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놀이를 통해삶의 기술을 익히며성장한다놀이를 통해발산하며 치유를 한다놀이를 빌미로삶의 흔적과 문화를논하기도 한다.2018년 아시안게임에서 ‘카바디’라는 경기가 화제다. 카바디(Kabaddi)는 수세기 전부터 인도에서 행해진 변형 투기 종목으로 술래잡기와 피구, 격투기가 혼합된 형태의 경기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이 경기가 2018년 아시안 게임에서 한국 팀의 선전으로 화제가 되고 있다.카바디의 백미는 공격하는 선수가 연신 “카바디, 카바디, 카바디~”를 외치는 모습이다. 이는 공격자가 숨을 쉬지 않고 있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며
세월은 변치 않는다.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세월이 더해질 뿐이다.그 세월을 살아내는 인간이변천하는 것이다.숲을 대하는 태도와숲에 대한 감사의 정도가 변할 뿐숲은 언제나 그곳에 있었다.오랜 세월 숲은 그 자리를 지켰다. 가지와 잎이 더해지고 계절 따라 사뭇 다른 모습으로 비쳐질 뿐 숲은 그 자리였다. 그곳에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져 흔적을 이루고 그 흔적은 길이 되었다. 그리고 그 길 위를 오가던 사람들의 행위는 역사가 되었으며 그들의 이야기는 전설이 되었다.세월이 변한다고 말한다. 세월은 변치 않는다. 그저 시간의 흐름을 따라 세월이
보름달이 지켜주는 보원사지에서의 일박. 최강유랑단에게 그 밤은 쉼과 치유의 시간이 되었다. 다음날 아침, 최강유랑단은 보살님이 차려주신 절밥을 먹고, 주지스님이 직접 내려주신 커피까지 마시며 온갖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최강유랑단의 마지막 일정인 3일차. 그들에게 이어진 길은 원효깨달음길 중 제4코스에 해당하는 구간이다. 길지 않고 어렵지 않은 코스로, 반나절이면 예산 땅을 거쳐 서산 땅으로 넘어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길이다.그 곳에는 흥선대원군의 대권에 대한 야망 아래 불살라졌던 가야사의 비극, 그것에 분노해 등을 지고 돌아섰다
널브러진 나뭇가지로작대기를 만들고솔방울을던지고 까내고가위바위보로한발, 두발 발걸음을 옮기고아이들은 그렇게자신들의 방식과 속도로숲길을 걸었다 내포문화숲길은 통합의 길이다. 그 옛날 나뭇꾼과 보부상이 넘나들고, 선비가 장원급제의 꿈을 안고 걷던 길. 그 길들은 백제의 미소길, 아라뱃길 등으로 이어져 내려왔다. 마을과 마을을 이었던 그 길들은 홍성, 예산, 서산, 당진 등을 품었던 내포라는 큰 이름으로 다시금 이어지며 내포문화숲길이라는 통합의 길을 만들었다. 최강유랑단은 둘째날을 맞아 새로운 얼굴들과 함께 했다. 나를 외삼촌이라 부르는
내포문화숲길에 최강유랑단이 떴다. 그간의 산전수전 때문인지 앞으로 펼쳐질 여정에 대한 설레임은 덜했다. 하지만 그리 걱정할 것도 없이 각자의 짐을 챙겨 들었다. 이제 최강유랑단에게 길 위에서의 며칠은 여느 일상처럼 느껴졌다.세상 밖으로 나온지 얼마 안 되는 신입단원 쑥쑥이(주안) 덕에 평강님은 중간지원 조직으로서 픽업 및 물자조달의 역할을 맡았다.평강님의 픽업으로 출발지점에 도착한 최강유랑단. 멀어져 가는 평강님의 차량을 향해 빠이빠이를 외친 후 그들이 처음으로 함께한 이야기는 “여가 아닌게벼” 여자말 들어서 손해 보는 경우도 있다
