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절반은 여성이다. 그리고 여성상위시대라고 한다. “여자들이 너무 살기 편해졌다”며 남성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 그러나 여성계에서는 남녀평등을 이루려면 아직도 고쳐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주장한다. 본지에서는 예산지역 여성들의 현주소를 분야별 점검을 통해 알아보려한다. 여성들의 일터를 중심으로 나뉘어 취재되는 이 기획은 각 분야
공무원:“그런데 이 아주머니가 듣자듣자 하니까, 아주머니가 정당한 조건을 갖춰야 허가를 내주건 말건 할 께 아니야” 민원인:“아니 이 사람이 누구한테 반말이야. 야, 너 민원인한테 이럴 수 있는 거야. 내가 니 아주머니니, 니주머니니,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반말이, 엉?” 군청이 친절과 행정서비스를 주제로 한 연
남은 달력을 세어보며 시간의 덧없음에 울적해 질 즈음 두어차례의 비와 함께 가을이 깊어졌음을 깨닫는다. 푸르기만 한 하늘이 너무 높아 슬프고, 나뭇잎들의 색깔이 바뀌는가 했는데 어느새 낙엽이 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인생을 이야기 하고 떠남을 생각한다. 이른바 가을여행의 계절이다. 북으로부터 내려오는 단풍소식에 유명산으로 그 장관을 보러가는 것도 좋지만 우리
<기획>농민 생존권 및 쌀값보장을 위한 농민대토론회 지상중계 ?일시: 2001. 10. 10 20시 ?장소: 농협중앙회 예산군지부 3층 회의실 ?참석: 안세용 농협중앙회 예산군지부장, 김영호 군농민회장, 김종래 군농업경영인연합회장, 김영택 삽교농협장, 이만우 고덕농협장, 진기봉 덕산농협장, 권용운 산업과장, 신동희 군지부 차장 ?사회: 안세용,
본지는 효의 상징으로 꾸며진 소설 심청전의 원본이라 할 수 있는 관음사 사적기에 나타난 설화를 소개하고 이 설화가 심청전과 얼마나 닮았는지 비교해 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충청도 대흥현(현 예산군 대흥면)에 한 장님이 있었으니 그의 성은 원(元)가요, 이름은 양(良)이다. 일찍이 아내를 잃고 홀아비로서 곤궁하게 살아가는데 이웃에 의지할만한 친
고대소설과 판소리로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면서 우리 가슴속에 살아 숨쉬는 효녀 심청이가 실존 인물이며 태어나고 자란 고향이 다름 아닌 예산이라는 것이 밝혀져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광주 무각사 주지 광민 스님(전 관음사 주지)은 효의 상징인 심청전은 소설이지만 그 심청전의 진원지는 대흥현으로 오늘의 충남 예산군 대흥면이며 인명은 대흥현에 사는 원양의 딸 원홍
예산에 입향해 뿌리를 내린 성씨는 우선 고려시대, 조선초기, 중기, 후기, 일제시대, 8·15, 6·25 등 시대적 나누어 볼 수 있다. 고려시대 입향한 성씨 고려시대 명사로서 예산군내 묘가 있는 분은 대술면 이티리에 강민첨 장군의 묘가 있고 대흥면 하탄방리에 고려 군기소윤을 지낸 서한(대구 서씨 시조)의 묘가 현존하고 있다. 또
지난 8월 26일. 신문사 세 가족 11명이 이웃한 공주시 신풍면 원골 나들이에 나섰다. 평소 내포지역 마을 이벤트라야 경로잔치, 노래자랑, 윷놀이, 마을회관 준공식이 고작이던 터에 귀를 의심할만한 소식이 들려왔다. 원골에서 마을 미술제를 한달 동안 열고 있다는 것. 가족들을 채근했다. 들머리에는 마을의 수호신처럼 당산제를 올렸을법한 큰 느티나무가 자리잡고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집안 혼사나 어른 생신같은 좋은 날에, 마을 잔치, 상을 당했을때도 차림상에 빠져서는 안되는 메뉴, 술이다. 그것도 그집의 역사와 맛이 배어 있는 직접 담근 술로 손님을 치르는 것이 우리네 오래된 풍습이다. 할머니의 할머니 그 위 할머니부터 전수돼 내려오는 술 담그는 법은 같은 재료를 쓰면서도 물맛에 따라, 혹은 누룩의 비율에 따라,
우리 술은 집에서 빚어먹던 하나의 음식이었다. 그러던 것이 일제때부터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겨우 맥락만 유지하고 있다. “술 단속 나오면 집에 술 냄새 날까 무서워 가슴졸이면서도 손을 놓지 못했다”며 서슬퍼런 수난의 세월동안을 견디어온 며느리들에 의해서. 제대로만 먹으면 보약보다 낫다는 우리술이 애물단지가 되어온 사연을 알아본다. 190
