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곳, 드넓은 삽교 평야, 한 때 포구에 배가 드나들던 곳. 수많은 농산물과 수산물이 보부상을 통해 내륙으로 퍼져갔던 곳. 실학과 서학 등 선진 지식이 들어오고 동학이 흥성했던 곳. 일제때는 농업전문학교와 은행과 기차가 들어섰고, 산업화 시절에는 충남 최대 방적회사가 있었던 곳. 지역이 흥하니 예술도 흥해 문화예술인들이 배출된 곳. 그래서 고향을 향한 애향심과 자부심이 남달랐던 곳.한번 쯤 청춘이었던 때가 누군들 없을까. 골목 가득 채웠던 아이들 소리는 이제 적막하고 떠난 집에서 시절을 추억하는 이들이 하나 둘 늘어간다. 빠르게
사방이 붉다. 참 예쁜 산과 들이네. 온 천지 가득한 단풍을 만산홍엽이라지. 그 찬란함도 잠시 찬바람 불면 붉은 몸짓들이 처음이자 마지막 비행을 하지. “안녕.” 착륙을 알리는 미세한 소린 엄마 나무에게 보낸 작별 인사일까? 어릴 적 시골마을에 지적 장애가 있던 여자 아이. 동네 공사장에 비가 많이 내려 생긴 물 웅덩이에 그만 빠져 죽었지. 며칠간 웅덩이 앞에서 통곡하던 그 엄마 혼이 나가버렸네. 장례를 치르다보면 가끔 화장터에서 그런 얼굴을 보곤 해. 자녀를 잃고 영혼이 바람에 숭숭 뚫린 창백한 얼굴. 저녁이 되어 제단의 초를 밝
왜 나는 이런 것들만 눈에 들어올까? 예산역에서 예산교 방향으로 가다보면 왼편에 흙갈색 벽돌건물이 나온다. 간판에 적힌 이름 ‘동훈여관’. 외양을 보면 족히 30년은 돼 보인다. 언제 영업을 멈췄을까? 굳게 닫힌 자물쇠만 보인다. “한때 잘 나갔던 때가 있었을 게야. 예산역에 가까우니 여행객들도 제법 있었겠지. 동훈이란 이름은 아마 아들이었을까? 그냥 헐리기엔 세월의 흔적이 너무 아깝네.” 이런 저런 생각에 한참을 올려다보았다. “거기 불에 탔시유, 아마 장기 투숙객이 음식해먹다가 불을 냈다지. 그래도 벽돌건물이라 아직 짱짱허유,
내 고향 삽교를 아시나요/ 맘씨좋은 사람들만 사는 곳/ 시냇물 위에 다리를 놓아/ 삽다리라고 부르죠/ 서울역에서 장항선 타고/ 천안을 지나고 온양을 지나/ 수덕사 구경을 하시려거든/ 삽다리 정거장서 내려야죠.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로 이만한 게 또 있을까? , , , , 등등 고향과 지역을 배경으로 부른 노래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가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소개해주는 노래가 어디 있으랴. 조영남은 위 외에도 라는 번안곡에선 “내 고향은 충청
“다시 찾아 드릴께요 어머니열네 살 소녀 그 어린 꿈들이 땅에 흐르는 대지의 눈물이여다시는 그 수치를 당하지 않으리눈물은 노래를 막아 부르지 못하여도하늘의 그 손길 야윈 손 잡아”홍순관이란 노래운동가가 있다. 그는 1994년부터 일본군 성노예 문제를 알리고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돕기 위한 모금 공연을 10년간 벌였다. 그 프로젝트를 이라 불렀다. 2000년 위안부 문제를 다룬 도쿄 민간 국제법정을 위한 한국 측 부담금은 이 공연의 모금으로 충당됐다. 이런 그를 두고 가수 정태춘은 “홍순관은 오랫동안 세상의 그
지방은수도권 식민지 아냐오랜 세월에 걸쳐 형성된 역사와수많은 이야기가 스며있는땅이라네 그러니 눈을 부릅뜨고 힘을 모아함께 외칠 일이지“이곳에 사람이 산다”벚꽃로가 끝나고 신암으로 가는 길, 드넓은 평야지대가 나오지.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산골짜기에서 자란 촌놈의 눈엔 그저 신기할 따름. 삽교천 하류지에 형성된 예산과 당진에 걸쳐있는 넓은 땅을 예당평야라 하네. 평야를 가로지르는 시원한 도로도 뚫려있어 운전을 하다보면 너른 풍경에 눈은 즐겁기 그지 없고. 평야를 가로지르는 또 하나의 구조물도 있지. 그것은 송전탑, 크기가 참 어마무
삶이 시이고 노래인 사람을 좋아한다. 예술가라면 더욱 그렇다. 삶과 노래가 평행할 때 노래는 힘을 가진다. 노래만 잘 하는 재주와는 다른 울림이다. 노래에 삶을 담는 가수를 만나는 건 쉽지 않다. 어찌 가수뿐일까? 우리 삶도 그렇다. 평범한 범부인 우리는 노래와 삶의 불일치 속에 살아간다. 초월적 삶을 견지하는 종교인도 마찬가지. 그런 노래를 부르는 이가 있다면 그는 예술가를 넘어 성인이라 해야 할 것이다. 오랜만에 예산시네마에서 영화를 봤다. 이라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예산참여자치연대와 전교조가 공동주관한