숲에 들어서려는철탑을 온몸으로 막아내고숨은 역사와 문화를알리려 힘쓰고그저 이곳이 좋아찾아든 사람들이 함께한우리지역의 숲길제주올레길에 비교할 쏘냐 2013년 최강유랑단은 예당저수지 한 바퀴(21.4km, 8시간 30분)를 돌았다. 2014년도에 최강유랑단은 예산군 2개읍 10개면을 2박3일 동안 돌았고, 그 다음해에도 역시 그들은 2박3일에 걸쳐 42km에 달하는 구간을 또 돌았다. 최강유랑단, 그들은 완전 돌았다.2015년도 5월, 최강유랑단이 돌았던 그곳은 우리지역 예산군을 중심으로 안전하고, 아름다우며 생태자원과
필자가 아이들의 놀이판을 찾아갈 때마다 설문조사처럼 매번 묻는 질문이 있다. ‘너희들 뭐하고 놀고 싶으니?’ 아이들의 성별이나 나이 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아이들의 답변 중 베스트를 꼽자면 축구, 피구, 딱지치기 그리고 경도 정도다. 그 이유는 그 놀이가 정말 좋아서 일수도 있지만 할줄 아는게 그 정도일 경우도 있다.오랫동안 이어져 내려온 놀이들이 그렇듯이 아이들이 선호하는 놀이들의 특징은 별다른 도구가 없어도 할 수 있고, 규칙도 간단한 놀이들이다. 그 이유는 도구를 준비하거나 규칙을 설명하는데 허비되는 시간을 줄여서 조금
‘진놀이’는 이전 회에 소개된 ‘나이먹기’ 놀이의 원조라고 할 수 있다.이 놀이는 옛날에 군사 훈련을 위해 고안된 것인데 후에 그 모습을 흉내내며 놀던 것이 아이들의 놀이로 굳어진 것이다. 그래서 놀이 이름에도 군사용어인 陣(진영 진)이 그대로 남아 있다.『견첩록(見睫錄)』에는 중종(재위 1506~1544) 때 어떤 사람들이 제자들을 데리고 반란을 꾸민다고 하여 왕명으로 그들을 체포하였는데 조사해 보니 남산에서 진을 정하고 편을 갈라 진놀이를 한 것이 밝혀져 석방되었다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다. 또한 근세 자료인 『조선의 향토오락』에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마냥 즐거울 수 있을까? 그것도 100살을 넘게 먹은 나이에도 5살의 개구진 미소와 함께 뜀박질을 해댈 수 있을까? 있다. 그것이 바로 나이먹기 놀이다.나이먹기는 우리나라 전래놀이 중 하나인 ‘진놀이’와 유사한 놀이다. 진놀이의 진지가 바닥에 그려진 원형이라면 나이먹기는 전봇대나 나무와 같은 지형물을 진지로 정하고 ‘나이먹기’라는 옵션이 더해진 그 때 그 시절의 골목놀이다. 이와 유사한 놀이로 더욱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진 ‘다방구’라는 놀이가 있는데 이에 비해 나이먹기 놀이는 규칙이 좀 더 복잡하다. 놀이는 규
놀이판 맴돌거나숨어드는 녀석들꼬셔서 끼워놓고 칭찬샤워익숙치 않아어찌할바 몰라해도그 과정은 충분한 이유 있으니…아이들이 만들어 내는 놀이판의 주인공은 아이들이다. 놀이판에는 두 부류의 아이들이 있다. 놀이판에 끼는 아이와 놀이판에 끼지 못하는 아이. 필자가 이런 아이들의 놀이판에 끼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놀고 있는 녀석들에게 끼워 달라고 졸라대는 경우. 또 하나는 판에 끼지 못하는 녀석들을 끼워 넣기 위해 끼어드는 경우. 후자의 경우 그것은 ‘개입’이다.