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쓴 글이 기억나네요. ‘어디에서 왔을까?’라는 글이었습니다. 제게 아이가 찾아온 것이 신기해서 쓴 글이었습니다.저는 옆에 있는 아이를 보고 있으면 여전히 신기합니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 아이는 제게 뭐든 할 수 있는 용기도 같이 가져다주었다고 했었는데 그 마음도 여전합니다.하기 싫은 일도 아이를 생각하며 해냈고 힘든 일을 경험했을 때는 아이를 보며 회복했습니다. 무너져도 다시 일어날 용기가 생겼습니다. 무엇이 중요하고 힘을 쏟아야 할 곳이 어딘지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부모가 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내가 가진
여전히 우리 가족은 잠자리에 누워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아늑한 방 안이 가족의 진심으로 채워지는 순간이다. 아내와 단비가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나는 옆에서 자는 척 듣고 있는 편이다.이야기의 주제는 때때로 다르지만 단비의 일상으로 많이 대화한다.‘어린이집 생활은 어떤지? 친구들은 어떤지? 재밌는지? 뭐가 좋은지? 내일 아침은 뭐가 먹고 싶은지?’ 엄마가 단비에게 질문을 한다.하지만 오늘은 단비가 엄마에게 묻는다.“엄마, 조리원 가지?” “응. 가지”“내가 전화하면 받지?” “그럼 받지”“영상통화도 받지? 혼자 있는 거야?”
단비는 아내 왼쪽에서 잔다. 나는 아내 오른쪽에서 잔다. 아내가 잠시 방에서 나간 사이, 나는 옆으로 데구르르 굴러 아이 옆에 누웠다. 자는 아이를 보는 순간,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은 “신기하다”.내가 단비의 아빠라는 것도 여전히 신기하고 꼭 다문 눈코입과 길어진 손과 발을 바라만 봐도 신기하다.자는 아이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보는 그 고요한 순간은 내게 가장 큰 힘을 준다. 존재만으로도 큰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아이의 신비한 힘이다.새근새근 잠든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볼에 쪽 뽀뽀를 해주는 그 순간은 힘들었던 나
“여보, 이제 100일 정도 남았어”둘째가 태어날 날이 이제 100일 정도 남았다.둘째에게 관심을 보이는 대화를 하자 단비도 엄마에게 묻는다. 단비는 엄마 배를 보며 “엄마 먹어서 나온 거야? 동생 때문에 나온 거야?”아내와 둘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단비는 꼭 옆에 와서 그 이야기를 듣는다. 조금 떨어져 있어 잘 못 들은 경우에는 다시 와서 “엄마 뭐라고?”라며 확인하듯이 묻는다.나와 아내의 관심이 동생에게 향하면 단비는 그 관심을 자신에게 돌리고 싶어하는 듯하다.“단비야, 동생이 나오면 좋겠지?”“응. 근데 할아버지, 할
나는 게임을 좋아한다. 학창 시절을 오락실과 PC방에서 보냈다. 중년을 바라보는 나는 여전히 게임을 좋아한다.늦은 저녁까지 술을 마시며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게임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PC게임보다 그냥 편하게 소파에 앉아 대충 할 수 있는 비디오 게임을 더 선호한다.늦은 저녁 혼자 게임을 즐기다 무료로 게임을 나눠주길래 단비도 같이 할 수 있을 거 같아 저장해두었다. 어린이집에서 남자아이들은 게임 이야기를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는데 자기도 해보고 싶다는 식으로 내게 들렸다.“단비야 아빠랑
어느새 우리 가족 머리 위 하늘은 파란색을 하고 있다. 생각보다 더 높고 쨍한 하늘, 참으로 보기 좋다.여름이 지나 가을이 왔다. 계절이 변하고 내 곁에 아이도 또 성장했다. 세상을 보는 눈은 더 똘망거리고 자신의 생각을 답하는 입을 가지게 되었다.아이는 또 달라졌다. 커가는 아이를 보며 ‘그래 건강하게만 자라줘’라는 생각이 든다. 더 솔직한 생각은 ‘더 이상 자라지 말아 줘 나의 아가야’라는 마음이다.커가는 아이의 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철들어가는 아이 마음의 성장이다. 계절이 달라졌고, 아이도 달라졌고, 나 역시 달라졌다.아빠가
일상이 다시 멈춰 섰다.“선생님, 단비는 며칠은 집에 있도록 할게요” 코로나19의 위협에 우리 가족은 다시 뭉쳤다.모두가 어려운 시기다.어린이집에 가지 않게 된 단비와 함께 아침 산책을 시작했다. 사람이 많지 않아 비교적 안전한 아침 시간에 걷거나 달리기를 하고 있다.내가 아는 달리기를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달리기 선수들이 아닌 아이들이다. 아무리 짧은 거리여도 아이들은 지치지 않고 달린다.단비가 길을 내달리며 “난다! 나는 날아간다!”라고 외친다. 아침햇살에 비친 그 모습이 너무나 자유로워 보였다. 아침뿐만 아니라 점심 저녁 그