“아들 같은 신부가 주는 꽃도 받아보셔야죠.” 너스레를 떨며 어버이날 카네이션 화분을 쑥스럽게 건넨다. “에휴, 뭘 또 이런 걸... 이렇게 받기만 해서 어쩐데요.” 멋쩍어 하는 사장님 얼굴위로 미소가 번져간다. “치아 치료는 잘 되셨어요?”, “아뉴, 이번 6월에 3개 더 심기로 했어요. 나이가 있응께 금방 안되나봐유.” 읍내장터 돌담양행은 오늘도 성업중이다. 여기서 성업이란 장사가 잘 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어르신들을 위한 작은 옷가게가 장사가 되야 얼마나 잘 되겠는가? 이곳은 단지 옷만을 팔지 않는다. 시간을 판매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 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으며/ 봄비로 잠든 뿌리를 깨우네/ 겨울은 오히려 우리를 따뜻하게 했었네/ 망각의 눈으로 대지를 덮고/ 마른 구근(球根)으로 가냘픈 생명을 키웠네찬란하다. 이 외에 더한 표현이 있을까? 따뜻한 봄날을 어느 누가 싫어할 수 있으랴. 움추린 나무들이 새잎을 돋아내고 마른 땅에 새순이 올라와 꽃을 피운다. 성당 텃밭에 심은 감자며 화단에 수선화들도 새 봄을 준비하고 있다. 태고부터 몸속에 각인된 감각이 얼어붙은 마음을 일깨우고 부지런한 몸놀림을 주문한다. 봄은
달래야 달래야 진달래야/ 바위야 바위야 가새바위야/ 구름 같은 말을 타고/ 수철리 고개를 넘어가서/ 곱사대야 문 열어라/ 춘향이 얼굴 다시 보자/ 너 죽어서 꽃이 되고/ 나 죽어서 나비 된다/ 나비 됐다 서러 마라/ 꽃밭으로 날아든다. 방영웅의 장편소설 『분례기』의 마지막 장면이다. 미친 여자가 된 ‘똥예’가 가족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수철리 봉순의 무덤가를 지나 ‘해 뜨는 나라’를 향해 떠났다. 과연 똥예는 고통 없는 행복한 나라에 도착했을까? 예산에 오기 전, 이 소설을 몰랐다. 누군가 내게 분례기 초판을 건넸다. 1967년에 나
함께 영화를 본다. 이름하여 . 한 달에 한번 영화를 보고 대화를 나누는 모임이다. 코로나로 잠시 주춤했지만 성당에 작은 책방을 만들고 올해부터는 이곳에서 모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1월, 3편의 영화를 3주간 릴레이로 상영했다. 겨울밤은 영화를 보기에 더없이 적합하다. 1월의 주제는 ‘혼자’다. 웹툰 작가 김정연씨의 이라는 작품의 제목을 차용했다. 이 웹툰은 직업도, 사는 곳도, 취향도 각기 다른 주인공들이 서울이란 도시에서 혼자 버티며 살아가는 이야기다. 3편의 영화들도 모두 혼자가 맞이하는
새해, 예당호를 걷는다. 60년대 조성된 인공 저수지지만 주변 봉수산, 임존성, 대흥슬로시티와 어우러지는 조화로움은 전국 유명한 여느 여행지와도 뒤지지 않는다. 이 호수가 갖는 매력은 느림에 있다.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의 삶에 지친 이들에게 이 고요한 호수는 때 묻은 육체를 씻기고 상처 입은 마음을 위로한다. 자연은 있는 그대로 둘 때 아름답듯 호수는 고요할수록 더 빛이 난다. 이 호수의 고요함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 관광사업이란 명목 아래 개발의 바람은 이곳까지 불어왔다. 최근 설치된 출렁다리와 인공데크에 이어 현재 논란이 되고
“시골에서 살아서 나이만 먹었지 아무것도 모릅니다. 헬기장도 정비하며 먹고 살아야 합니다. 저 산업단지? 저기도 자기네 살기 위해서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한테 발로 차이는 게 우리 마을입니다. 너무 안타깝습니다.”노인회장님이 눈물을 글썽인다. 순간 여기 저기 울컥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성에 기대어 성토의 장이 된 마을회관의 공기가 일순간 축축해진다. 세상에서 눈물만큼 진실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 눈물은 30여년 간 참고 참았던 오랜 원망의 결정체였다. 삽교의 평범한 마을 효림리는 오랫동안 아픔을 견디며 살아왔다. 1987