고려시대-덕산이씨, 대흥한씨, 덕산황씨, 덕산윤씨 조선시대-덕산송씨, 덕풍윤씨, 대흥필씨 등 현 재-예산김씨, 덕산황씨, 덕산장씨 등 살고있어 백제 통일시대에 예산군내에 어떤 성씨가 살았는지를 알 수 있는 문헌이 없으며 백제가 망한 후 대흥 임존성에서 백제의 부흥을 위해 싸운 흑치상지 장군이 백제 서부인이라고 하는데 백제 서부가 대흥 지방을 지칭한 것인지
농촌의 소득 감소와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지역 공동체가 점차 상실되고 있다. 젊은이들의 이농으로 말미암아 농촌에는 장년층과 노년층이 많고 청년들이 부족해 세대간 연속성이 위협받고 있다. 특히 문명의 발전과 개인주의화로 전통 사회에서 강조되던 혈연 개념도 점차 퇴색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불가피한 사회적 추세일지도 모르나 우리 민족은 아직도 명절 때면 조상과
형제가 자식을 낳으면 사촌이 되고, 사촌이 자식을 낳으면 육촌이 된다. 그렇게 5대만 내려가도 한 할아버지 아래 수백명 자손이 뿌리내린다. 이들 일가친척들이 한동네에 이웃하며 살던 시절이 있었다. 농업이 주가 되었던 농경사회시절에 집성촌은 얘깃거리가 되지 않았다. 어느마을 할 것없이 너무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사촌, 당숙, 아저씨, 대
정정화(鄭靖和,1900-1991)가 누구인지 아는 예산 사람은 많지 않다. 정정화는 상해 임시정부 시절 ‘한국의 잔다르크’란 별칭까지 얻으며 그 활약상이 대단했던 독립운동가이다. 그녀의 일생을 담은 자서전 ‘장강일기’가 1998년 출간된 데 이어, 최근엔 여성신문사에서 펴낸 ‘이야기 여성사’에서 정정화는 제일 먼저 소개되고 있다. 명문 양반가의 여인으로 독
예산군 최초의 시설원예단지가 들어섰던 마을 봉산면 마교리. 지난 1958년 6.25전쟁이 끝난뒤 이고장출신 임종구(작고)씨와 이태현(현재 대전거주)씨가 비닐하우스를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오이로 시작해 토마토 그리고 지금은 고추로 이어지고 있다. 현재 최초의 그곳은 ‘오정’이다. 오동나무밑에 우물이 있었다해서 붙여진 지명이며 지금은 폐쇄됐다. 고추작목반장 구
대흥산 아래 상중리담장마다 돌팍이 가즈런히머리를 따고 앉은 마을에 사람의 터를 품고천년을 산 나무를 본다세월을 데려온 것은 발록재를 넘어온 바람일게다무수히 진별은 옹이를 키우고휜 가쟁이마다바람을 꺾지 않는 지혜땅은 뿌리를 움켜쥐고뿌리는 바위를 깨쳐 물길을 냈다지금 서설(瑞雪)이 내리고서늘한 이마로 선 느티나무천년을 비워낸구새먹은 자리에강물처럼 흐르는 수액을
온세계를 들뜨게 한 ‘새천년’이 밝았다. 이 시점에서 20세기 전반부에 존재한 독립운동가들을 얘기하는 것은 무슨의미를 갖는가?잊지 말아야 할 진리는 ‘새 천년’이라는 거창한 표현속에서도 역사는 세기를 기준으로 단절되는 것이 아니라 면면히 흐르고 있음이다.지나간 민족역사를 이유로 반일감정따위는 희미해져가는 신세대가 주도하는 새시대에, 문화개방과 인터넷 환경이
당시 군에서 집계한 피해규모가 이재민 9백56세대- 3천 2백3명, 재산피해 2백95억8천4백만원이다.통계에 잡히지 않은 피해까지 합하면 그 규모가 짐작하기도 어려운 대형 재난이었다.매몰되거나 유실된 농경지가 무려 1백48㏊, 침수가 3천1백67㏊, 39만1천마리의 가축피해가 보고되었다.양동이로 쏟아붓듯 엄청난 비가 내리고 또 내리더니 급기야 둑이 터져버렸
무한천 하류, 삽교천 하류까지 새우젓배가 들어오던 시절은 그리 멀지 않다.예산읍 창소리, 삽교읍 하포리, 고덕면 구만리… 그 언저리에서 살던 30대들까지도 선명하게 기억하는 포구마을. 바닷물이 들어오던 예산의 역사에 종지부가 찍어진 것은 불과 20년. 삽교천 방조제가 완공되던 1979년 10월이다.예산과 아산, 당진, 홍성의 4개군 22개 읍면지역 2만4천
덕산온천만큼 오래되었으면서도 개발이란 측면에서 보면 거의 처녀지이다 시피한 곳이 또 있을까.온천수가 일반인에게 공개되고 대중상업시설로 활용된 시기는 1920년대이다. 그리고 1999년. 21세기를 목전에 두고 ‘개발’의 이름으로 공사가 한창이다.덕산온천을 20세기 역사적 사건에 포함시킨 이유가 여기 있다.1920년대 초 대중이용시설 처음 마련80여년동안 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