필자가 아이들의 놀이판에 개입하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놀이판에는 인정이 넘쳐나야 한다. 이기고 지고, 심지어는 죽고, 사는 것들을 스스로가 인정하고 받아들일 때 아이들의 놀이판은 회를 거듭해 갈 수 있다. 나의 죽음을 적들에게 알리지 않으려는 아이가 많아지고 패배를 인정하지 못하는 패거리가 늘어날 때 그 놀이판은 깨지고 만다.어른들의 세상사에 있어서도 인정을 받게 되면 즐겁고, 인정을 하게 되면 편한 것이 인지상정임에도 불구하고 타인을 인정하는데 인색하고, 자신의 허물을 쉽사리 인정하지 못하는 것 또한 인지상정이다. 필자는 놀이판에 선 아이들에게 놀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빅
본 편에는 유독 스포일러가 난무 하오니 어린이나 청소년, 본 놀이를 온전히 향유하고자 하는 모든 분들은 읽기를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안경놀이는 한국의 전래놀이(란)다. 필자가 안경놀이를 처음 접하게 된 시점도 나이 40이 다 되어 책(이상호의 전래놀이 101가지 중학년·고학년 P43)을 통해서였다. 땅에 그린 형태가 안경과 닮았다고 하여 ‘안경 놀이’라고 하며 다른 지방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주로 제주도에서만 조사된 놀이라고 한다.이 놀이를 처음 알게 되었을 때만 해도 책에 밑줄을 그어 가며 읽어봐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전래놀이 지
몇 년전 필자에게 누군가 건넨 질문 하나.“계획하고 있는 일이나 꿈이 있다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세상놀이터. 나는 세상놀이터를 만들고 싶다고 했다. 세상의 온갖 놀 꺼리가 가득하고 사람과 그들의 몸짓과 웃음이 넘쳐나는 세상놀이터를 만들겠다고 했다. 그 때 당시 내 가슴은 뛰고 있었지만 머릿속은 막연했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알게 된 독일의 팝업놀이터(pop-up playground). 팝업놀이터란 고정된 놀이시설이 아닌 놀이가 필요한 시공간에 만들고, 놀고, 접는 임시 놀이터다. 대표적인 해외 사례로 독일의 놀이버스(Spie
돈까스에 대한 나의 생애 첫 기억은 고등학교 3학년 때였다. 대전에서 학교를 다니며 하숙생활을 하던 나는, 같은 또래의 하숙집 딸을 조르고 졸라 소개팅이란 것을 하게 되었다. 그 당시 대전에서 유명(학생들 사이에서)했던 한 ‘경양식’ 집에 마주 앉은 나와 한 여학생.경양식 집도, 소개팅도, 모든 것이 처음이었던 나는 촌티를 내지 않기 위해 덥석 메뉴판부터 집어 들었다. 그 짧은 순간에 메뉴 목록과 가격을 한 눈에 스캔한 나는 가격은 싸고 이름도 그럴싸한 ‘오므라이스’를 주문, 마주한 여학생은 ‘돈까스’를 주문했다. 잠시 후 내심 칼
나의 유년시절 기억 중에는 상반되는 추억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뽀얀 피부의 서울 아이들이 우리 동네 골목과 뒷동산에서 정신줄 놓고 뛰놀던 모습과 또 하나는 서울 땅에서 신호등이 있는 횡단보도를 오락가락하고 육교를 오르락 내리락 했던 나의 모습이다.그렇게 시골쥐와 서울쥐는 서로의 공간과 환경, 그리고 각자가 가지지 못한 일상을 동경하곤 했다.남과 함께 하는 그들의 일상은 각별한 재미가 있다. 남의 집 밥은 유난히 맛스럽고, 남의 떡은 커 보이기까지 한다. 이처럼 사람이 움직이는 요소 세 가지를 꼽자면 ‘재미가 있는가, 맛난 것이