장마가 지나간 뒤 뜨거운 여름이다.난 아이 덕에 더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아이는 내 품에 들어와 있는 것을 좋아한다. 일명 ‘끈적이 소파’라고 불리는 내 품.아이는 자신의 발과 팔이 삐져나가 불편함에도 내 품에서 만화를 보거나 쉬는 시간을 보낸다.“아빠 더워”“더우면 옆에 앉아”이렇게 대화를 나누며 우리는 배꼽이 빠지게 웃는다.더운 여름 더운 아빠 품에 안겨있는 모습이 자신도 웃긴 모양이다.아내는 내게 말했다.“여보, 얼마나 좋으면 그렇게 붙어있고 싶겠어”“나도 얼마나 좋으면 계속 붙어있겠어”나도 그 순간이 정말 행복하다.더
“아빠, 빠삐코를 가위로 반을 딱 잘라서 친구들이랑 나눠먹어” 어린이집 간식으로 아이스크림이 나왔나 보다.“근데 그거 먹기 싫어”“왜 아이스크림 좋아하잖아?”“입이 시려도 참고 먹고 있어”라며 쓴웃음을 하며 말하는 단비.“선생님께 말씀드리면 조치해 주실 거야, 단비야”“근데 말을 못 하겠어”부끄러워 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겠다는 단비의 모습이 꼭 나와 닮았다. 단비의 부끄럽다는 기분이 어떤 것인지 나는 꼭 알기에 내 마음이 그리 편하지 못했다.종종 아이의 모습에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비칠 때 나는 사실 실망스럽고 약
어릴 적 나의 꿈은 화가였다. 조용했던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 제법 그림으로 칭찬도 받았고 고등학교 때까지도 그림을 그렸다. 아이 때는 칭찬이 좋아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공부에는 크게 소질이 없어 아빠가 데리고 간 미대입시학원에서 난 내가 소질이 없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미대도 공부를 잘해야 갈 수 있는 것도 알게 되었다. 잘하는 사람이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일까 난 집중을 잘하지 못했다.그 때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 않은 것이 후회스럽지는 않다. 그러나 조금 후회가 남은 것은 성인이 된 지금까지 꾸준히 그림을
“단비야, 아빠랑 제주도 갈래?”“아니. 아빠랑 둘이 가면 엄마 밥을 못 먹잖아”아직은 나와 단둘이 여행을 가면 불편할 것이 많다고 생각되서인지, 아이의 대답은 “아니오”였다. 나는 입덧이 심한 아내를 위해 둘이 잠시 어딘가 다녀오면 좋을 것 같아 아이에게 물어봤는데 아직 아이는 준비가 되지 않았나 보다.사실 나도 혼자 아이를 챙기는 일은 쉽지 않다. 그러나 나중에 아내가 출산을 한다면 둘이 있는 시간이 길어질 것이고 그 순간을 위해 둘만의 시간을 꼭 가져야겠다고 나는 생각했다.그렇게 내 휴일이 되었고 제주도는 아니더라도 나와 단비
“아빠 이 인형은 동생 주면 안 돼”“동생 나오면 엄마는 병원에 있는 거야?”“나는 엄마랑 자는 게 좋은데”단비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동생을 벌써 질투하는 것 같다.잠자기 전 단비는 엄마와 나에게 마음 속에 있는 이야기를 꺼내놓고 가벼운 마음으로 꿈나라로 향한다. 요즘은 동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런 투정과 질문에 하나씩 차분히 대답은 해주고 있지만 나도 걱정은 된다.사실 단비와 비슷한 마음이다. ‘단비에게 했던 것처럼 둘째에게 해줄 수 있을까?’ ‘점점 더 빠르게 피곤해지는 내 몸을 가지고 육아를 할 수 있을까?’ ‘더
“여보 나 두 줄 나왔어”아내가 둘째를 가졌다.단비와 신나게 놀고 있는 중에 아내에게 들은 이야기라 속으로는 엄청 놀랐지만 아이 앞에서는 최대한 담담하게 반응을 했다.단비에게 동생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은 아주 예전이었는데 이제 현실이 되었다고 하니 신기했다.그리고 아내에게는 미안했다. 아내에게도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너무나 소중한 순간이지만, 이제는 자기만의 시간도 조금씩 찾아가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것을 잠시 또 뒤로 미루게 되었다는 것이 미안했다.자기만의 시간은 아이의 마음을 건강하게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하다. 내 마음이 건강해
한글 공부 몇 장을 넘기더니 “하기 싫다”는 그 모습이 참 귀엽다. “아빠도 옆에서 같이 해” 자기만 하는 게 억울한지 나도 같이 공부를 하라고 귀여운 투정도 부린다.공부할 때는 엄마가 하는 일이 왜 그렇게 관심이 가는지 단비는 엄마를 살짝살짝 쳐다보며 “엄마 냉장고에서 뭐 꺼냈어?” “저녁은 뭐야?”라며 질문도 많아진다.그렇게 힘들게 한 장 한 장 하다 보면 시간이 훌쩍 가 있다.나도 사실 하기 싫은 게 많다. 그렇지만 그 나이대에 어울리게 잘 할 수 있는 일이 있는 것 같다. 물론 6살인 단비는 잘 먹고 잘 자고 잘 웃는 게 어