여전히 고양이가 낯설다. 개만 키웠던 시골에서는 고양이는 흔치 않았다. 사람과 음식을 공유했던 개와 돼지와는 달리 육식 중심의 고양이는 키우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이다. 그들은 오늘도 성당 주변을 어슬렁거린다. 늘 곁에 있으나 늘 일정 거리를 유지하니 있으나 없는 것 같은 존재들이다. 부임하고 지금껏 여러 고양이들이 나타났다 사라졌다. 올해도 유치원 창고에서 3마리의 고양이가 태어났다. 이들은 세대를 달리하며 이곳에 터를 잡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너희들이 성당의 가장 오래된 신자일지도 몰라” 올해는 각별한 마음으로 새끼 고양이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여기 모인 이들도 좋아한다. 지친 마음은 쉴 자리를 얻는다. 그곳에 누군가와 연결되기를 바라는 마음들이 모여든다. 책방은 이런 이들이 함께 모여 이루는 마음의 고향이다. 동네책방은 그런 곳이다. 우리 동네에 작은 책방이 있어야 하는 이유는 이것으로 충분하다” 란 책에 나오는 내용이다. 저자는 원래 ‘동네책방 전성기 탐구’라는 제목으로 책을 집필하려고 했으나 초고를 마무리할 무렵 ‘동네책방 생존탐구’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만큼 이 시대에 책 판매로 먹고 산다는 것은 어렵고 힘든 일임을 깨달은
“어린 꿈이 놀던 들판을 지나/ 아지랑이 피던 동산을 넘어/ 나 그리운 곳으로 돌아가네/ 멀리 돌고 돌아 그곳에/ 담벼락에 기대 울던 작은 아이/ 어느 시간 속에 숨어버렸는지/ 나 그곳에 조용히 돌아가/ 그 어린 꿈을 만나려나” 정미조의 복귀 앨범 (2016)에 수록된 ‘귀로’의 1절 가사다. 깊고 묵직한 소리다. 1972년 첫 앨범 표지의 여인은 어느새 할머니가 되었다. LP속 청아한 목소리도 저음의 음색으로 바뀌었다. 일흔이 넘어 부르는 그의 노래엔 세월의 긴 호흡이 묻어난다. 황혼의 나이에 부르는 그의 노래들은 ‘회상
옆 나라 올림픽이 한창이다. 우여곡절 끝에 개최된 올림픽인지라 말도 많고 탈도 많다. 방사능, 코로나19, 무더위 속에서 무리하게 강행된 올림픽이라 연일 안전성에 대한 보도들이 나오고 있다. 몇 종목을 제외하고 우리 국민들의 관심사도 예전만 못하다. 올림픽에 대한 경험치가 쌓였고 사회도 다원화되었다는 반증이다. 특별히 눈길을 끈 경기가 있다. 17세 탁구소녀 ‘신유빈’과 58세의 ‘니 시아 리안’과의 대결이다. 41년의 나이 차이 속에서 펼치는 대결이라 경기 전부터 많은 관심을 받은 경기다. 니 시아 리안의 탁구 경력이 만만치 않다
대흥면 상중리에는 배맨나무가 있다. 잘 알다시피 당나라 소정방이 군사들을 싣고 이 나무에 배를 맸다는 전설이 있다. 처음엔 나무에 얽힌 글을 보고 웃었다. 그저 전설이려니. 지금은 큰 저수지가 되었다지만 어떻게 서해에서 여기까지 배를 타고 왔다는 것인가? 임존성은 아득히 먼 옛 이야기지만 이곳까지 배가 들어왔다는 것은 그리 먼 얘기가 아니란 사실을 후에 알았다. 현재 지형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지금의 삽교, 무한천이 한때 뱃길이었다는 사실. 이것을 이해하는 익숙한 단어가 있다. ‘내포’(內浦), 즉 바다에서 내륙 깊숙이
형제고개 넘어가면 만나는 동네 대률리. 길 옆 오른편에 그냥 지나치기엔 예쁜 학교가 있다. 들판과 작은 개울과 산 끝자락을 모두 품고 있다. 교육은 예나 지금이나 소중하게 여겼기에 가장 좋은 자리에 학교를 세웠나보다. 학교명 ‘대률초등학교’. 아쉽게도 이 학교의 또 다른 이름은 ‘폐교’다. 요즘은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는 이 단어는 시골을 상징하는 흔한 명칭이 되었다. 굳게 닫힌 정문이 무색하게도 학교로 들어가는 길이 곳곳에 있다. 발길이 끊긴 운동장은 잡초들의 천국이 되었다. 오래된 학교들이 그렇듯 소박한 단층건물, 복도 끝 창문
산업화 이후 지방의 문화는 늘 B급으로 치부되었다서울은 세련되고 지방은 촌스러운가? 오래되고 낡은 것이 좋은 문화적 상품이 된 예는 수없이 많다시대를 앞서간 대중음악가에 늘 언급되는 이름이 있다. 신중현이다. 트로트 일색이던 시대의 한국에 본격적인 록음악을 도입한 인물이다. 초기에 결성한 밴드에서 발표한 음반들은 반응이 신통치 않았다. 좌절할 즈음 펄시스터즈를 시작으로 공전의 히트를 치게 되었고, 그가 발굴한 뮤지션들은 이른바 ‘신중현 사단’으로 불리게 된다. 그러다 정권에 협조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반들이 금지곡이 되어 대중의 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