우동최(우리 동네 최고를 찾아라) 드디어 셋째날. 마지막 날이다. 다들 지쳤다. 극도로 말수가 잦아든 온달과 녀석들.고덕면사무소 도착. 오전 9시 5분. 박호동 고덕면장 면담. 석곡리 석탑(도지정문화재 184호). 아이들이 걷기 힘들어 함. 시원스레 내려준 가랑비에 힘입어 그래도 걸음. 고덕면은 예전에 구만리를 기준으로 크게 번성했던 시절도 있었다던 면장님의 말씀. 안내문은 있으나 울타리가 없어 파손 등의 위험이(그때 그 당시엔) 살짝 아쉬움.봉산면사무소 도착. 오전 11시 20분. 김재곤 봉산면장 면담. 화전리 사면석불(보물 79
우동최(우리 동네 최고를 찾아라), 이제야 둘째날.꿀잠으로 원기 회복한 온달. 여전히 쌩쌩한 싹싹이와 씩씩이. 그들의 여정에 다시금 가속도가 붙었다.대술면사무소 도착. 오전 9시 31분. 세무담당 김태은님 면담.수당 이남규 고택(지방문화재 68호). 예산에 내려와 의병을 도모하다 일제에 붙잡혀 죽임을 당하시고, 4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침. 그분들 모두가 현충원에 안치된 위대한 가족. 김순희 해설사님의 친절한 설명에 다시금 땡큐. 관리가 잘 되고 있으나 활용도가 적어 보여(그때 그 당시엔) 살짝 아쉬움.예산읍사무소 도착. 오전
우동최(우리 동네 최고를 찾아라), 아직도 첫째날.곶감만으로는 시장기를 달랠 수 없었던 최강유랑단. 어렵사리 찾은 지석리 고인돌이 있다는 산길 초입. 망연자실. 정말 어른 키만큼의 수풀이 우거져 있다. 그들 모두는 말이 없었다. 주변을 살필 여력도 없이 그들은 그저 걸었다. 그 때 그들의 곁에 멈춰서는 차 한대.“동완 동상. 머하냐 지금. 응봉면사무소에 누가 왔다 갔다는디 딱 너 같드만. 이게 먼 꼴여. 야들 봐. 밥은 먹은겨?”응봉면에 근무하는 박재성 주사님. 그는 온달의 대학 선배다. 그러나 그날 만큼은 구세주였다. 범상치 않은
우동최(우리 동네 최고를 찾아라) 첫날. 2014년 7월 29일.드디어 그날이 밝아 왔다. 온달의 가슴에는 준비기간 동안의 설렘은 어디가고 걱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룰루랄라다.최강유랑단의 이동 방법은 읍면사무소까지는 시내버스를 이용하고 해당 읍면의 우동최까지는 도보 및 히치 하이킹을 하기로 결정했다.응봉면사무소 도착. 오전 10시 40분. 출발은 순조로웠다. 신경호 면장님을 뵐 수 있었고 면장님이 꼽은 응봉면 우동최 역시 최강유랑단이 뽑은 후보지와 일치 하였다. 그곳은 바로 지석리 고인돌. 순조로운 일상은 딱
2013년 여름 최강유랑단은 ‘예당저수지 정복기’라는 미명 아래 예당저수지를 한바퀴 돌았다. 그해 겨울, 한해를 마무리 하며 부산여행을 떠난 최강유랑단. 부산의 한 공원벤치에서 최강유랑단은 2014년도의 새로운 도전을 꿈꿨다(사실은 온달이 혼자만의 독단적인 꿍꿍이). 최강유랑단의 ‘부산 구상’은 무심코 던진 각자의 한마디와 그것을 엮은 온달이의 치밀한 꼼수로 시작되었다. 온달 : “뭐하고 놀지?”(옆에 누워 있던 싹싹이의 한마디)싹싹 : “예당저수지 좋았는데.”(그 옆에 누워 있던 씩씩이의 한마디)씩씩 : “예산군 한 번 돌아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