자기 전 단비는 엄마 옆에 누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는다.단비의 이야기 소리가 길어지는 것을 보니 신경 쓰이는 일이 있는 것 같다. 나도 옆에 누워 들리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어린이집에서 친구들과 문제가 있었나 보다. 이런저런 속상한 일을 엄마에게 이야기하는 것이 나에게도 들린다.듣고 있는 나도 속이 상해온다. 이럴 때는 뭐라고 이야기를 해줘야 하는지 여전히 고민이다. “아빠가 해결해 줄게”라며 나서는 모습을 할지, 그저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자세를 취해야 하는지, 이럴 때마다 속으로 고민이다. 그렇다고 잠자리에서 다시 나와
“아빠, 오지 마. 오지 마”거실로 나가는 나를 단비가 다급하게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왜?”나는 단비가 뭐 하는지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했다.“비밀~ 엄마랑 뭐해”몇 분 뒤에 온 단비는 “아빠 나 이쁘지?”라며 묻는다.엄마 화장품을 들고 툭툭 얼굴에 바르는 시늉을 하고 온 것이다.“그럼.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지”아이는 이렇게 조금씩 멋을 부리기 시작한다. 머리띠도 옷에 맞게 고르고 원하는 신발도 있다. 멋에 대한 관심이 아직 겉에만 있어 보였다. 곧 사춘기가 오면 내 생김새에 대한 관심도 커질 것이다.나 역시 그랬다. 거울 앞에
“단비야 빨리 세수하고 양치하고 잘 준비해”엄마의 말 한마디에 “나도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단비는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향한다.“왜 어른이 되고 싶은데?”“어른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잖아”“단비 하고 싶은 대로 다 할 수 있잖아”“아니. 엄마 아빠처럼 자유롭게 시작을 선택하고 싶다고”나는 아이를 자유롭게 키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어른들이 선택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 단비의 눈에는 좋아 보였던 것이다.나는 생각했다. ‘내가 정말 자유로운가?’ ‘어른은 정말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가?’라고 말이다.아무리
단비가 이모에게 보조바퀴가 달린 두발자전거를 선물 받았다.집 앞 차고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를 보니 내 어린 시절 아빠에게서 배웠던 내 자전거가 생각났다. 아빠가 뒤에서 잡아주며 “아빠가 잡고 있으니까 걱정 말고 페달을 밟아봐” 겁이 많았던 나는 “아빠 놓으면 안 돼” 뒤로 보이지 않는 아빠를 믿으며 페달을 밟았던 기억이 났다.자전거를 스스로 타게 되었을때 수시로 뒤를 확인할 때마다 보였던 아빠의 웃는 얼굴이 여전히 생생하다. 아마도 감동받은 얼굴이었던 것 같다.아무튼 나는 운동에 소질이 없어서 한번의 작은 성공 후 몇 번이고 실패를
최근 모두들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많은 이들의 적지 않은 것이 변한 일상을 바라보며 우리 가족의 일상도 많은 것이 변했다. 나는 잠시 일을 멈추었고 단비도 어린이집 가는 것을 멈추었다.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을 지키는 일을 하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모이지 않게 하는 것이 이 어려운 시기를 예방을 할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되어 가게를 잠시 쉬며 이렇게 지내고 있다.그래서 매일 아이와 24시간을 함께 보내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첫날부터 아이는 “아빠 놀자”라는 말을 달고 살고 있다. 놀고 있는데도 놀자고 아이는 말한다. 대체
“아빠, 누가 높이 뛰나 시합하는 거야”요즘 아이는 뭐든 시합으로 하자고 한다. 결과는 항상 내가 진다. 나는 이기지 못하는 승부를 매번 하고 있다. 승부에서 이긴 아이는 금세 기분이 좋아진다. 이기는 건 항상 기분 좋은 일이니 말이다.아이는 나와의 놀이 대부분을 시합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림 그리기도 나보다 더 잘 그리고 싶어하고, 달리기 시합도 나보다 더 빨리 달리고 싶어 한다. 심지어 누가 더 땀이 많이 났는지도 시합을 하려고 한다.가끔은 매번 지는 내가 마음에 걸렸는지 일부러 내가 승리하게 만들어 주는 경우도 있다.“