 무더위와 함께 마른 먼지가 휘날리고 있어요. 예당저수지는 저수율이 30% 아래로 떨어졌어요. 밭작물은 말라가고, 이제 논에 댈 물조차 떨어졌어요.지난주부터 백제보의 물을 끌어들이고 있어요. 1000억을 투자한 도수로를 통해 먼 길을 달려온 금강물이 신양 어디쯤서 콸콸콸 물을 쏟아내고 있어요. 그러나 이건 언 발에 오줌 싸기예요. 며칠 끌어오는 그 물은 잠깐 쏟아지는 소나기예요.‘관개수로(灌漑水路)’는 강이나 저수지에서 논밭으로 보내지는 물길이에요. 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